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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딥테크] ‘관료주의 늪’에 빠진 독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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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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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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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학 전공에 관리자로 일했고 재무, 투자, 전략, 경제 등이 관심 분야입니다. 글로벌 전문가들의 시선을 충분히 이해하고 되새김질해 그들의 글 너머에 있는 깊은 의도까지 전달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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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료주의’ 연간 손실 ‘238조 원’
지나친 규제와 서류작업이 문제
생산성과 혁신 ‘질식’

본 기사는 스위스 인공지능연구소(SIAI)의 SIAI Business Review 시리즈 기고문을 한국 시장 상황에 맞춰 재구성한 글입니다. 본 시리즈는 최신 기술·경제·정책 이슈에 대해 연구자의 시각을 담아, 일반 독자들에게도 이해하기 쉽게 전달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기사에 담긴 견해는 집필자의 개인적 의견이며, SIAI 또는 그 소속 기관의 공식 입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오랜 기간 정평이 날 정도로 정확성과 질서의 상징이던 독일이 정반대 방향의 어려움에 직면했다. 뿌리 깊은 관료주의(bureaucracy)로 비싼 대가를 치르고 있는 것이다. 이포 경제 연구소(Ifo Institute for Economic Research)에 따르면 독일은 매년 서류작업과 업무 지연, 규제 중복으로 1,460억 유로(약 238조원)의 경제적 손실을 입고 있다고 한다. 지나친 절차가 성과를 질식시키는 전형적인 사례다.

독일, ‘효율성’에서 ‘관료주의’의 상징으로

독일의 어려움은 곳곳에서 눈에 띈다. 작년 도이치반(Deutsche Bahn, 독일의 국영 철도 운영사)의 장거리 노선 철도 중 정시에 도착한 경우가 62.5%로 수십 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한 바 있다. 2024년 유럽 축구 선수권 대회(Euro 2024) 개최 당시에는 순조롭게 운영되던 경기장과 달리 철도 시스템이 불안정해 교통부 장관이 공식적으로 결함을 인정하는 일까지 있었다. 여기서 문제는 게으름이나 자원 부족이 아니라 복잡성(complexity)이다.

교육 시스템도 비슷한 병목현상에 시달리고 있다. 교내 시설 수리가 지연되고, 정시에 환급되지 않은 등록금이 쌓이고, 방문하는 기관마다 신분증 검사를 다시 해야 한다. 온라인 포털 사이트에서는 이미 등록된 학교 정보까지 다시 입력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따른다. 모두가 강의와 학습에 투입되어야 하는 시간들이다.

지나친 규제가 ‘혁신 방해’

반면 몰타나 에스토니아 같은 소규모 국가들은 전혀 다른 모범을 보이고 있다. 이들 국가는 국민들이 한 번만 데이터를 입력하면 정부 시스템에서 재입력이 필요 없도록 해 공공 서비스 간소화에 성공했다. 독일 전체가 정보화에 뒤처지면서 학교들도 교육 대신 반복적인 서류 작업에 내몰리고 있다.

관료주의 지지자들은 규칙이 공정성을 높이고 리스크를 줄인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지나치게 많은 규칙은 혁신을 질식시킨다. 독일 산업계는 관료주의와 재정 지출이 줄지 않으면 독일을 향한 투자까지 줄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독일 정부가 제정한 ‘관료주의 구제법(Bureaucracy Relief Act, 디지털화를 촉진하고 형식적 요건을 간소화하여 기업의 행정 부담을 축소)이 내놓은 진단이다. 기업들이 규제 준수 부담 때문에 자동화를 포기하면 학교는 디지털 학습에서 같은 길을 걸을 수밖에 없다.

‘단순화’ 통해 ‘핵심 업무’에 집중해야

독일의 관료주의에 대한 해법으로 제시되는 것은 ‘단순화’(simplification)다. 한 독일 베이커리 체인이 두 가지 불필요한 체크리스트를 없앴더니 매출이 2.7% 오르고, 고객 만족도가 개선됐으며, 직원 이직률까지 감소했다. 반면 업무상의 실수는 전혀 증가하지 않았다. 요점은 성과에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규칙을 제거하고 중요한 것에 집중하라는 것이다. 이를 학교에 적용하면 수업과 학생 지도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것이다.

불필요한 체크리스트 제거에 따른 매출 효과(독일 베이커리 체인)
주: 시행 이전 효과가 예상된 영업점(좌측), 효과가 없을 것으로 예상된 영업점(우측) / 대조군(실선), 실험군(점선) / 시범 실시 전(Pre-RCT), 시범 실시 기간(RCT period), 전사적 확대(firmwide rollout)

즉, 베이커리 체인이 폐열(waste heat, 에너지를 작업으로 변환하는 과정에서 방출되는 열에너지)을 재사용해 비용을 절감했듯이, 학교는 쓸데없는 서류작업을 쳐내 교사들의 시간을 확보해 줘야 한다. 예를 들어 한 교구(校區)에서 교사들이 중복된 서류 작업 시간에 근무 시간의 3%를 소비하고 있다면, 절반만 줄여도 연간 30,000시간이 직접적인 교육 활동에 쓰일 수 있다. 이는 18명의 신규 교사를 채용하는 것과 동일하다.

독일 교구(校區)(교사 1,000명으로 구성) 서류 작업 절감에 따른 효과
주: 서류 작업 시간(좌측), 절감 시간(50%)(우측)

경제 손실 연간 ‘238조원’

독일 관료주의를 개혁하기 위해서는 구체적인 방안들이 모아져야 한다. 먼저 시스템에 입력된 데이터 작성을 요구하는 양식들을 찾아내 자동화하거니 폐기하라. 안전 및 금융에 적용되는 안전장치 및 확인 사항은 유지하되 역할을 하지 못하는 서류 양식과 지나치게 복잡한 조달 규정은 손을 봐야 한다. 독일 국민 그 누구든 한 번 입력한 데이터를 다시 입력하는 일도 없어져야 한다.

또 모든 신규 법령은 일몰조항의 적용을 받도록 하며, 기존 법령은 폐지하거나 통폐합해야 한다. 시간만 낭비하는 현란한 보고서 대신, 호환 가능하고 가능한 정보가 미리 채워진 양식을 사용하라. ‘옥상옥’ 형태의 ‘마이크로매니지먼트’ 대신 자율적으로 가동되는 학교 조직을 만드는 것도 중요하다.

교육 부문으로 눈을 돌리면 관료주의의 희생양은 바로 인적자원이다. 모든 불필요한 양식이 정작 필요한 교육 활동으로부터 시간을 앗아가고 있다. 서류 양식과 체크리스트를 재검토하면서 절감된 시간을 추적해 이를 교육 활동에 재투자하라.

독일의 비효율은 더 많은 절차가 더 높은 안전을 보장한다는 가정을 기반으로 하지만, 현실에서는 지나친 관료주의가 조직의 역량과 고용 유지, 신뢰를 망가뜨린다. ‘독일의 효율성’(German efficiency)에 대한 신화는 지나친 복잡성과 규제로 인해 무너지고 있다. 앞서 논의한 독일 관료주의 개혁의 혜택은 줄어든 규칙 자체가 아니라 그로 인해 늘어나는 생산성일 것이다.

본 연구 기사의 원문은 The Suffocation of “Efficiency”: What Germany’s Red Tape Teaches Education Reform을 참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본 기사의 저작권은 스위스 인공지능연구소(SIAI)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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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학 전공에 관리자로 일했고 재무, 투자, 전략, 경제 등이 관심 분야입니다. 글로벌 전문가들의 시선을 충분히 이해하고 되새김질해 그들의 글 너머에 있는 깊은 의도까지 전달하고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