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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 자동차에 고율 관세 예고한 미국 '차 세율 美 기여도와 연동' 日 제안 트럼프 반대에 무산, 협상 지속 난항

일본이 지난 5월 미국과의 관세 협상에서 조기 합의에 근접했지만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반대로 무산됐다. 핵심 쟁점인 자동차 관세를 두고 장관급에선 공감대를 이뤘으나, 트럼프 대통령 한마디에 무산된 것이다. 이에 일본 정부는 "트럼프 대통령이 원하는 게 도대체 무엇인지 모르겠다"며 답답해하고 있다.
日, 미국 생산 기여도 어필 무산
16일 닛케이 아시아는 미국산 생산에 기초한 관세 인하를 앞세운 일본의 제안은 트럼프 행정부를 설득하는 데 실패했다고 보도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7일(이하 현지시간) 일본 상품에 대한 25%의 관세를 발표했는데, 이는 8월 1일부터 시행되며, 4월에 발표한 당초 24%의 '호혜적' 관세보다 약간 높은 수치다. 트럼프 행정부는 이미 모든 수입 자동차에 대해 중복되지 않는 별도의 25% 관세를 부과해 이전 2.5%에서 27.5%로 인상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첫 번째 임기 동안 일본은 미국과 무역 협정을 맺어 일본이 쇠고기와 같은 미국 제품에 대한 관세를 낮춤으로써 자동차에 대한 추가 관세를 피할 수 있도록 했다. 지난 4월에 시작된 내각급 관세 협상에서 일본은 처음에 이 협정을 미국이 관세를 철회하도록 압박하는 방패막이로 사용하려고 했다. 그러나 미국은 '상호적' 관세 협상에만 관심이 있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교착 상태를 타개하기 위해 일본 관리들은 일본 정부가 미국 경제에 기여한 정도에 따라 관세를 인하하자는 제안을 내놓은 것으로 알려졌다. 애초 자동차 관세 철폐를 주장했지만, 미국의 완강한 태도에 세율 인하로 계획을 수정하며 제시한 내용으로, 미국 현지에 생산 시설을 갖춘 일본 자동차 업체가 생산·수출한 대수에 따라 세율을 낮추는 방식이다. 이에 당시 하워드 러트닉 미국 상무장관은 "이 방안으로 하자. 내가 정리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합의할 수 있을 것이라는 일본의 기대와 달리 협상은 원점으로 돌아갔다. 트럼프 대통령 설득에 실패했고, 이후 진행된 장관급 관세 협상에선 미국과의 이견 좁히기가 더욱 어려워졌다. 일본은 미국의 달라진 태도를 보며 트럼프 대통령과 장관 간 의사소통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판단했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요미우리에 "장관급 협상 내용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제대로 전달되지 않은 것 같다"며 "지난 3개월간 무엇을 했는지 모르겠다"고 토로했다. 일본은 지난 4월부터 일곱 차례에 걸쳐 장관급 협상을 벌였고, 지난달에는 트럼프 대통령과 이시바 시게루 총리가 직접 만났지만 결국 합의에 실패했다.

미국, 시장 개방 요구 압박
미국은 일본산 자동차 브랜드가 자국 시장의 30% 이상을 점유하면서 정작 미국산 차량은 일본에서 1%대에 그친다는 점을 문제 삼았다. 일본 내 인증, 유통 등 비관세 장벽도 협상의 핵심 대상이다. 최근에는 전기차와 배터리 협력 등 첨단 분야로 논의가 확대되며 협상은 더 복잡해졌다.
미국에서도 관세 부과를 둘러싼 논란은 크다. 소비자 단체는 차량 가격 상승과 공급망 차질을 우려하며 일본 브랜드 공장이 미국 내 고용에도 기여하고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강경 일변도보다 협상을 통한 점진적 조정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높다. 일본이 민감 산업을 보호하는 반면 미국은 동맹 유지 비용과 통상 불균형을 떠안고 있다는 불만이 누적된 상태다.
이에 일본은 1980년대 '플라자합의(Plaza Accord)'와 자율규제 협상 등에서 얻은 교훈을 바탕으로 이번 협상에서도 감정보다 실리를 택하는 분위기였다. 특히 일본은 자동차 산업이 국내총생산(GDP)의 5%를 차지하고 고용·수출 비중도 높은 만큼 선거를 앞두고 섣불리 양보하기 어렵다. 토요타, 혼다, 닛산 등 주요 완성차 업체들은 지방에 생산거점을 두고 있어 여당은 지방 민심도 의식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일본 정부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이 무역적자를 줄이고 미국 제조업을 되살리는 데 집중하고 있는 만큼 사실상 관세를 폐지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고 있다는 전언이다.
관세 부담 한계 도달, 가격 인상 불가피
미국과의 관세 협상이 사실상 결렬된 가운데, 업계에서는 일본 자동차 업체들의 가격 인상 움직임이 더욱 가속화 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현재도 일본 자동차 업체들은 관세 비용 흡수의 한계에 도달해 가격 인상에 나서고 있는 상황이다. 닛케이 아시아에 따르면 이달 초 토요타는 미국 내 차량 판매가격을 평균 270달러 인상한다고 발표했다. 토요타는 여러 경쟁업체의 가격 인상 발표와 시장 동향을 바탕으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앞서 스바루와 미쓰비시 자동차도 이미 가격을 인상했으며, 마쓰다 자동차는 인상 방법을 모색하고 있다.
일본 자동차 업체들은 관세 부과 초기에는 가격을 유지하며 비용 증가를 자체 흡수해 왔다. 일본 재무성에 의하면 지난 5월 일본 자동차의 대미 수출 단가는 전년 동기 대비 약 20% 하락했는데, 이는 업체들이 관세 비용을 흡수하기 위해 노력해 온 결과다. 물류업체 닛폰 익스프레스 홀딩스 미국 자회사의 이시나카 코헤이 운송·화물 부서 책임자는 "6월 기준 일본에서 미국으로 가는 화물은 4월과 5월에 비해 감소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많은 완성차와 부품이 일본에서만 생산되기 때문에 기업들은 비용이 더 들더라도 지속적인 운송을 우선시했다.
하지만 관세 압박을 견디지 못한 업체들의 가격 상승은 이미 공급망을 따라 전파되고 있다. 일본 자동차 부품업체 DIC는 관세로 인해 중국 등에서 수입되는 원자재 가격이 인상되자 고객 동의를 얻어 미국에서 생산되는 자동차 안료 가격을 6월 출하분부터 인상했다. 자동차 제조용 산업용 로봇을 만드는 야스카와전기도 지난 4월부터 비슷한 조치를 시작했다.
관세 부과에 따른 구매 러시가 잦아들면서 미국 내 신차 판매도 모멘텀을 잃었다. 토요타 등 일본 자동차 제조업체 4곳이 지난 1일 발표한 6월 수치에 따르면, 미국 내 신차 판매는 전년 동기 대비 2% 감소해 4개월 만에 처음으로 감소했다. 한 일본 자동차 업체 관계자는 "기업들이 가격 인상에 따른 비용 증가를 감수하려 노력하고 있지만 상황이 지속 가능하지 않다"고 전했다.
이에 일본 자동차 업체들은 미국으로 생산 능력을 이전하는 방향으로 본격 전환하고 있다. 스바루는 인디애나주에 있는 유일한 북미 조립공장에서 생산량 확장을 준비 중이다. 미국 판매량의 절반을 일본에서 수출하는 스바루는 향후 포레스터 SUV 일부를 미국에서 생산한다는 계획이다. 마쓰다도 관세를 피하기 위해 미국 시설을 대용량으로 운영하고 있다. 지난 5월 마쓰다는 미국 앨라배마주 공장에서 캐나다로의 출하를 중단하고 생산량을 미국 시장으로 돌리기로 결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