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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한 수소 공급·높은 전기료 부담 아르셀로미탈 "사업성 없다" 결론 글로벌 '그린스틸' 장밋빛 전망에 경고등

세계 2위 철강 기업 아르셀로미탈이 결국 독일 '수소 제철' 사업을 백지화했다. 높은 전기료와 불안한 수소 공급 상황이 이어지자 사업성이 없다고 결론지은 것이다. 업계에서는 아르셀로미탈의 이번 결정을 두고 유럽 수소 제철이 마주한 구조적 한계를 드러낸 상징적인 사건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삐걱대는 '녹색 철강'
23일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은 아르셀로미탈이 13억 유로(약 2조원)의 보조금에도 불구하고 사업성 부족을 이유로 수소환원 플랜트 도입을 중단하기로 결정했다고 보도했다. 수소 제철은 기존 석탄 대신 수소를 환원제로 사용해 이산화탄소(CO₂) 배출을 획기적으로 줄이는 차세대 기술이다. 아르셀로미탈은 2030년까지 독일 북부 브레멘과 동부 아이젠휘텐슈타트의 기존 고로를 수소 설비로 전환할 계획이었으며, 2025년 6월 말까지 최종 투자 결정을 내려야 했다.
아르셀로미탈은 이번 결정의 배경으로 녹색 전환 정책의 더딘 속도를 지목했다. 회사 측은 "탈탄소 정책의 지연으로 그린 수소가 안정적인 가격과 양으로 공급될 기반 시설이 미비해 쓸모있는 연료가 되지 못하고 있다"고 문제 삼았다. 중국산을 필두로 한 수입 철강의 공세에 따른 수요 약화와 정책의 불확실성 역시 사업 중단의 원인으로 꼽았다. 이는 아르셀로미탈이 지난해 조단위의 탄소중립 프로젝트를 중단한 원인이기도 하다.
아르셀로미탈은 앞서 2021년 10억 유로(1조5,800억원) 이상을 투자해 화석연료 대신 수소를 사용하는 수소환원제철소, 전기를 이용해 고철을 녹여 쇳물을 만드는 전기로 등을 설치하겠다고 밝혔다. 탄소중립 기술의 단계적 상용화로 2030년까지 탄소배출량을 40% 이상 줄이겠다는 목표였다. 하지만 투자계획 발표 당시 166억 달러(약 23조원)가 넘었던 영업이익이 지난해 22억 달러(3조원)로 줄어들면서, 막대한 투자비가 필요한 프로젝트를 더 이상 진행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아르셀로미탈은 이와 함께 철강 생산과정에서 배출되는 탄소를 포집·저장하는 탄소포집기술(CCU) 투자도 중단하기로 했다.
여기엔 독일의 고질적인 높은 전기 요금도 발목을 잡았다. 아르셀로미탈은 "경쟁력 있는 전기를 공급할 수 있는 나라에서만 신규 전기로 투자를 한다"고 지적하며, 원자력을 중심으로 안정적인 에너지 정책을 펴는 프랑스 등에서 투자를 진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수익성 악화에 감속 페달 밟는 글로벌 철강업계
이번 사태는 아르셀로미탈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에서 철강업계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 독일 연방정부는 아르셀로미탈 외에도 티센크루프, 잘츠기터, 자르슈탈 등 자국 철강사들의 수소 설비 전환 사업에 총 70억 유로(약 11조1,000억원)의 보조금 지원을 결정한 바 있다. 이 중 티센크루프는 서부 뒤스부르크에서 20억 유로(약 3조2,000억원)의 보조금을 받아 새로운 설비 건설에 나섰지만, 가동 시점을 애초 2026년에서 2027년으로 늦춘다고 밝혔다. 티센크루프 측은 독일 DPA통신에 "값이 싼 수소가 충분하지 않다. 현재 계획의 수익성은 한계에 가까워지고 있다"며 현실적 어려움을 털어놨다.
전 세계에서 가장 먼저 수소 환원제철법인 ‘HYBRIT’를 적용해 2026년부터 스웨덴 공장에서 저탄소 철강재를 상업 생산할 예정인 사브(SSAB)도 추진 중이던 저탄소 철강생산 공장 설립 프로젝트를 최근에 전격 중단했다. 사브는 미국 에너지부(DOE)가 지급하는 사업 지원금을 확보하기 위한 협상에도 더 이상 참여하지 않기로 했다. 사브는 지원금 협상에서 물러난 이유를 명확히 밝히지는 않았지만 보도에 따르면 관련 사업을 진행하기에는 녹색 수소 시장이 불안정한 데다, 전기 요금 부담도 상당해 사업 중단을 결정한 것으로 보인다.

현대제철도 전기료 부담에 美 루이지애나로 이전
현대제철이 미국 루이지애나에 연산 270만 톤 규모 제철소를 건립하기로 한 것도 막대한 전기료 부담에서 비롯됐다. 철강 산업은 많은 에너지를 필요로 한다. 철광석이나 고철을 전기로 녹여 강철을 만드는 전기로를 사용하는 경우 더욱 그렇다. 전기로 11기를 보유한 현대제철은 2023년에만 7억3,000만 달러(1조원)을 전기료로 지출했다.
우리나라에 비해 루이지애나의 전기 요금은 저렴하다. 미국 산업용 전력 평균 요금은 MWh당 80.1달러(약 11만8,000원)인데 루이지애나는 52.8달러(약 7만7,900원)에 불과하다. MWh당 18만2,000원에 이르는 국내 산업용 전력 요금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 낮은 루이지애나의 전기 요금은 풍부하고 저렴한 천연가스 덕분에 가능하다. 루이지애나 전력 생산의 73.5%는 천연가스가 맡고 있고, 17.1%가 원자력이다.
저렴하고 풍부한 에너지 자원을 보유한 루이지애나는 에너지를 아낌없이 사용한다. 루이지애나의 에너지 소비량은 50주 가운데 4위, 1인당 에너지 소비량으로는 2위에 해당할 정도로 많다. 롯데케미칼이 31억 달러(약 4조2,800억원)를 투자해 지난 2019년 루이지애나에 세계 7위 규모인 초대형 석유화학 단지를 조성한 데서 알 수 있듯이 루이지애나엔 석유화학, 정유 등 에너지 다소비 업종 기업이 집중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