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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공장 건설비용 및 관세 전가 의존도 큰 美 빅테크 후폭풍 삼성전자 반사이익 여부 주목

세계 최대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기업인 대만 TSMC가 공급 단가를 최대 30% 인상하는 방안을 추진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반도체 관세 부과를 예고한 데다, 미국 애리조나 반도체 공장 건설 비용이 늘어나자 고객사를 상대로 인상분을 전가하는 모습이다.
TSMC, 파운드리 단가 최대 30%↑
20일 대만 공상시보는 업계 소식을 인용해 “TSMC가 전체 파운드리 단가를 약 10% 인상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고 보도했다. 특히 애리조나 공장에서 생산하는 4㎚(나노미터·10억분의 1m) 공정 반도체 가격은 약 30% 인상할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내 반도체 생산분은 건설비·인건비·운영비가 대만 본사 대비 훨씬 높다 보니 단가 인상 폭을 크게 잡은 것으로 보인다. TSMC는 이번 인상을 통해 미국 공장 증설에 따른 투자 비용을 상당 부분 돌려받을 수 있게 된다.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는 이러한 TSMC 결정에 힘을 실어줘 눈길을 끌었다. 황 CEO는 앞서 웨이저자 TSMC 회장을 만난 뒤 “TSMC의 파운드리는 충분한 가치가 있다”면서 “TSMC의 공급 단가는 모든 고객사에 동일하게 적용되고 있으며 엔비디아를 포함한 일부 대형 고객사가 특혜를 받고 있지 않다”고 선을 그었다.
엔비디아는 현재 TSMC의 차세대 2㎚ 공정을 활용해 인공지능(AI) 반도체를 생산할 계획을 세웠다. 2㎚와 같은 첨단 공정은 종전 웨이퍼보다 단가가 높을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업계에서는 엔비디아와 TSMC 간 가격 논의가 대부분 마무리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엔비디아가 가격 인상에 우회적으로 찬성한 건 TSMC 물량을 우선적으로 확보하려는 행보로 풀이된다. 현재 엔비디아뿐 아니라 애플, AMD, 인텔, 퀄컴, 미디어텍 등 다른 주요 고객사 역시 TSMC 생산 라인을 선점하려는 경쟁을 펼치고 있어서다.
TSMC 가격 인상에 삼성 파운드리 수혜?
업계는 TSMC의 이 같은 조치가 삼성전자에 일정 부분 반사이익을 줄 수 있을 것으로 본다. 삼성전자는 TSMC 이외 5㎚ 이하 파운드리 양산이 가능한 유일한 기업이다. TSMC의 가격 인상에 부담을 느낀 고객사들이 다양한 대안을 모색하면서 삼성전자 파운드리에 기회가 될 수 있다는 관측이다.
실제 삼성전자는 앞서 닌텐도의 차세대 게임기 ‘스위치2’에 탑재할 엔비디아의 ‘테그라 시스템온칩(SoC)’을 8㎚ 공정에서 생산하기로 했다. 아울러 삼성전자 역시 연내 2㎚ 공정에 착수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삼성전자가 경쟁력 있는 수율과 가격을 동시에 제시한다면 일부 고객이 삼성전자로 발길을 돌릴 가능성이 있는 셈이다.

뚜렷한 양산 이력이 없어 이탈 물량 흡수 어려울 듯
다만 TSMC가 매년 파운드리 단가를 인상해 온 만큼 삼성전자가 큰 이득을 볼 가능성은 미비하다는 분석도 적지 않다. TSMC는 매해 꾸준히 제품 가격을 인상해 왔다. 2022년 15%, 2023년 17%, 2024년 25% 등 인상폭도 증가했다. 더군다나 삼성전자는 현재 텍사스주 오스틴에 파운드리 공장을 운영 중이며 테일러에 또 다른 신규 파운드리 공장을 짓고 있는데, 오스틴 공장은 65㎚에서 14㎚ 공정 등 범용 반도체를 생산한다.
이런 상황 속 테일러 공장은 고객 확보가 늦어지며 공장 가동 시점이 미뤄지고 있다. 2024년에서 2026년으로 가동이 한 차례 미뤄졌으나 최근 2027년으로 또다시 연기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당초 2, 4㎚ 공정으로 지으려고 했지만 경쟁력 확보 차원에서 2㎚ 공정에만 집중키로 한 것으로 알려진다. 즉 TSMC의 대안을 찾는 고객사들이 삼성전자로 향하기 쉽지 않다는 말이다.
물론 삼성전자가 올해 들어 4㎚ 공정의 수율을 80%까지 대폭 끌어올린 점은 고무적이지만, 4㎚ 공정은 평택에 위치하고 있다. 반도체 관세 부과가 임박한 가운데 가격 측면에서는 미국에 생산기지를 갖춘 TSMC와 경쟁을 논하기 어려워진다. 이는 TSMC가 배짱 좋게 가격 인상에 나선 이유로 볼 수 있다.
삼성전자가 TSMC와의 기술력 측면에서는 큰 차이가 없으나, 양산 경험에서 약점이 있어 고객사 이탈을 기대하기는 어렵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 반도체업계 고위 관계자는 "삼성의 3㎚ 수율은 TSMC에 뒤처지지 않는 60~70%로 알려졌지만, 뚜렷한 빅테크 공급이 없다는 점은 아직 신뢰도가 낮다는 방증"이라고 말했다.
특히 수요가 폭증 중인 AI 분야 파운드리는 가격보다는 성능과 수율이 핵심적인 사업이다. 공급이 지연되고, 가격이 더 높아지더라도 우수한 수율과 패키징 기술(CoWoS), 풍부한 양산 경험을 갖춘 TSMC에 맡기려는 고객사가 많다. 삼성전자가 물량 확보를 위해서는 가격 대신 독자 공정인 GAA(게이트올어라운드)나 2.5D 패키징 기술인 '아이큐브' 등 기술 강점을 부각해야 한다는 지적도 이 때문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TSMC가 첨단 반도체 생산을 사실상 독점하고 있어 점유율 격차를 좁히기 쉽지 않은 상황"이라며 "이탈 물량의 흡수에 집중하기보다는 독자 공정의 강점을 활용해 수율·성능이 뒤처지지 않는다는 인식을 굳혀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