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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전 적자 전환, 전 지역 매출 하락 2년간 6,000만 파운드 비용 절감 계획 감원 규모 최대 1,700명에 달해

세계 명품업계의 불황이 짙어지는 가운데, 영국의 트렌치코트 브랜드 버버리가 인력 구조조정에 나선다. 지난해 7월 부임한 조슈아 슐만 최고경영자(CEO)가 한때 ‘선망의 브랜드’로 불렸던 버버리의 명성을 되찾겠다는 각오를 다졌지만, 소비 심리 위축과 더불어 새로운 제품이 시장에서 반향을 일으키지 못하면서 브랜드 매력을 되살리는 데 어려움을 겪는 모습이다.
버버리, 전 직원 19% 감원
14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버버리는 수익성과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전 세계적으로 약 1,700명의 인력을 감축한다. 버버리는 현재 9,000명의 직원을 두고 있어 이번 인력 구조조정 규모는 18.9%에 달한다. 버버리는 이를 통해 2027 회계연도까지 6,000만 파운드(약 1,115억원)의 비용 절감 효과를 기대하고 있다. 이는 기존 발표한 4,000만 파운드(약 743억원) 규모의 비용 절감 계획을 확대한 것이다.
버버리는 이날 발표한 성명에서 "현재 구조조정은 초기 단계에 있고, 지정학적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거시경제 환경은 더욱 악화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브랜드 강화와 수익성 개선을 통해 매출 확대에 주력하고 있고 "올해 시간이 지날수록 구조조정 효과가 가시화할 것"이라고 전했다.
WSJ에 따르면 버버리는 2025 회계연도(2024년 4월~2025년 3월) 매출 24억6,000만 파운드(약 4조5,700억원) 기록했다. 이는 시장 예상치에 부합한 수치지만, 세전 기준으로 6,600만 파운드 손실을 기록해 전년 동기 3억8,300만 파운드(약 7,120억원) 흑자에서 적자로 전환했다. 버버리는 모든 지역에서 연간 및 분기 매출이 감소했는데 특히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부진이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 여기엔 중산층 소비 위축과 중국 경기 둔화의 영향이 크게 작용했다.
반값 세일까지 단행, 자존심 버린 영국 명품 상징
버버리가 휘청이기 시작한 것은 2020년부터다. 코로나19에 따른 극심한 영업부진을 만회하기 위해 당시 중국과 호주, 미국 등 전 세계 일부 국가에서 옷과 가방 등의 제품을 최대 50% 할인 판매하는 이례적인 행보까지 보였다.
통상적으로 명품 브랜드들은 매출이 급감해 손해를 보거나 재고가 쌓여도 제품 할인을 거의 하지 않는다. '명품' 이미지와 브랜드 명성에 장기적으로 마이너스가 될 것이라는 우려와 판단에서다. 오히려 샤넬과 루이비통 등은 코로나19 당시 전 세계적으로 대대적인 가격 인상을 단행했다.
버버리가 이 같은 '금기'를 깬 것은 향후 전망 등이 부정적이었기 때문이다. 이를 두고 중국 명품 전문매체 징데일리는 "버버리는 미증유의 재앙적인 코로나19 위기 속에서 가장 먼저 할인에 뛰어든 전세계 최초의 명품 브랜드"라고 평가했다. 할인 판매에 그치지 않고 버버리는 당시 전 세계 직원 500명을 해고하는가 하면 일부 국가의 사무실은 폐쇄하기도 했다.

주가 급락으로 FTSE 100서도 퇴출
버버리는 지난해 실적 부진으로 영국의 대표 주가지수인 FTSE100 지수에서도 퇴출당했다. 2002년 런던 증권거래소에 상장한 버버리는 2009년 글로벌 금융 위기 속에서도 지속적 성장과 회복력을 인정받아 FTSE 100에 편입됐다. FTSE 100은 런던 증권거래소 상장사 중 시가총액 상위 100개 기업의 주가를 지수화한 것이다.
하지만 최근 중국 수요 부진 등에 따른 럭셔리 시장의 전반적 침체 속에서 실적과 주가에 타격을 입으면서 버버리는 급격히 추락했다. 퇴출 직전 시가총액은 22억3,000만 파운드(약 3조9,000억원)로 전년 대비 무려 70%가 하락했다. 역대 CEO들은 회사 이미지를 되살리고 고급 브랜드로 끌어올리기 위해 노력했지만 무위로 돌아갔다. 지난 10년 동안 5명의 CEO가 교체되는 등 내홍을 겪은 끝에 결국 버버리는 FTSE 100에서 퇴출됐다.
투자자문사 웰스 클럽의 찰리 허긴스 포트폴리오 매니저는 "비용 절감은 긍정적이지만, 버버리에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면서 "투자자들이 최근 몇 년간 여러 차례 실패한 버버리의 구조조정 시도를 지켜봤는데 이번 구조조정 계획은 ‘마지막 기회’처럼 느껴진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