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엔비디아 반독점법 위반 조사 착수, AI 반도체 놓고 美·中 갈등 격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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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 규제 당국, 엔비디아 예비조사 결과 발표 2020년 멜라녹스 인수 승인 조건 위반 혐의 무역회담 중 발표, 압박 수단으로 활용한 듯

중국 규제 당국이 엔비디아가 중국의 반독점법을 위반했다는 예비조사 결과를 발표하고 추가 조사를 예고했다. 엔비디아가 2020년 중국에 반도체 공급을 약속했지만, 미 행정부의 수출 규제로 공급이 중단되면서 이를 위반했다는 지적이다. 이번 조치는 미국과 중국 간 AI 반도체 시장을 둘러싼 정치·경제적 갈등 속에서 나온 것으로, 엔비디아는 미국의 수출 규제와 중국의 조사라는 이중 압박에 직면하게 됐다.
엔비디아, 美 수출 규제로 반도체 공급 중단
15일(현지 시각) 중국 국가시장감독관리총국(SMA)은 엔비디아의 반독점법 위반 혐의와 관련해 조사에 착수했다고 밝혔다. SMA는 공식 소셜미디어 계정을 통해 "예비조사 결과, 엔비디아가 멜라녹스 인수 과정에서 반독점법과 SMA가 제시한 승인 조건을 위반했다”며 “법에 따라 추가 조사를 결정했다”고 밝혔다. 해당 성명은 한 줄 분량으로 구체적인 위반 사항은 공개되지 않았다. 중국의 반독점법에 따르면 정부는 법을 위반한 기업에 대해 위법하게 얻은 소득을 몰수하고, 전년도 매출의 1~10%에 달하는 벌금에 부과할 수 있다.
엔비디아는 2019년 이스라엘 기술 기업 멜라녹스를 69억 달러(약 9조5,700억원)에 인수했고, 이듬해 4월 SMA는 이를 조건부로 승인했다. 당시 승인 조건에는 자국 시장에 엔비디아 그래픽처리장치(GPU) 가속기와 멜라녹스 고속 네트워크 상호연결 장비, 관련 소프트웨어·액세서리를 지속적으로 공급해야 한다는 내용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엔비디아는 이후 미국 정부의 대중 수출 통제로 인해 GPU 가속기 등의 공급을 중단했고, 이에 중국은 지난해 12월 반독점법 등을 위반한 혐의로 엔비디아에 대한 조사에 착수했다.
美·中 알력 싸움 속에 中 매출 3분의 1 잃어
일각에서는 엔비디아에 대한 압박이 단순한 법 집행을 넘어 미·중 간 정치·경제적 갈등이 맞물린 결과라는 분석이 나온다. 이번 SMA의 조치가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진행된 미·중 고위급 무역회담 기간 중 나왔다는 점도 이러한 해석을 뒷받침한다. 앞서 지난 13일에는 중국이 미국산 아날로그 반도체에 대한 반덤핑 조사를 개시하고, 미국 정부의 중국 반도체 산업 차별에 대한 조사도 착수했다. 무역회담을 통해 양국이 틱톡 매각, 고율 관세 유예 조치 연장 등 일부 현안에 합의했음에도, 반도체 기술을 둘러싼 긴장은 오히려 고조되는 모양새다.
미·중 간 알력 싸움 속에 엔비디아는 사실상 중국 시장에 대한 접근이 차단돼 왔다. 일례로 지난 4월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는 돌연 엔비디아의 H20 반도체에 대한 대중 수출을 금지했다. 전임 조 바이든 행정부의 첨단 반도체 대중 수출 통제 조치에 더해 성능 기준을 강화하면서 대중 수출용으로 만든 H20 반도체도 수출하지 못하도록 한 것이다. 예상치 않은 규제에 엔비디아가 입은 손해도 컸다. 당초 엔비디아는 2분기 중국 내 H20 칩 매출을 71억 달러(약 9조8,700억 원)로 예상했으나 수출 금지 조치로 이 가운데 3분의 1가량을 잃었다.
이에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는 미 행정부의 수출 통제 정책을 공개적으로 비판하며, 트럼프 대통령과 직접 만나 담판을 지었다. 그 결과 규제는 일부 완화됐지만, 엔비디아는 반도체 수출 허가를 대가로 발생한 매출의 15%를 미 정부에 내는 데 합의했다. 현재는 H20보다 성능이 뛰어난 블랙웰 기반 AI 반도체의 중국 수출을 두고 미 행정부와 협상을 진행 중이다. 그러나 미국이 규제를 강화하는 사이 중국 시장에서는 토종 기업이 점유율을 확대했고, 동시에 중국 당국의 조사까지 겹치면서 엔비디아의 입지는 갈수록 좁아지고 있다.

中 정부, 엔비디아 의존도 낮추려 규제 강화
최근에는 중국 정부를 중심으로 엔비디아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려는 움직임이 이어지고 있다. 지난 3월 중국 에너지 당국은 데이터센터용 반도체와 관련해 에너지 효율 기준을 강화했다. 전력 소모가 적은 반도체 사용을 권고하는 내용의 이 규제는 사실상 미국 엔비디아의 칩을 겨냥한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로 엔비디아의 H20 칩이 중국 정부가 제시한 기준을 충족하지 못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규제의 구체적 내용은 공개되지 않았지만, 중국산 반도체는 이를 피해 갈 수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지난 7월에는 중국 사이버공간관리국(CAC)은 엔비디아 측 관계자들을 불러 H20 칩의 잠재적 보안 위험에 관해 설명을 요구했다. 당시 CAC는 "미국의 AI 전문가들이 엔비디아 칩에 위치 확인·추적, 원격 종료와 관련해 정교한 기술이 탑재돼 있다고 지적했다"며 "엔비디아에 관련 자료 제출"을 요청했다고 밝혔다. 이에 엔비디아는 성명을 내고 "우리는 사이버 보안을 중요하게 생각한다며"며 "원격으로 칩에 접근하거나 제어할 수 있는 '백도어'를 제품에 가지고 있지 않다"고 반박했다.
다만, 전문가들은 중국이 엔비디아를 당장 내칠 수도 없는 상황이라고 진단한다. 특히 H20 칩은 고성능 연산 능력을 요구하는 자율주행, AI 모델 학습, 데이터센터 운영 등에 필수적인 부품으로 중국 기술 기업뿐 아니라 군사 기관, 국영 연구소, 대학 등에서도 수요가 폭발적이다. 로이터통신은 "엔비디아는 이미 대만 TSMC에 H20 칩셋 30만 개를 주문했을 정도로 시장 수요가 강력하다"며 "이는 중국이 AI 기술 경쟁에서 뒤처지지 않기 위해 엔비디아 칩을 반드시 확보해야 하는 상황임을 잘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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