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 내 데이터센터 ‘물먹는 하마’ 논란 격화, 전 세계 ‘물 전쟁’ 서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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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각수 사용 폭증→지역사회 갈등
글로벌 빅테크 대규모 투자 확대
공공 자원 소모 논란 확대 조짐

호주 내 데이터센터 건설이 급증하면서 물 부족 우려가 현실화하는 모습이다. 시드니에선 대규모 투자 유치 행렬에도 물 사용 규제는 지나치게 허술하다는 비판이 제기됐고, 멜버른에서는 연간 33만 명분 물 소모가 예상돼 갈등이 확산하는 상황이다. 전문가들은 글로벌 빅테크의 공격적 투자로 물 자원 갈등이 더욱 심화될 것이라고 경고한다.
데이터센터 건설 붐과 함께 물 부족 우려 확산
15일(이하 현지시각)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최근 호주 시드니에선 현지 정부가 2,000억 달러 규모의 글로벌 데이터센터 붐을 유치하는 데 혈안이 돼 물 사용에 대한 규제를 소홀히 하고 있다는 비판 여론이 들끓고 있다. 뉴사우스웨일스 주정부는 2021년 이후 접수된 10건의 데이터센터 건설 신청을 모두 승인했는데, 이 과정에서 물 사용량에 대한 구체적 예측을 요구하지 않으면서 논란을 키웠다.
로이터는 “마이크로소프트(MS), 아마존, 블랙스톤의 에어트렁크 등 이들 데이터센터는 총 66억 호주달러(약 6조원)의 건설비를 투자하겠지만, 완공 이후 연간 최대 9.6기가리터(GL)의 물을 사용하게 될 것”이라고 짚으며 “이는 시드니 전체 공급량의 약 2%에 해당해 단일 산업으로는 상당히 큰 비중을 차지한다”고 전했다. 상하수도 공기업 시드니워터 역시 “지금과 같은 추세로 데이터센터 수요가 늘어날 경우, 2035년에는 시드니 전체가 사용 가능한 물의 4분의 1을 점유할 전망”이라고 내다봤다.
문제는 시드니의 물 공급 인프라가 댐 한 곳과 담수화 플랜트 한 곳으로 제한돼 있어 인구 증가와 기후변화에 따른 수요 확대를 감당하기 어렵다는 데 있다. 실제로 시드니에선 지난 2019년 가뭄과 산불이 겹쳤을 당시 530만 명에 달하는 주민이 정원에 물을 주거나 세차를 하지 못하도록 제한을 받았던 전례가 있다. 이에 전문가들은 “이미 수요와 공급 사이에 간극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데이터센터 추가 건설은 가뭄 시기 갈증을 악화시킬 것”이라고 경고했다.
지역사회 반발 역시 거센 상황이다. 아마존과 MS, 에어트렁크의 대규모 데이터센터가 들어서는 블랙타운 지역 의회에선 “주민 의견 수렴 없이 승인 과정이 밀어붙여졌다”는 비판이 제기됐고, 일부 의원은 승인 유예를 촉구하고 나섰다. 기업들은 냉각에 물을 사용하는 기간을 최소화하겠다고 강조했지만, 실효성을 둘러싼 의문은 끊이지 않고 있다. 기업의 자율적 감축 약속에만 의존하기엔 수자원 인프라와 지역사회 우려가 이미 임계점에 도달했다는 지적이다.
시드니에서 멀지 않은 멜버른 역시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 빅토리아주 서부 지역에서는 신규 데이터센터 19곳이 건설을 신청했는데, 이들의 연간 물 소모량은 약 1만9,000메가리터(ML)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멜버른 주민 33만 명이 1년간 사용하는 물과 맞먹는 수준이다. 그럼에도 멜버른은 풍부한 전력과 토지를 근거로 적극적인 허가 정책을 펼치고 있어 갈등은 날로 격화하는 양상이다.
아마존 AI 인프라 확충 거점으로 낙점
이처럼 데이터센터와 물 소비가 충돌하는 상황에서도 아마존은 호주 내 투자를 더욱 확대하겠다고 선언했다. 지난 6월 아마존은 2029년까지 200억 호주달러(약 17조7,000억 원)를 투입해 호주 내 데이터센터 인프라를 확장·운영·유지하겠다고 발표했다. 이는 호주 역사상 가장 큰 규모의 글로벌 기술 투자 사례로 꼽히며, 클라우드 컴퓨팅과 인공지능(AI) 수요 급증에 대응하고 국가 AI 역량을 끌어올리려는 호주 정부의 전략과도 맞닿아 있다.
아마존은 아마존웹서비스(AWS)를 통해 이미 시드니와 멜버른에 데이터센터를 운영 중이며, 퍼스에는 로컬 존을 개설하는 등 10년 넘게 호주 전역에 걸쳐 인프라 투자를 단행해 왔다. 지난해 7월에는 호주 정부와 협력해 국가 안보와 국방 분야에 특화된 ‘일급 비밀’ AWS 클라우드를 제공하기도 했다. 이번 대규모 투자 계획에는 이 같은 기존 행보를 가속하고, 향후 5년간 시드니와 멜버른을 중심으로 데이터센터를 대거 확충한다는 구상이 담겨 있다.
이 같은 아마존의 청사진은 호주의 AI·클라우드 역량 강화라는 명분을 앞세우고 있지만, 물 자원 갈등이라는 구조적 한계를 동반할 수밖에 없다. 데이터센터가 가진 냉각 방식 특성상 물 사용은 불가피하며, 이미 시드니와 멜버른 지역 사회가 공급 부족을 호소하는 상황에서 추가 확장은 필연적으로 물 부족 문제를 증폭시킬 수 있다. 이는 곧 기업의 투자 확대가 약속하는 지역 경제 활성화와 기술 혁신 이면에선 수자원 관리 난제가 심화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규제 체계 모호, 기업-지역사회 갈등 심화
데이터센터가 ‘물먹는 하마’라는 지적은 오래전부터 이어져 왔다. 서버 냉각 과정에서 하루 수백만 리터에 달하는 물을 소모하는 구조적 특성 탓이다.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100MW급 데이터센터 하나는 하루 최대 200만 리터의 물을 사용하는데, 이는 약 6,500가구가 쓸 수 있는 양과 맞먹는다. 이 같은 수치는 오는 2030년엔 두 배 수준으로 늘어날 것이란 경고 또한 나왔다. 물 소비가 단순한 산업 차원의 문제를 넘어 기후변화와 맞물린 위험 요인으로 확대되고 있는 셈이다.
더 큰 문제는 이러한 시설이 대체로 물 공급에 취약한 지역을 중심으로 들어선다는 점이다. 블룸버그 분석에 의하면 2022년 이후 새로 건설된 AI 중심 데이터센터의 3분의 2 이상이 물 부족 지역에 위치한다. 미국의 경우 사상 최악의 가뭄을 겪고 있는 텍사스와 애리조나 등지에 대규모 데이터센터 캠퍼스가 추진되고 있으며, 중동과 인도, 중국 등 건조 지역도 예외가 아니다. 부지 선정 과정에서 ‘저렴한 땅값’과 ‘물 부족으로 사람이 살기 힘든 곳’이라는 조건이 맞물리며 지역사회 갈등으로 이어지는 구조다.
국내 상황 역시 다르지 않다. 경기 고양시를 비롯한 수도권 곳곳에서 데이터센터 건립 반대 시위가 이어지는 상황에서 최근에는 학교 인근 입지 논란 등 주민 안전 문제까지 맞물려 갈등은 더욱 악화하는 형국이다. 현재 국내 데이터센터의 76%가 수도권에 몰려 있는데, 생성향 AI 도입 가속화로 센터 규모가 커지고 전력·냉각수 수요가 폭증하면서 ‘공공의 골칫거리’라는 낙인 또한 점점 뚜렷해지는 실정이다.
이에 대응해 MS, 구글, 아마존 등 글로벌 빅테크들은 2030년까지 ‘물 포지티브’를 달성하겠다고 선언했다. 이는 소비하는 물보다 더 많은 양을 환경에 환원하겠다는 약속이다. 하지만 현장에서는 그 실효성에 대한 의문이 끊이지 않고 있다. 대부분의 AI 중심 데이터 센터는 여전히 물 증발에 의존하고 있으며, 2028년까지도 이 구조가 유지될 것이란 관측에서다. 보다 강력한 규제가 마련되지 않는다면, 데이터센터 산업의 확장은 환경적 지속 가능성을 위협하는 역설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일관된 지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