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딥테크] 기록적 기후 위험, 실제 성과 반영하는 신용등급 개편 시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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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적 폭염·가뭄 등 기후 충격, 국가 재정·부채 압박 공약에 치중하고 성과 반영은 미흡한 신용등급 체계 실제 성과와 위험 지표 기반의 평가 개편 필요
본 기사는 스위스 인공지능연구소(SIAI)의 SIAI Business Review 시리즈 기고문을 한국 시장 상황에 맞춰 재구성한 글입니다. 본 시리즈는 최신 기술·경제·정책 이슈에 대해 연구자의 시각을 담아, 일반 독자들에게도 이해하기 쉽게 전달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기사에 담긴 견해는 집필자의 개인적 의견이며, SIAI 또는 그 소속 기관의 공식 입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2024년 유럽은 기상 관측 이래 가장 더운 해로 기록됐다. 2023년 발생한 기후 재해 피해액은 770억 유로(약 112조원)에 달했으며, 같은 해 미국에서는 10억 달러(약 1조3,000억원) 이상 규모의 기상 재해가 27건 발생해 역대 최다를 기록했다.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는 422.5ppm으로 산업화 이전 대비 52% 높아져 배출이 여전히 전 지구적 위험을 증폭시키고 있음을 보여준다.
유럽중앙은행(ECB)은 물 부족이 유로 지역 전체 경제 생산의 약 15%를 위협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실제로 2025년 여름 라인강 수위가 크게 낮아지며 운송이 차질을 빚었고 화물 운임이 급등했다. 이후 강우로 상황은 일시적으로 완화됐으나, 공급망 불안정은 농업·제조업·서비스업 전반으로 확산되며 국경을 넘어 경제에 충격을 가했다. 기후 충격은 단순한 환경 문제가 아니라 세입 기반, 재정 지출, 부채 관리에 직접적인 부담을 안기는 구조적 요인임이 확인된 셈이다.

성과 중심 평가가 필요한 이유
국가 신용등급은 각국이 내세운 목표가 아니라 실제 성과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연구에 따르면 기온 이상이나 자연재해 빈도 같은 물리적 위험 지표는 등급 하락과 연결되지만, 그 효과는 제한적이었다. 또한 2015년 파리협정 이후에는 적극적 감축 목표와 실제 배출 강도 감소를 긍정적 지표로 평가해 왔다. 이는 신용평가가 환경 요소를 부분적으로만 반영하고 있음을 보여주며, 규제 및 거시 경제 정책에서 등급을 활용할 때 주의가 필요함을 시사한다.
이 같은 한계는 현실에서 확인된다. 유럽의 물 부족과 폭염은 재난 구호 지출 확대, 적응 투자, 농작물 손실, 공급망 차질로 이어져 세입 기반을 약화시켰다. 특히 라인강 수위 저하로 화물 운송이 막히면서 화학·철강·자동차 산업에 충격이 전해졌고, 이는 곧 세수 감소와 부채 부담으로 연결됐다. 기후 위험이 신용등급에 충분히 반영되지 않는다면 이러한 재정 압박은 과소평가될 수밖에 없다.
데이터가 드러내는 기후 충격과 재정 부담
유럽기후상태보고서는 2024년을 폭염·가뭄·빙하 손실이 동시에 나타난 가장 더운 해로 지목했다. 유럽연합집행위원회(European Commission)와 ECB는 가뭄 피해액이 연간 약 90억 유로(약 13조원)에 달하며, 유로 지역 경제 생산의 최대 15%가 수자원 부족에 노출돼 있다고 평가했다. 세계은행은 고온 시나리오에서 대응이 미흡할 경우 EU 국내총생산(GDP)의 최대 7%가 줄어들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러한 충격은 특정 산업에 국한되지 않는다. 농업이 먼저 타격을 받지만, 원자재 공급 차질, 수력발전 감소, 운송 비용 상승, 공장 가동 중단 등은 제조업 전반으로 확산된다. 이와 같은 충격은 재정계획을 불안정하게 만들며, 국채 위험 평가에 반드시 반영돼야 한다. 반복되는 이례적 사건은 더 이상 예외적 변수가 아니라 재정 압박의 구조적 요인이다.

주: 거시 경제 및 기후 위험 변수-1인당 GDP, GDP 성장률, 인플레이션, 부채비율, 경상수지/GDP 비율, 대외 부채/수출 비율, 기온 이상치(X축), 국가 신용등급에 미치는 영향(Y축)/선진국(갈색), 신흥국(회색)
국경을 넘는 기후 위험
신용등급 산정에서 드러나는 근본적 한계는 기후 위험이 한 나라의 통제를 넘어 확산된다는 점이다. 기상 이상과 수자원 부족은 하천 유역, 에너지 시장, 무역을 따라 국경을 가로지른다. 프랑스와 북이탈리아의 가뭄은 유럽 식품·산업 공급망에 영향을 주고, 지중해 지역의 가뭄은 관광산업과 전력 시스템을 압박한다.
실증 연구에 따르면 EU는 국외 가뭄 위험에도 크게 노출돼 있다. 농산물 수입의 상당 부분이 기후 위험이 큰 지역에서 들어올 것으로 전망된다. 그럼에도 국채 신용등급이 이러한 초국경적 전파 경로를 무시한다면 기후 위험을 국내 변수로 축소하는 셈이다. 실제로는 지역 전체의 소득, 물가, 부채 궤적에 영향을 미치는 통합적 충격이다. 따라서 신용평가사는 초국경 위험 지표와 무역 가중 기후 노출도를 모형에 포함할 필요가 있다.
기후 위험 반영은 여전히 제한적
규제 당국은 신용평가사들에 기후 관련 요인이 등급 산정에 어떻게 반영되는지 명확히 공개할 것을 요구해 왔다. 유럽증권시장청(ESMA)은 2024년 의견 수렴 절차와 최종 보고서를 통해 ESG 요소의 추적 가능성을 강화하는 제도 개편을 제안했다. 주요 평가사들은 자체 ESG 프레임워크를 내놓고, 일부는 기후 데이터 전문 회사를 인수했지만 실제 등급 조정에서 기후 요인이 차지하는 비중은 여전히 미약하다.
학계는 기온 이상이 국채 신용에 미치는 강력한 영향을 입증했고, 중앙은행들은 극단적 기상이 수년 안에 유로 지역 경제 성장률을 크게 낮출 수 있다고 경고한다. 문제는 공개 문서에서는 기후 위험을 강조하지만 실제 등급 변동에는 제대로 반영되지 않는 괴리다. 해결책은 설명을 늘리는 것이 아니라, 성과 중심의 기후 위험 요인을 명시적으로 평가하고 표준화된 데이터 기준을 도입하는 것이다.
평가 방식의 변화 필요
신용평가가 기후 위험을 제대로 반영하려면 방법론적 전환이 필요하다. 공식적 목표 제시보다 관측된 데이터를 기반으로 물리적 위험을 평가하고, 배출 강도 감소·전력 부문 탈탄소 실적·적응 투자 집행 등 실제 성과를 긍정적으로 반영해야 한다. 또한 기후 정책 불확실성은 국경을 넘어 국채 프리미엄에 영향을 미치므로, 이를 반영할 수 있는 모형을 도입해야 한다. 아울러 수자원과 물류 취약성도 평가에 포함돼야 한다. 이러한 접근은 설명에 그치지 않고 측정 가능한 수치를 제시하며, 신용평가의 무게 중심을 ‘정책 의지’에서 ‘실질적 영향’으로 이동시키는 역할을 한다.
단순 추정의 시사점
기후 위험이 신용등급에 미치는 영향은 단순한 시뮬레이션만으로도 추정할 수 있다. 가뭄 취약성과 수출 의존도가 큰 국채 발행국을 예시로 들면, 생산 일부가 수자원 부족에 노출될 경우 산업별 탄력성과 결합해 향후 1~3년 GDP 하락 폭을 계산할 수 있다. 이어 세입 감소와 재정수지 악화를 반영하고 예산에 포함된 적응 지출까지 더하면 순 부채 대비 GDP 경로가 도출된다. 과거 사례에 따르면 부채 비율이 상승하고 성장률이 둔화된 국가는 부정적 전망이나 실제 강등으로 이어졌다.
국제적 전파 효과까지 고려하면 위험은 더욱 뚜렷해진다. 최근 분석은 기후 정책 불확실성이 주요 교역국의 신용부도스와프(CDS)를 거쳐 해당국 금융시장으로 확산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이렇게 산출된 결과는 관측된 위험과 검증 가능한 완화 성과를 반영한 ‘기후 위험 추정 등급’으로, 시장과 정부가 참고할 수 있는 지표가 된다.
반론에 대한 응답
일각에서는 기후 위험이 장기적이어서 5~10년 범위의 국채 신용등급에는 적합하지 않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미 수십억 달러 규모의 재난이 기록적 속도로 발생하고 있으며, 2024년 유럽의 폭염 역시 일시적 현상이 아니라 구조적 변화의 신호다.
데이터 일관성이 부족하다는 주장도 있다. 하지만 규제 당국은 기후 위험 정보의 통합 공개를 요구하고 있으며, 유럽연합 통계청(Eurostat)과 주요 국제기구들은 표준화된 데이터 구축을 추진해 왔다. 신용평가사들 역시 기후 분석 회사를 인수하며 대응에 나섰다.
또 다른 시각은 공약에 보상을 부여해야 정책 집행의 유인이 생긴다고 본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현행 신용등급은 기후 위험 민감도가 제한적인 반면, 중앙은행은 실질적 거시 경제 충격을 경고하고 있다. 정책적 유인은 목표가 아니라 실행 성과와 연결돼야 한다. 실제 배출 강도 감소, 완료된 적응 프로젝트, 손실 감소 효과가 입증된 정책, 수자원·물류 인프라 강화가 디폴트 확률을 결정짓는 요인이다.
등급이 반영해야 할 현실
기후는 국가의 약속이 아니라 대기의 법칙과 실제 정책 집행에 반응한다. 2024년 유럽의 기록적 폭염과 가뭄, 라인강 운송 차질은 이를 분명히 보여준다. 충격은 크고, 국경을 넘어 얽히며 경제와 재정을 압박한다.
신용평가사들은 일부 물리적 위험을 반영하고 파리협정 이후 적극적 감축 목표와 배출 강도 감소를 긍정적으로 평가해 왔다. 그러나 현 상황은 평가 방식의 변화를 요구한다. 성과와 전파 효과를 평가하고, 수자원·물류 취약성을 거시 틀에 포함하며, 기후 정책 불확실성이 불러오는 금융시장 파급효과까지 반영해야 한다. 신용등급이 성과보다 목표에 치우친다면, 자본은 취약한 곳으로 집중될 위험이 크다. 필요한 기준은 이미 마련돼 있으며, 실행해야 할 시점은 지금이다.
본 연구 기사의 원문은 Beyond Promises: Hardwiring Real Outcomes—and Cross-Border Climate Risk—into Sovereign Credit Ratings를 참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본 기사의 저작권은 스위스 인공지능연구소(SIAI)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