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텔 이어 방위산업체 지분까지 확보하려는 美 정부, 中 견제 위한 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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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국방부, 자국 방위산업체 지분 인수 검토 중 中 산업 스파이에 시달려 온 美, 자국 기업 지분 확보로 대응? 주요 기술 수출 제한·유학생 압박 등 이전부터 견제 이어와

미국 국방부가 록히드마틴 등 주요 방위산업체들의 지분 인수 여부를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자국 반도체 기업 인텔의 지분 10%를 확보한 지 며칠 되지 않아 재차 민간 업체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나선 것이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미국의 행보가 중국의 '산업 스파이' 행위를 견제하기 위한 방책이라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美 상무장관, 록히드 지분 확보 가능성 시사
26일(이하 현지시간) 하워드 러트닉 미 상무장관은 경제 전문 매체 CNBC와의 인터뷰에서 트럼프 행정부가 인텔의 지분 취득 이후 다른 기업과도 비슷한 거래를 진행할지를 묻는 질문에 대해 “방위 산업에 대한 대규모의 논의가 진행 중”이라고 답했다. 그는 “록히드는 대부분의 수익을 연방 계약에서 창출하며 사실상 미 정부의 한 부서와도 같다”며 “(지분 취득이) 경제적 측면에서 어떤 의미가 있는지는 국방장관과 부장관에게 맡기겠다”고 말했다. 미 국방 전문 매체 디펜스뉴스에 따르면, 록히드는 지난해 기준 전 세계에서 매출 1위를 기록한 방위산업체다. 이 밖에도 미국은 RTX, 노스럽그루먼, 제너럴다이내믹스, 보잉 등 다수의 주요 방위산업체를 보유하고 있다.
해당 발언은 미국 정부가 경영난을 겪고 있는 인텔의 지분을 인수한 뒤 불과 며칠 만에 나왔다. 앞서 인텔은 지난 22일 홈페이지를 통해 트럼프 행정부가 인텔의 보통주 4억3,330만 주를 주당 20.47달러(약 2만8,630원)에 매입하는 데 동의했다고 밝혔다. 이는 인텔 지분의 9.9%에 해당하며, 총 89억 달러(약 12조4,511억원) 규모다. 이번 계약으로 미국 정부는 미국 자산운용사 블랙록(지분율 8.9%)을 제치고 인텔 최대 주주에 등극했다. 매수 자금은 '반도체 및 과학법(Chips Act)' 잔여 보조금 57억 달러(약 7조 9,740억원)와 미국 국방부 반도체 보안 프로젝트 지원금 32억 달러(약 4조 4,770억원)에서 충당했다.
中 스파이와 전쟁 벌이는 美
트럼프 행정부가 자국 업체들의 지분 확보에 속도를 내며 시장 영향력을 강화하는 가운데, 전문가들은 이 같은 행보가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한 외교 전문가는 "미국은 지난 2000년대 초반부터 중국의 산업 스파이 활동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해 왔다"며 "특히 기술 유출에 민감한 기업들의 지분을 연이어 취득하는 것은 중국 산업 스파이를 견제하기 위한 방안일 수 있다"고 짚었다. 이어 "미국 정부가 특정 기업의 지분을 갖고 있는 동안 타국으로의 기술 유출 사고가 발생할 경우, 이는 기업 대 기업이 아닌 국가 대 국가의 문제가 된다"며 "중국의 첩보 활동도 지금보다 조심스러워질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실제 미국은 중국의 산업 스파이 행위로 인해 장기간 골머리를 앓아 왔다. 지난 2020년 7월 크리스토퍼 레이 당시 미 연방수사국(FBI) 국장은 "FBI가 조사 중인 5,000여 건의 방첩 사건 중 절반은 중국과 관련된 것"이라며 "중국과 연계된 산업스파이 행위가 10년간 1,300% 증가했다"고 밝힌 바 있다.
최근 수년 사이에도 수많은 산업 스파이들이 덜미를 잡혔다. 일례로 지난 2023년 4월 나노 기술 분야의 세계적 석학인 하버드대 찰스 리버 교수는 미국 법원으로부터 가택연금 6개월, 보호관찰 2년, 벌금 5만 달러(약 7,000만원) 형을 선고받았다. 리버 교수는 2011년 연구 협력을 조건으로 중국의 우한이공대(WUT)로부터 △매월 급여 5만 달러(약 6,995만원) △연간 생활비 15만8,000달러(약 2억2,100만원) △비즈니스 클래스 왕복 항공권 등을 지원받은 혐의를 받는다. 이 사건으로 미국이 입은 피해는 수억 달러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지난 2024년에는 과거 뉴욕 주지사의 비서실 차장으로 활동했던 인물이 비밀리에 중국 정부 대리인으로 활동한 혐의로 미 수사당국에 체포되기도 했다. 기소장에 따르면 린다 쑨은 과거 코로나19 공중 보건 관련 주 정부 전화 회의에 몰래 중국 관료를 참석자로 포함시키는 등 은밀히 중국 정부를 도왔으며, 그 대가로 호화로운 삶을 누린 것으로 전해진다.

정보 유출 차단 위해 각종 조치 단행
미국은 이 같은 사례가 증가하는 것을 막기 위해 꾸준히 중국을 향한 제재를 단행해 왔다. 지난 5월 중국상용항공기공사(COMAC·코맥)에 대한 미국 기업들의 일부 핵심 부품과 기술 수출을 중단한 것이 대표적인 예다. COMAC은 중국 최초의 중형 여객기 C919를 앞세워 세계 항공 시장에 도전장을 던진 중국 국영 업체다. 이 업체는 16년 간의 연구·개발 끝에 지난 2022년 보잉737과 비슷한 크기의 C919를 완성했지만, 엔진·전력 공급 시스템 등 항공기 제어에 필요한 핵심 부품들은 미국과 유럽에 의존하고 있다.
이에 더해 미국 정부는 중국의 반도체 설계용 소프트웨어 개발 업체인 케이던스 디자인 시스템즈, 시놉시스, 지멘스 ED에 대한 수출을 중단하라고도 통보했다. 반도체 설계용 소프트웨어는 차세대 반도체 개발 과정에서 핵심 역할을 담당한다. 미국산 소프트웨어가 없다면 중국의 첨단 반도체 자체 개발 노력은 난관에 부딪힐 수밖에 없다.
아울러 같은 달 미국은 중국 공산당과 관련이 있거나, 안보와 직결되는 중요 분야에서 연구하는 이들을 비롯한 중국 학생들의 비자를 공격적으로(aggressively) 취소한다는 내용도 발표했다. 중국과 홍콩에서 들어오는 모든 비자 신청에 대한 심사를 강화하기 위해 비자 기준을 개정한다는 계획 역시 함께 공개했다. 다만 최근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인 학생 60만 명을 받아들일 것이라고 발언하며 입장을 선회한 상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