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딥테크] AI 글쓰기 교육, 단속이 아닌 이해와 활용의 방향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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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확산에 대응한 사고 과정과 근거 중심의 글쓰기 교육 전환 활용 과정을 포함한 투명한 평가 체계 확립 필요 교사 역량 강화와 공정한 학습 환경 조성이 핵심 과제
본 기사는 스위스 인공지능연구소(SIAI)의 SIAI Research Memo 시리즈 기고문을 한국 시장 상황에 맞춰 재구성한 글입니다. 본 시리즈는 최신 기술·경제·정책 이슈에 대해 연구자의 시각을 담아, 일반 독자들에게도 이해하기 쉽게 전달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기사에 담긴 견해는 집필자의 개인적 의견이며, SIAI 또는 그 소속 기관의 공식 입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미국 청소년의 학업용 ChatGPT 활용률은 1년 만에 13%에서 26%로 두 배 가까이 늘었다. 이는 단순한 유행이 아니라 학습 방식이 근본적으로 바뀌고 있음을 보여준다. 학년과 배경을 가리지 않고 확산되는 이 변화는 교실의 글쓰기가 더 이상 개인의 작업이 아니라, 인간과 인공지능이 함께 만들어가는 과정으로 전환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AI 글쓰기 교육이 이러한 현실을 외면한다면, 학생들은 앞으로의 학습과 업무에 필수적인 기술을 사용했다는 이유로 불이익을 받고, 반대로 그 사용을 숨긴 학생이 보상을 받는 불합리한 상황이 반복될 것이다. 논점은 AI를 허용할지의 문제가 아니라, 학생들이 AI를 활용해 어떤 역량을 길러야 하는가에 있다.

글쓰기 교육의 재정의
과거의 글쓰기는 개인이 혼자 사고하고 완성해야 하는 고립된 작업으로 인식됐다. 그러나 오늘날의 글쓰기는 인간과 인공지능이 함께 사고를 발전시키고 표현을 다듬는 협업의 과정으로 바뀌고 있다. 이제 글쓰기의 초점은 문장 다듬기가 아니라 사고의 흐름을 드러내고 논리를 입증하는 능력으로 옮겨가고 있다.

주: 연도(X축), 활용 비율(Y축)
AI 글쓰기 교육은 문해력의 의미를 새롭게 정립해야 한다. 질문을 근거 있는 주장으로 발전시키고, 자료를 분석·검증하며, AI와 협업해 초안을 구성하고, 자신의 논리를 명확히 설명할 수 있는 능력이 그 핵심이다. 이를 위해 문법 교정보다는 논증 설계 교육에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해야 한다. 주장과 근거의 구조화, 체계적인 노트 작성, 짧은 구술 발표가 그 구체적 방법이다. 학생은 AI를 효율적 도구로 활용하되, 판단과 책임은 인간의 몫이라는 원칙을 배워야 한다.
이러한 변화는 이미 세계 각국의 교육 현장에서 감지되고 있다. 최근 정책 방향은 AI를 금지하는 대신, 인간 중심의 활용 원칙을 마련하는 데 초점을 두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다수의 국가에는 명확한 지침이 없고, 학교 현장에서도 검증된 교육용 도구의 도입이 미흡하다. 결국 방향은 분명하다. AI를 활용하되, 사고 과정은 투명하게 관리하는 것이다.
평가 중심의 전환
평가가 AI 사용을 숨긴 학생에게 유리하게 작동한다면, 학생은 AI 활용 사실을 감출 것이다. 반대로 평가가 사고의 투명성과 근거 제시를 중시한다면, 학생은 과정을 공개하고 증거를 명확히 제시한다. 따라서 AI 글쓰기 교육은 검증 가능한 근거와 명료한 표현을 중심으로 과제를 재설계해야 한다.
형식적 에세이에서 벗어나 실제 사회의 문제를 다루는 방향으로 과제를 전환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지역 예산 지출 내역을 분석하거나, 정책 보고서를 비교·평가하고, 새로운 통계 자료를 활용해 기존 논지를 재검증하는 방식이다. 학생이 직접 조사한 내용을 바탕으로 3분 내외의 발표를 진행해 제안을 설명하도록 하는 과제도 효과적이다.
모든 과제에는 작성 과정 보고서를 함께 제출해야 한다. 이 보고서에는 사용한 프롬프트, AI가 개입한 범위, 참고 자료의 출처와 검증 절차, 그리고 약 100단어 분량의 방법론 노트가 포함된다. 이 보고서는 학생의 사고 과정을, 완성된 글은 결과를 평가하는 기준이 된다. 두 요소를 함께 평가함으로써 학습의 투명성과 학문적 성실성을 동시에 확보할 수 있다.
방법론 노트는 짧지만, 구체적이어야 한다. 예컨대 “AI 도우미로 개요를 작성하고, 2~4단락은 구조와 어조에 대한 조언을 받아 완성했다. 통계는 블로그가 아닌 미국 퓨리서치센터(Pew Research Center)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원자료와 대조했으며, 두 차례 교차 검증을 거쳐 오류를 수정했다.”와 같은 방식이다. 목표는 교사가 학생을 감시하는 역할에 머무르지 않고, 사고 과정과 근거의 질을 평가할 수 있도록 여건을 마련하는 것이다.
이러한 방향은 학생들의 요구와도 일치한다. 2024년 16개국 대학생 3,839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86%가 이미 학업에 AI를 활용하고 있다고 답했지만 58%는 AI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고 느꼈고, 48%는 AI 중심의 직업 환경에 대비되지 않았다고 했다. 이 격차가 바로 새로운 글쓰기 교육이 다뤄야 할 과제다. 검증, 공개, 맥락에 맞는 표현을 가르치고 이를 평가하는 체계가 필요하다.

주: 응답 비율(X축), 응답 항목(Y축)/학습에 AI를 사용하는 학생 비율, AI 관련 지식·기술이 부족하다고 느끼는 학생 비율, AI 시대의 일자리 환경에 준비가 부족하다고 느끼는 학생 비율(상단부터)
탐지 기술의 한계
AI 남용을 막기 위해 탐지 도구에 의존하는 학교가 늘고 있지만, 이 접근은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 개발사조차 정확도의 한계를 인정한다. 오픈AI(OpenAI)는 낮은 신뢰도를 이유로 텍스트 분류기를 폐기했고, 주요 대학과 교육기관도 탐지 결과를 징계 근거로 사용하는 것을 권하지 않는다. 전 세계적으로 널리 쓰이는 표절 검사용 소프트웨어 터니틴(Turnitin) 역시 오탐을 줄이기 위해 AI 탐지율이 20% 미만일 경우 결과를 표시하지 않는다.
탐지 도구의 한계는 명확하다. 정교하게 문장을 다듬은 학생의 글이 오히려 AI가 작성한 것으로 오판되는 사례도 있다. 탐지는 참고 자료로 활용될 수 있지만, 단독으로 판단 근거가 되어서는 안 된다. 교육 정책은 이 현실을 반영해야 한다.
또한 탐지 결과를 징계에 직접 활용하는 것은 법적·윤리적 위험을 초래한다. 불명확한 규정과 낮은 신뢰도의 기술을 근거로 학생을 제재한 사례는 이미 법적 분쟁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는 교사와 학생, 행정 간의 신뢰를 약화시키고 불필요한 갈등을 낳는다. 따라서 탐지 결과만으로 제재를 가해서는 안 되며, 증거에는 작성 과정과 출처 검증 자료가 반드시 포함돼야 한다.
교사 역량 강화와 교육 형평성
교사는 프롬프트 작성, 자료 검증, 과정 평가 등 새로운 교수 방식을 익혀야 한다. 교원 인력난이 지속되는 상황이지만, 이러한 재교육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교육 당국의 중장기 계획 또한 교사 확보와 더불어 새로운 역할 수행 역량을 핵심 과제로 제시하고 있다.
교사는 이제 AI를 교육의 보조 수단으로 활용해야 한다. 글쓰기 과정을 함께 설계하고, 논리와 근거 중심의 피드백을 제공하는 역할이 요구된다. 수업 중 실시간 검증 과정을 시연해 근거 확인 절차를 보여주거나, 학생이 주장과 출처 선택의 이유를 직접 설명하는 짧은 구술 발표를 진행하는 방식이 그 예다. 이러한 수업 방식은 단순 복제보다 사고 과정을 중시하게 만들어 AI 남용을 줄인다.
공정한 학습 환경도 중요하다. 유료 AI 서비스가 학습 격차를 확대하는 수단이 되어선 안 된다. 학교는 학생이 신뢰할 수 있는 공용 AI 도구를 사용할 수 있도록 제도적으로 지원해야 한다. 또한 비원어민 학생이 문법 교정 기능을 이용했다는 이유로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명확한 공개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
AI 활용 교육의 핵심은 사용의 적정성을 가르치는 데 있다. 아이디어를 확장하거나 자료를 검증할 때는 AI를 활용하되, 사고를 정리하거나 표현을 다듬을 때는 직접 작성하도록 하는 구분이 필요하다. 이는 글쓰기 훈련을 대체하자는 것이 아니라, 핵심 역량에 집중하자는 취지다.
변화에 대응하는 교육의 방향
AI 글쓰기 교육의 목적은 통제가 아니라 역량의 확보다. 인공지능을 활용하면 사고 과정을 명확히 드러내고, 표현의 완성도와 평가의 공정성을 높일 수 있다. 학생은 주장을 세우고 근거를 검증하며, 필요한 도움을 합리적으로 활용하는 방법을 익혀야 한다. 탐지 기술에 의존하지 않더라도, 작성 과정과 결과를 함께 평가하면 학문적 성실성을 확보할 수 있다. 학교는 공인된 도구와 명확한 지침을 마련해 교사와 학생 간의 격차를 줄이고, 개인정보 보호 체계를 강화해야 한다.
AI를 배제한 전통적 글쓰기 기준에 머문다면, 교육은 현실의 변화를 따라가지 못한다. 앞으로의 글쓰기 교육은 근거와 검증을 중심에 두고, 투명한 과정을 통해 신뢰를 쌓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본 연구 기사의 원문은 AI Writing Education: Stop Policing, Start Teaching을 참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본 기사의 저작권은 스위스 인공지능연구소(SIAI)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