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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딥테크] ‘역사적 금서 조치’ 통해 본 ‘검열과 지식 중개인의 역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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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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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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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학 전공에 관리자로 일했고 재무, 투자, 전략, 경제 등이 관심 분야입니다. 글로벌 전문가들의 시선을 충분히 이해하고 되새김질해 그들의 글 너머에 있는 깊은 의도까지 전달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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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열, 시대와 장소 가리지 않고 ‘정보 통제 수단’으로 활용
‘자기검열’, ‘사고 다양성 제약’ 등 심각한 부작용
‘지식 중개자’인 출판업자의 역할 중요

더 이코노미(The Economy) 및 산하 전문지들의 [Deep] 섹션은 해외 유수의 금융/기술/정책 전문지들에서 전하는 업계 전문가들의 의견을 담았습니다. 본사인 글로벌AI협회(GIAI)에서 번역본에 대해 콘텐츠 제휴가 진행 중입니다.

검열은 긴 시간 동안 전 세계의 언어와 출판에 영향을 미쳐 왔다. 그중에서도 주목할 만한 국가 검열은 1772~1783년 기간 중국 청 왕조의 사고전서(四庫全書) 집대성 과정에서 시작했다. 지식 통합 목적의 프로젝트가 중국 역사상 최대 금서 조치로 이어진 것이다. 이 조치로 검열이 집중된 역사, 전쟁, 종교 등 분야의 서적 출판은 현저히 줄었지만, 1840년 이후 정치 불안정으로 단속이 약해지자 금지 분야 출판은 되살아났다. 금지와 부활의 모든 과정에서 출판업자들이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사진=CEPR

사고전서(四庫全書), 중국 역사 최대 규모 ‘검열 사례’

역사적으로 검열은 문화권과 시대를 가리지 않고 정보 통제의 수단으로 사용돼 왔다. 고대 중국의 악명 높은 ‘분서갱유’(burning of books and burying of scholars)부터 1560~1966년 기간 로마 교황청이 지정한 ‘금지 출판물 목록’(Index Librorum Prohibitorum)까지 국가 및 권력기관에 의한 지식 통제는 계속해서 일어났다. 구소련에서는 엄격한 검열을 피하기 위한 ‘자체 비밀 출판’(samizdat)이 성행하기도 했다.

사고전서는 13,000권이 넘는 서적을 포함하는 중국 역사상 가장 광범위한 장서(book collection) 프로젝트였는데, 이 중에는 3,000여 권의 금지 서적도 있었다. 금서에는 제국 법령, 군사 전략, 종교 등을 포함해 청 왕조의 합법성에 대한 위협으로 간주되는 주제의 책들이 포함됐다. 이전의 간헐적 단속과 비교해 훨씬 제도화된 탄압의 성격을 띤 금서 조치는 공포심과 자기검열을 온 대륙에 전파했다.

검열은 주로 지역 관료들에 의해 집행됐는데 이들에게는 압수한 서적에 따라 보상이 주어졌다. 문제는 명확하지 않은 금지 기준이 불확실성을 낳았다는 점이다. 저자와 출판인은 물론 가족까지 처형할 정도로 가혹하지만 한편으로는 일관성 없는 처벌 수위도 지식 활동에 찬물을 끼얹었다. 체계적인 억압이 검열 집중 분야를 중심으로 상당한 출판량 감소를 가져온 것이다.

서적 분야별 검열 수위(중국, 1662~1949년)
주: 역사 기록·전기·연대기(갈색), 정치 사상·과학·의학·예술(검정), 시·수필·문학 작품(회색), 고전·유교 경전(청색)/출처=CEPR

검열, 서적 출판은 물론 ‘사고의 다양성’까지 제약

즉 1660~1949년 기간 161,000권이 넘는 서적 기록을 분석한 연구에 따르면 1770년부터 1830년 사이 검열 수위가 높았던 분야의 경우 검열이 1 표준편차 증가하면 서적 출판은 18% 감소했다. 하지만 1840년 이후 중국이 ‘아편 전쟁’과 ‘태평천국의 난’과 같은 내외부 격변에 시달리면서 상황은 급속히 바뀐다. 국가 통제력이 약화하며 서적 출판의 부흥이 시작되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중국이 외국과 조약을 맺은 지역을 중심으로 가속화되는데 이들 지역에서부터 해외의 영향력이 기존의 검열 관행을 무너뜨렸기 때문이다.

검열 효과 추이(중국, 1660~1949)
주: 연도(X축), 검열의 서적 출판에 대한 영향(Y축), *1765~1772년을 0으로 할 때 차이, 95% 신뢰구간/출처=CEPR

검열은 서적 수에 그치지 않고 책의 내용과 사고의 다양성에까지 영향을 미쳤는데, 당시 출판된 서적의 제목들에서 일정한 패턴이 발견된다. 먼저 탄압 기간에는 검열에 해당하는 내용은 물론 전혀 무관한 내용의 서적 출판까지 감소하는 모습이 감지된다. 처벌의 두려움이 금지된 주제는 물론 새로운 아이디어의 생성에도 영향을 준 것이다. 이후 검열이 느슨해지고서야 그동안 보이지 않던 새로운 키워드들이 등장해 지적 다양성의 부활을 보여준다.

금지 서적 키워드와 허용 서적 키워드 비교(금서 조치 전후, 중국)
주: 역사 분야 키워드(적색), 고전 분야 키워드(청색), * 금지 서적 키워드는 ‘명 왕조’ 등 역사, 정치, 군사 관련 용어들이 많고 허용 서적 키워드는 ‘봄, 가을’ 등 문학, 유교 경전 용어가 다수, *글자 크기와 빈도가 비례/출처=CEPR

출판인의 ‘자기검열 사례’, IT 기업과 온라인 플랫폼에도 ‘시사점’

이 과정에서 주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 자기검열이다. 저자든 출판업자든 본인들이 위험하다고 생각하는 기준을 적용해 결과물을 수정하거나 출판을 포기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검열 시행 전인 1772년 이전 사망한 저자들의 책은 검열을 의식하지 않고 씌어졌기 때문에 검열 시행 후 출판인들이 알아서 출판을 포기하는 경우가 많았다. 또한 검열 기간 생존했던 작가들과 출판인들은 검열이 중단된 이후에도 검열 분야에 해당하는 서적을 저술하거나 출판하지 않는 경향이 나타난다. 억압 기간 체화된 자기검열의 습관이 검열이 사라진 후에도 이어진다는 것이다.

또 하나 특기할 점은 출판업자들이 검열의 시행과 이후의 반전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했다는 사실이다. 검열 기간인 18세기 후반부터 19세기 초까지 서적 출판 감소의 주원인은 금지 서적 출판의 위험을 피하기 위해 업계를 떠난 출판인들인 것으로 분석된다. 하지만 1840년 이후의 부활 역시 저자들이 아닌 새로운 출판인들의 등장으로 인해 가능했다. 출판업자들의 시장 진입과 퇴출이 지식 전파의 양상을 바꿨고 결국 출판인들이 남겨질 지식과 잊힐 지식을 결정하는 게이트키퍼(gate keeper) 역할까지 담당했다는 결론이 가능해진다.

서적 출판이 검열의 억압을 이기고 재기한 사실은 지식 활동의 자생력을 입증하기는 하지만 검열이 남긴 장기적 효과도 결코 무시할 수 없다. 검열 기간 중국이 지적 정체 상태에 머무는 동안 유럽에서는 기술 및 과학 분야의 약진이 일어났던 것이다. 지식 생산과 전파의 제약은 해당 시기 중국이 산업 혁명과 세계적 변화에 합류하지 못하고 흐름에서 낙오한 주요 원인일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이로 인한 정치적, 경제적 대가는 오랫동안 중국을 힘들게 했다.

결론적으로 중국의 사고전서 사례는 지식 전파에 있어 출판인, 유통업자를 포함한 중개인들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 증언한다. 이는 IT 기업과 온라인 플랫폼들이 게이트키퍼 역할을 맡고 있는 디지털 시대에도 마찬가지다.

원문의 저자는 잉바이(Ying Bai) 홍콩 중문대학교(Chinese University of Hong Kong) 교수 외 2명입니다. 영어 원문 기사는 Book bans | CEPR에 게재돼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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