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픈AI 겨눈 일론 머스크 법정 공세, ‘그록’은 AI 챗봇 전쟁 출사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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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쟁사 불공정 경쟁 행위 문제 삼아
갈등·분쟁 통해 존재감 키우는 전략
그록 급성장에 경쟁 구도 재편 전망

일론 머스크 최고경영자(CEO)가 이끄는 xAI가 애플과 오픈AI를 상대로 ‘인공지능(AI) 경쟁 방해 불법 공모’ 혐의 소송을 제기했다. 시장에서는 이번 소송이 법정 다툼을 넘어 머스크 특유의 여론전 전략이라는 해석이 우세한 가운데, 실제로 해당 소식이 알려지면서 xAI가 선보인 챗봇 그록(Grok)의 존재감도 크게 부각됐다. 이에 업계에선 그록의 성장세와 이슈몰이가 결합해 챗봇 시장의 판도를 뒤흔드는 계기가 될 것이란 평가가 나온다.
애플·오픈AI는 정면 반박
25일(이하 현지시간) 외신에 따르면 머스크 CEO가 이끄는 소셜미디어 X(옛 트위터)와 AI 스타트업 xAI는 이날 애플·오픈AI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텍사스주 포트워스 연방 법원에 제출한 소장에서 이들 회사는 “애플이 아이폰 운영체제(OS)에 오픈AI의 AI 모델을 통합해서 산업 내 경쟁과 혁신을 억제하고, 소비자들의 선택권을 빼앗아 피해를 끼쳤다”면서 “애플은 챗GPT 이외 다른 AI 서비스가 앱스토어 인기 순위 상위권에 오르지 못하게 하는 방식으로 무대를 독점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챗GPT는 미국 내 아이폰 앱스토어에서 가장 많이 다운로드된 무료 앱이다. 머스크 CEO 측 변호인단은 “애플과 오픈AI의 독점적 합의로 챗GPT만 아이폰에 통합된 유일한 생성형 AI 챗봇이 됐다”고 짚으며 “이들이 시장을 틀어쥐고 독점 지위를 유지하며 X와 xAI 같은 혁신 기업들의 경쟁을 막고 있다”고 말했다.
애플은 즉각 반박했다. 애플 대변인은 성명을 통해 “앱스토어는 공정하고 편견 없이 설계됐다”며 “우리는 객관적 기준을 사용해 전문가들이 선별한 차트, 알고리즘 추천, 큐레이션 된 목록을 통해 수천 개의 앱을 피처링한다”고 밝혔다. 오픈AI와의 협업은 사용자 편의와 안전을 위한 비즈니스 결정일 뿐이며, 투명하고 공정한 운영이라는 자사의 원칙 또한 굳건히 유지 중이란 설명이다.
오픈AI는 애플보다 날 선 반응을 보였다. 오픈AI는 성명에서 “이번 소송은 머스크가 계속해서 보여온 ‘괴롭힘’의 패턴과 일치한다”며 무분별한 소송을 남발하는 머스크를 향해 불편한 내색을 감추지 않았다. 이는 양사의 오랜 악연에서 비롯된 것으로, 머스크 CEO는 약 10년 전 샘 올트먼 CEO와 함께 오픈AI를 공동 설립했지만, 지난 2018년 결별한 이후 지금까지 반복적인 불화를 겪고 있다.
‘이슈 제조 능력’ 양날의 검
업계에서도 이번 소송은 단순한 법적 대응을 넘어 머스크 CEO가 운영하는 기업과 서비스를 알리려는 수단이라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경쟁사의 불법 공모를 문제 삼는 동시에 시장의 관심을 xAI와 챗봇 그록(Grok)으로 끌어오는 효과를 노렸다는 해석이다. 실제로 소장이 공개된 직후 주요 글로벌 언론은 해당 사건을 집중 보도했고, 기사마다 그록의 이름이 함께 언급되면서 톡톡한 홍보 효과를 누렸다.
xAI가 오픈AI의 GPT-5 출시 직후인 이달 10일 그록4를 전 세계 사용자에게 무료로 제공한다고 발표했단 사실도 이 같은 해석에 무게를 싣는다. 머스크 CEO는 “그록4는 20만 개의 그래픽처리장치(GPU) 클러스터인 ‘콜로서스’를 활용해 강화학습으로 훈련된, 가장 뛰어난 AI”라며 이 같은 소식을 전했다. 이처럼 머스크 CEO는 ‘AI 산업의 기득권과 맞서는 도전자’라는 이미지를 구축하는 동시에, 자사의 서비스를 시장의 중심으로 끌어올리겠단 야심을 숨기지 않았다.
과거에도 머스크 CEO는 유사한 방식으로 여론을 활용했다. 그는 X의 경쟁사 메타가 X와 유사한 ‘스레드’를 출시한다는 선언에 “마크 저커버그 메타 CEO와 철창 싸움을 할 준비가 돼 있다”고 도발했다. 이후 머스크는 전 UFC 챔피언인 조르주 생 피에르와 훈련하는 근황을 전했고, 저커버그 역시 UFC 페더급 챔피언 알렉산더 볼카노프스키와 훈련하는 사진을 올리면서 맞불을 놨다. 실제 경기는 이뤄지지 않았지만, 이는 머스크 CEO의 ‘이슈 제조 능력’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가 됐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머스크 CEO를 “끊임없이 싸움을 거는 경영자”로 정의하기도 했다. 테슬라, 스페이스X 시절부터 이어져 온 각종 충돌과 갈등이 이번에는 애플과 오픈AI를 향하면서 다시 한번 반복되고 있단 지적이다. 문제는 이 같은 방식이 가져올 부작용 또한 상당하다는 점이다. 반복되는 갈등 노출은 투자자들의 신뢰를 약화시키고, 나아가서는 규제 당국의 대응을 촉발할 수 있기 때문이다. 머스크 CEO 특유의 여론전이 기업의 가치 변동성을 키우는 부작용으로 이어질 것이란 비관적 전망이 주를 이루는 배경이다.

딥시크·제미나이 제치고 챗봇 2위 안착
다만 이처럼 비관적 전망 속에서도 그록은 최근 무료화 정책을 통해 사용자 기반을 급격히 확대하며 시장 구도를 흔들고 있다. AI 전문 분석업체 원리틀웹(Onelittleweb)이 발표한 보고서에 의하면 그록은 출시된 지 1년이 채 되지 않은 상황에서 전 세계 챗봇 순위 2위에 올랐다. 불과 몇 달 전만 해도 구글의 제미나이가 검색 플랫폼과 연계한 점유율을 바탕으로 2위를 지킬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했지만, 그록의 무료 전략이 예상 밖의 파급력을 보이면서 이를 제치고 순위를 끌어올렸다는 설명이다.
사용자 지표의 질적 변화도 주목된다. 단순히 가입자 수가 늘어난 것이 아니라 체류 시간과 재사용률이 높아지면서 충성도 있는 사용자층이 형성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2024년 8월부터 2025년 7월까지 1년 간의 데이터에서 그록의 사용자 평균 체류 시간은 15분 43초로 뛰어난 사용자 몰입도를 보였으며, 성장률 측면에서도 전년 대비 134만3,408% 달하는 상승세를 자랑했다.
업계는 그록의 성장세가 향후 챗봇 시장에 중대한 변화를 일으킬 것으로 진단했다. 무료화로 확보한 대규모 사용자 기반이 지속적으로 유지될 경우, 광고·데이터 수집·부가 서비스로 이어지는 새로운 수익 모델이 구축될 것이란 기대에서다. 이는 머스크 CEO의 이슈몰이 전략 여파로 떨어진 투자자들의 신뢰를 되찾고, 종국엔 추가 자금 유치로도 이어질 수 있단 관측이다. 그록의 성장세가 xAI엔 혁신적 기회이자, 지속 가능성을 시험받는 분수령으로 평가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