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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중 패권 경쟁, 기술 설계에서 인재 양성으로 중국, 전략산업 중심 정예 교육체계로 지식 인프라 재편 미국, 구조적 교육 전략 부재로 인재 경쟁력 약화 노출

미·중 간 기술 주도권 경쟁이 심화되는 가운데, 승부의 저변이 전통적인 산업 영역을 넘어 지식 체계로 확장되고 있다. 단순한 기술력이나 공급망 통제가 아니라, 그 기반을 설계하고 이끌 고급 인재를 얼마나 확보할 수 있느냐가 중장기 경쟁력을 좌우할 변수가 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인식 전환 속 중국은 교육 시스템 전반을 ‘전략산업 중심의 정예화 구조’로 전환하며 소수 고급 인재 육성에 국가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양에서 질로, 확산에서 집중으로의 구조적 재편이 본격화되고 있는 양상이다.
中 정부, 첨단분야 연구지원 체계 고도화
7일 IT업계에 따르면 올해 초 ‘딥시크(Deepseek) 열풍’을 이끈 주역들이 베이징대·중산대 등 국내파 20~30대 개발자인 것으로 알려지면서 중국의 인공지능(AI) 인재 양성 시스템이 주목받고 있다. 딥시크 창업자 량원펑(梁文鋒) 역시 저장대 출신으로, 그는 자국 AI 인재들의 역량을 지속적으로 강조해 왔다. 량원펑은 과거 인터뷰에서 “단기 목표라면 경험 많은 인재를 쓰는 것이 맞지만, 장기적으로는 창의성과 열정이 더 중요하다”며 “이런 측면에서 중국에는 뛰어난 인재가 많다”고 말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중국은 대규모 공학 인력 양산을 통해 제조업 고도화와 인프라 확충을 뒷받침해 왔다. 그러나 이런 확장 중심의 교육 모델로는 차세대 산업 주도권을 확보하기 어렵다는 위기의식이 내부적으로 공유됐다. 중국 최고 행정기관인 국무원은 최근 공식 채널을 통해 최상위 대학, 첨단 연구기관, 특화 교육과정을 중심으로 한 인재 육성 전략에 본격 착수했음을 밝힌 바 있다. 더 이상 다수를 양산하는 교육이 아닌, 소수 정예 중심의 고도화 전략이 핵심 방향으로 자리 잡고 있다는 사실을 드러내는 대목이다.
이는 단순한 교육정책 변화가 아니라 기술 안보와 산업 주도권을 동시에 겨냥한 전략적 배치로 평가된다. 중국 교육부는 AI, 양자기술, 항공우주, 반도체 등 국가 중점 분야를 ‘전략 학과’로 설정하고, 주요 대학과 긴밀한 협업 체계를 구축 중이다. 해당 분야의 입학 문턱은 대폭 상향되고 있으며 연구지원 확대, 글로벌 공동연구 체계 강화 등 전방위적 재정비가 이뤄지고 있다.
중국 정책 당국자들이 공유하는 인식은 분명하다. 한 명의 천재가 수십만 명의 산업 인력을 설계하고, 그 설계가 국가 경쟁력을 결정짓는다는 것이다. 중국 정부의 목표가 단순한 기술 역량 확보가 아닌, 세계 시장 판도를 바꿀 수 있는 원천 기술을 자국 내에서 직접 창출하는 데 있다는 얘기다.
정예 교육 중심 기술설계 역량 강화
이 같은 교육 전환은 중국 기술 시장의 급격한 팽창 국면과 맞물려 있다. 주요 산업 리포트에 따르면 중국의 컴퓨팅 인프라, AI 응용, 디지털 산업은 2029년까지 글로벌 평균을 상회하는 성장세를 보일 것으로 전망된다. 중국 정부가 2020년 발표한 중장기 경제 발전 프로젝트인 '제14차 5개년 계획(2021~2025)' 역시 내수 고도화와 기술 자립을 이끌 핵심 축으로 혁신 주도형 성장 전략을 명확히 제시한 바 있다.
이러한 산업 고도화를 뒷받침할 결정적 자산은 물적 자본이 아니라 인적 자본이다. 하드웨어 생산 역량은 이미 일정 수준에 도달했지만 시스템 아키텍처 설계, 알고리즘 최적화, 원천 연구개발(R&D) 등에서는 여전히 고급 인재의 공급 부족이 구조적 병목으로 작용하고 있다. 이에 중국은 교육을 '전략적 산업역량'의 구성 요소로 재위치시키고 있으며 선전·상하이·항저우 등 주요 도시를 중심으로 대학, 연구기관, 스타트업이 유기적으로 연결된 정예 인재 클러스터를 빠르게 형성하고 있다. 서방 국가들이 중국의 감시 체계나 산업 보조금에 주목하는 사이, 진정한 혁신의 무대는 조용히 교육계에서 펼쳐지고 있었던 셈이다.
이처럼 중국은 이제 단순히 제조 기반을 확대하는 국가가 아니라, 핵심 기술과 개념을 설계하는 국가로 진화하고 있다. 기술 경쟁의 본질이 물리적 생산에서 지적 설계로 이동하는 지금, 교육의 전략적 위상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해지고 있다. 물론 정예화 중심의 교육 전략은 교육 기회의 불균형 심화라는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다. 그러나 중국 당국은 이를 감내 가능한 비용으로 간주하고 있다. 고도화된 경제 체제는 필연적으로 고도화된 두뇌를 필요로 하며, 혁신 없는 확장은 지속될 수 없다는 판단이 반영된 결과다.

미국의 전략 부재와 인재 경쟁력 약화
이는 미국에도 강력한 시사점을 던진다. 조 바이든 행정부와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모두 반도체 등 중국의 첨단기술 접근 차단에는 초당적으로 나섰지만, 정작 미국 내 교육 체계 전반에 대한 구조적 개편은 뚜렷한 전략이 부재하다. 중국이 정밀하고 장기적인 ‘인재 파이프라인’을 구축하는 동안, 미국은 인적 자본 경쟁력 측면에서 상대적 공백을 노출하고 있는 실정이다.
실제 미국 대학들은 여전히 세계 최고 수준의 학술 역량을 보유하고 있으나 예산 한계, 연방정부 차원의 전략 부재로 인해 국가 경쟁력으로 전환되지 못하고 있다. 소외계층을 위한 STEM(과학·기술·공학·수학) 접근성 확대 정책 등이 시도되고 있지만, 이 역시 지속성과 스케일업 측면에서 한계가 명확하다.
전문가들은 미국이 기술 패권을 유지하려면 단순히 중국의 기술 접근을 봉쇄하는 데 그쳐서는 안 된다고 입을 모은다. 중국이 ‘인재가 곧 국가 자산’이라는 인식을 정책화하고 있는 지금, 미국도 이 같은 시각을 전략으로 수용하지 않는다면 기술 패권은 물론 국가 미래 자체가 흔들릴 수 있다는 지적이다. 세계 경제는 이미 혁신이 통화인 시대로 진입했고 기술적 돌파구를 선점하는 국가가 국제 질서를 주도할 수밖에 없는 구조에 직면했다. 지식 인프라와 엘리트 인재 기반이 뒷받침되지 않는 한 아무리 최첨단 기술을 갖고 있어도 기술 패권을 지켜낼 수 없다는 의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