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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1호점 오픈한 블루보틀, 고급화 전략 강조 고정비 부담에 수익성 악화, 자본잠식까지 이어져 고가 정책 내세운 외국 브랜드, 잇단 부진 속 철수

프리미엄 이미지를 앞세운 해외 브랜드들이 한국 시장에서 고전하고 있다. 미국 캘리포니아 프리미엄 커피 브랜드 블루보틀은 수익성 악화, 자본잠식 등 잇단 재정 위기 속에 ‘슬로우 커피’ 철학을 접고 배달앱에 입점했다. 이와 함께 무료 사이즈업 혜택 등 각종 프로모션을 통해 공격적인 마케팅 전략으로 전환했다. 이 외에도 고가 정책과 고급화 전략을 강조했던 스무디킹, 에그슬럿, 수퍼두퍼버거 등도 대중화에 실패하며 한국 시장에서 철수했다.
지난해 배민에 이어 올해 쿠팡이츠 입점
19일 유통 업계에 따르면 블루보틀은 지난해 10월, 한국 진출 5년 만에 배달앱 배달의민족에 입점한 데 이어 올해 4월 쿠팡이츠에도 입점했다. 블루보틀은 현재 한국에서 17개 매장을 운영하고 있다. 진출 초기 오프라인 매장 중심의 전략을 고수했으나 최근에는 배달 가능 매장을 당초 5개 지점(역삼·한남·광화문·성수·연남)에서 10개로 늘리면서 온라인 접점을 확대했다. 브랜드의 정체성으로 강조해 온 ‘슬로우 커피’에서 탈피해 ‘속도전’으로 전환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프로모션도 공격적으로 전개하고 있다. 쿠팡이츠에서는 이달 말까지 아이스 놀라 등 시그니처 음료 5종을 주문하면 무료 사이즈업 혜택을 제공한다. 배달을 포함해 매장에서 총 7잔을 마시면 1잔을 무료로 주는 쿠폰 이벤트도 진행한다. 지난해 배민 입점 시에도 첫 주문 고객 대상 무료 사이즈업, 할인 쿠폰 제공, 온라인과 매장을 연계한 스탬프 적립 등 이와 유사한 형태의 프로모션을 진행했다. 프리미엄 이미지와 희소성을 강조해 온 블루보틀로서는 이례적인 행보다.
제품 가격 인상에도 재정 악화 막지 못해
블루보틀은 매장에서는 바리스타가 직접 핸드드립으로 커피를 내리며, 고객과 커피 맛, 제조법에 관해 대화하는 등 ‘경험’을 중시해 왔다. 미니멀리즘을 극대화한 인테리어, 불필요한 장식의 철저한 배제, 낮은 테이블과 깔끔한 가구 배치 등은 커피에 몰입하는 공간을 만들었다. 블루보틀의 로고는 글자 그대로 파란 물병 하나가 전부다. 단순한 로고, 흰색 계열 인테리어, 따뜻한 채광 등 브랜드 아이덴티티도 전 세계 매장에서 일관되게 적용해 왔다.
프리미엄 브랜드의 특성을 강조해 온 블루보틀이 변신을 택한 것은 수익성 악화 때문이다. 실제 국내 블루보틀 영업이익은 △2021년 27억원 △2022년 23억원 △2023년 19억원 △2024년 2억원으로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 지난해 매출 300억원을 넘겼으나 인건비(83억원), 임차료(29억원), 매출원가(114억원) 등 고정비 부담이 컸다. 더욱이 직영 운영 체제 특성상 매장 수가 늘수록 인건비와 임대료 부담도 함께 커지면서 수익성을 악화시켰다.
이 때문에 블루보틀은 결국 제품 가격을 인상했다. 지난 4월 1일부터 아메리카노, 라테 등 주요 음료 가격을 300~900원 인상했다. 업계 평균(200~500원)에 비해 다소 높은 인상 폭이다. 아메리카노는 5,600원에서 5,900원으로, 라테는 6,600원에서 6,900원으로 올랐다. 블루보틀커피코리아 측은 "생두와 우유 등 원부자재와 인건비 상승이 지속됨에 따라 일부 제품 가격을 조정했다"며 "그간 비용 절감을 통해 인상 요인을 흡수해 왔다"고 설명했다.
해외 계열사로 비용 지출도 부담 요인으로 작용했다. 블루보틀코리아는 블루보틀홀딩스와 네슬레가 각각 75%, 25% 지분을 보유한 100% 외국계 자본 회사다. 국가별 법인은 현지에서 발생한 매출로 본사·계열사에 비용을 지불하는데 한국법인은 지난해 계열사에 원두 매입비, 로열티, 서비스 수수료 등 명목으로 43억원을 지급했다. 여기에 일본 네슬레 법인에서 조달한 132억원 규모 장기차입금에 따른 이자 비용도 10억4,000만원에 달했다.
재무 구조가 흔들리면서 재정 건전성에도 빨간 불이 들어왔다. 지난해 현금성 자산이 190만원에 그쳤고 영업활동으로 인한 현금흐름도 2억5,700만원으로 순유출을 기록했다. 자금난을 겪으면서 네슬레에 대한 장기차입금(132억원)에 더해 지난해 한국씨티은행으로부터 10억여원을 단기 차입했다. 여기에 외화환산손실 10억원이 반영돼 당기순이익이 적자로 돌아서면서 자본총계는 10억원으로 자본금(17억원)보다 적어 자본잠식에 들어섰다.

캐나다 브랜드 팀홀튼도 첫 직영점 폐점
부진을 겪는 것은 블루보틀 만이 아니다. 스무디킹코리아는 지난해 한국 진출 22년 만에 국내 사업을 종료하고, 대기 인파를 모으며 주목받았던 햄버거 프랜차이즈 에그슬럿도 진출 4년 만에 매장 수를 크게 줄였다. 미국 프리미엄 수제버거 브랜드 수퍼두퍼버거와 자니로켓 역시 고급화 전략이 통하지 않으면서 영업손실이 누적돼 한국 시장에서 철수했다. 지난 2023년 12월 1호점을 오픈한 캐나다 커피 브랜드 팀홀튼은 6월 1일 자로 인천 청라지점의 영업을 종료했다. 한국 진출 이후 첫 직영점 폐점 사례로 해당 매장은 개점 1년 만에 문을 닫았다.
그동안 업계 관계자들 사이에서 한국은 고가 마케팅 전략이 통하는 시장으로 인식됐다. 한국 소비자들은 유행에 민감하고, 얼리어답터가 많다. 남들에게 뒤처지는 것을 꺼리고 평균에서 멀어지는 것에 두려움을 갖는 성향에 한국 특유의 ‘빨리빨리’ 문화가 더해진 결과다. 특히 새로운 소비 권력으로 부상한 MZ세대의 소비 행태를 보면, 좀 비싸더라도 희소하거나 유명하면 값을 더 지불하는 데 거리낌이 없고, 이를 SNS 등을 통해 과시하는 것에 재미를 느낀다. 해외에서도 화제가 된 ‘오픈런’ 문화를 주도한 것도 바로 한국의 젊은이들이다.
그러나 근래 들어 상황이 바뀌었다. 프리미엄 전략을 내세운 외국 브랜드들은 한국 시장의 트렌드 변화와 소비자의 니즈를 충분히 파악하지 못했고 현지화 전략도 부재했다. 온라인 유통 채널과 빠른 배송 등 디지털 생태계에 익숙한 한국 시장의 특성을 간과한 채, 오프라인 체험형 매장 등 전통적 유통채널에 의존하면서 한계를 드러냈고, 프리미엄 외에는 뚜렷한 강점을 보여주지 못하면서 브랜드 차별화에서도 뒤처졌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외식 물가가 전반적으로 오르면서 소비자들의 지출 여력도 줄어든 상황도 프리미엄 브랜드의 부진에 영향을 미쳤다. 반면 국내 브랜드들은 소비자들이 가성비와 실속을 중시하게 되자, 한국 시장에 맞는 제품과 서비스, 마케팅을 지속적으로 강화하며 경쟁력을 키웠다. 일례로 커피 프랜차이즈 시장에서는 메가커피, 컴포즈커피 등 저가 커피 브랜드는 합리적인 가격과 접근성을 무기로 빠르게 성장했고 이들의 시장 점유율이 40%를 넘어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