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수정
체코 법원, 프랑스 요청에 계약금지 가처분 법정 공방 장기화 전망, 프랑스 출신 EU 당국자도 압박 국내 업계 해외 원전 수출 '빨간불'

당초 이달 7일로 예정됐던 체코 정부와 한국수력원자력의 체코 신규 원자력발전소 건설사업 최종 계약이 현지 총선 이후로 미뤄질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한수원과의 경쟁에서 탈락한 프랑스전력공사(EDF)의 법적 문제 제기 때문이다. 본안 소송이 이어질 경우 본계약이 1년 이상 지연되는 것은 물론 국내 원전 사업 자체가 흔들릴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법원 결정 이어 총리실도 '연기' 공언
27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페트르 피알라 체코 총리는 한수원과 두코바니Ⅱ 원자력발전사(EDU Ⅱ)의 원전 프로젝트 최종계약이 10월 이후로 연기될 수 있다고 밝혔다. 페트르 피알라 체코 총리는 이날 2036년 신규 원전 가동을 시작한다는 애초 일정은 여전히 유효하다면서도 두코바니 원전 건설 최종계약이 현 정부 임기 종료 전까지 체결되지 않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현 정부가 계약을 체결할 수 있길 여전히 희망한다고는 했지만 "이젠 이뤄질지 모르겠다. 우리가 아니라 법원 손에 달려있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한수원과 발주사인 EDU II는 이달 7일 최종 계약을 체결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계약 하루 전, 체코 브르노 지방법원이 경쟁사 EDF가 제기한 가처분 신청을 받아들이면서 본안 소송 판결이 나올 때까지 계약 체결을 금지한다고 결정하면서 무산됐다. 이에 EDU II와 한수원 측은 가처분 결정에 불복해 체코 최고법원에 항고한 상태다.
동시에 EDU II는 브르노 지방법원에 가처분 결정을 철회해 달라는 별도 신청도 제기했다. EDU II는 법원이 다른 당사자들의 의견을 듣지 않고 일방적으로 판단했고, 이번 결정으로 원전 건설 프로젝트 전체 일정이 위태로워졌단 입장이다. 로이터에 따르면 EDF는 체코 사법부뿐 아니라 유럽연합(EU)에도 이의를 제기한 상황으로, EU 집행위원회는 현재 조사 착수 여부를 검토 중이다.

프랑스전력공사, 본안 소송 제기
EDF는 한수원이 이번 사업의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된 지난해 7월부터 줄곧 입찰 절차가 불공정하다고 주장해 왔다. EDF는 체코의 경쟁당국인 경쟁보호청(UOHS)에 제소해 계약 중지 예비조치 명령을 이끌어내기도 했다. 그럼에도 체코 정부는 줄곧 계약에 문제가 없다고 강조해 왔고, 지난달 24일 UOHS가 최종 기각을 결정하자 본 계약 일정을 이달 7일로 확정했다. EDF가 지난 2일 UOHS의 결정도 부당하다며 체코 법원에 소송을 제기했지만 체코 측은 기존 일정을 바꾸지 않았다.
핵심 쟁점은 이 사업이 EU 공공조달법 상 예외인 국가안보 사업인지 여부다. EU는 회원국 간 동등한 입찰 기회를 제공하자는 취지에서 각국 공공입찰 절차를 투명하게 진행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체코 측은 이번 사업이 국가안보상 예외에 해당한다고 보고 공공조달법상 일반 절차를 생략했고, EDF가 이를 문제 삼았다.
이외에도 EDF는 체코 측이 애초 원전 1기 입찰로 시작했다가 2기에 2기를 더한 형태로 조건을 변경하며 공정 경쟁을 저해했으며, 한수원이 한국 정부 지원 아래 현저히 낮은 입찰 가격을 써냈다고도 주장하고 있다. EU 집행위원회에도 한수원이 외국 보조금 규정을 위반했을 가능성이 있다며 조사를 요청했다. 특히 EU 집행위에서 번영·산업전략을 담당하는 스테판 세주르네 수석 부집행위원장(전 프랑스 외무장관)은 루카시 블체크 체코 산업통상장관에게 ‘신규 원전 계약 서명 중단을 위한 즉각적인 조치 요청’이라는 제목의 서한을 보내며, 계약 무산을 위한 압박 수위를 높이고 있다.
“다른 원전 수주 뺏길라” 프랑스 끈질긴 소송
우리 정부는 계약 연기는 불가피하나 과도한 지연이 있지는 않을 것으로 보고 있지만, 여전히 우려는 크다. 관련 업계에선 당사자 간 합의를 전제로 6~8주 내 해결되리란 장밋빛 전망도 나오지만 EDF가 계약 무산을 위해 전방위적인 압력을 가하고 있어 합의 가능성은 낮다는 판단이다. 법원이 본안과 별개로 가처분 명령을 해제할 가능성도 있으나 이 역시 전례상 6~8개월은 걸린다.
문제는 지연에 따라 늘어나는 공사비다. 이 경우 늘어나는 부담을 누가 떠안을지가 관건이다. 한 에너지업계 관계자는 “올해 3월 본계약을 기준으로 협력 업체들에 견적서를 받아 최종 입찰액을 써냈는데, 1년 이상 계약이 늦어지면 부품·인건비 등이 증가해 공사비 증액 요구가 불가피해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실제 과거 아랍에미리트 원전 수출 사업을 진행할 때에도 중간에 공사비가 증가했는데, 이를 두고 현재 한국전력과 한수원 사이에 분쟁이 진행 중이다.
일각에서는 체코 원전 수주 연기로 최근 탈원전에 힘 쏟고 있는 유럽 국가의 원전 수주 가능성도 옅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프랑스가 원전 시장에서 낮아질 국제적 위상을 우려해 지속적으로 물고 늘어질 가능성이 있다는 지적이다. 실제 프랑스는 최근 스웨덴, 핀란드, 네덜란드, 이탈리아, 슬로베니아, 슬로바키아 등 여러 국가가 원전에 관심을 보이는 상황에서 계약 수주 능력을 입증하기 위해 혈안이 된 상태다. EDF는 2년 전 폴란드 계약 건도 미국 웨스팅하우스에 빼앗긴 적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