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벨리온-사피온 합병 마무리 수순, SK 지분 매각으로 리벨리온 경영진 대주주 지위 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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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벨리온-사피온 합병 본계약 체결, SK는 지분 최대 6% 매각
'시장 대응' 위해 최대주주 보장했다지만, "법률 리스크 피하기 위함인 듯"
합병 법인 기업가치 최대 4조원 추산, IPO 추진 본격화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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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일 리벨리온과 SK 계열사 사피온코리아 간 합병을 위한 본계약을 체결한 이후 박성현 리벨리온 대표(오른쪽)가 유영상 SKT CEO와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사진=SK텔레콤

AI 반도체 설계 업체 리벨리온과 SK 계열 사피온코리아가 합병을 위한 본계약을 체결했다. 합병 비율은 논의 끝에 2.4:1로 결정됐으며, SK는 합병 과정에서 자사 지분 일부를 매각키로 했다. 이에 따라 리벨리온의 경영진이 SK보다 1% 많은 지분을 가져 합병 법인의 최대 주주 지위를 보장받게 됐다.

리벨리온-사피온 합병, 합병 비율은 2.4:1

20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리벨리온과 SK텔레콤은 합병 비율을 놓고 줄다리기를 계속해 온 끝에 2.4:1에서 합의점을 찾았다. 당초 SK 측에선 2대 1의 합병 비율 제시했지만, 리벨리온 측 주주들의 반발이 심했다. 양사의 기업가치에 차이가 컸기 때문이다. 리벨리온은 시리즈 B 라운드 당시 기업가치 8,066억원을 인정받은 바 있으며, 사피온은 기업가치 3,325억원을 인정받았다.

본계약이 체결되기까지 양측이 가장 중요하게 고려한 부분은 SK 측 지분율이었다. SK가 대주주가 되지 않도록 합병 비율, 콜옵션 조건 등을 조정한 것이다. 양사의 지분 구조는 외부에 명확히 공개돼 있지 않지만, 업계에 따르면 리벨리온의 지분은 박성현 대표 등 경영진이 총 36%를 보유해 대주주 지위를 갖고 있다. 사피온코리아의 경우 미국 사피온INC가 지분 100%를 보유하고 있으며, 사피온INC 지분은 SK텔레콤(62.5%), SK하이닉스(25%), SK스퀘어(12.5%)가 나눠서 전량 보유 중이다.

지난해 8월 시리즈 A 단계에 총 600억원을 투자했던 하나금융그룹, 미래에셋벤처투자, 위벤처스 등 외부 투자자들은 컨버터블 노트(Convertible Note) 형태로 들어가 있기 때문에 아직 에쿼티를 가진 주주로 인식되지 않는다. 컨버터블 노트란 전환권을 행사해 주식으로 바꾸거나 만기일에 원금과 이자를 상환받을 수 있는 방식의 ‘오픈형 전환사채(CB)’다. 단 CB와 달리 전환 가격을 미리 정해두지 않는다. 이 상태에서 리벨리온과 사피온이 2.4:1로 합병하면 합병 법인에 대한 박 대표 등 경영진의 지분율은 25%가 넘을 것으로 추산된다. 현재 SK 측 지분율은 29%대로 추정되는데, 외부 투자자들이 컨버터블 노트를 주식으로 전환한다면 SK 지분이 희석돼 29% 아래로 내려갈 수 있다.

SK 측은 이를 고려해 지분 3%(합병 법인 기준)를 양사 합병 전까지 제3자에게 매각할 방침이다. 리벨리온 경영진에게 최대 주주 지위를 보장하고 자사는 2대 주주가 되겠단 것이다. 업계에 따르면 SK가 3%의 지분을 정리하면 리벨리온 경영진 지분율이 SK보다 1% 정도 높아질 수 있다. 이후 SK가 3% 지분을 추가로 더 매각할 가능성도 남아 있다. 박 대표 등 리벨리온 대주주에게 콜옵션을 부여했기 때문이다. 결국 SK가 합병 법인 지분 6%를 정리해 대주주 자리에서 내려오는 상황이 연출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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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벨리온에 최대 주주 지위 넘긴 속내는

리벨리온과 SK는 연내 합병 법인을 출범한 뒤 속도전을 펼칠 계획이다. 이에 대해 박 대표는 “이번 계약은 한국 AI 반도체의 도약을 위해 국가 차원의 총력전이 필요하다는 공감대 아래 투자자·사업파트너 등의 대승적 결단과 지지가 있었기에 가능했다”며 “어느 때보다 치열한 ‘AI 반도체 전쟁’ 속에서 글로벌 기업으로 우뚝 서겠다”고 힘줘 말했다. 리벨리온에 최대 주주 지위를 보장한 것도 총력전 과정에서 시장의 변화에 빠르게 대응하기 위함이라는 게 SK 측의 설명이다.

다만 시장에선 현행 공정거래법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최대 주주 지위를 넘겨줬다는 시선이 지배적이다. 공정거래법상 ‘기업집단 소속회사’가 그룹 내 계열사와 거래할 시 비계열사와의 거래와 차등을 두는 행위는 부당 내부거래로 규정될 위험이 있다. 또 대규모 내부거래가 있을 때는 이사회의 의결을 거쳐 공시할 의무가 있다. 즉 리벨리온과 사피온의 합병 법인이 SK그룹에 속할 경우 SK하이닉스 등 계열사들과의 내부거래에 제약이 생길 수 있단 것이다. SK가 고육지책을 짜낼 수밖에 없었던 이유다.

IPO 도전 가시권, 남은 과제는 수익성

SK 측은 향후 리벨리온-사피온 합병 법인 기업공개(IPO)에 주력할 것으로 전망된다. 합병 비율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하지 못한 만큼 기업가치가 커질 때 하루빨리 IPO를 현실화해 현금을 끌어오려 할 가능성이 높단 것이다.

IPO 일정은 우선 당초 추진하던 리벨리온의 일정을 그대로 따라갈 예정이다. 리벨리온은 지난 7월 삼성증권을 대표 주관사로 선정하고 내년 상장을 목표로 본격적인 절차를 진행 중인 상황이다. 합병 절차가 차질 없이 진행된다면 기업 규모가 커진 만큼 유가증권시장(코스피)에 입성할 가능성도 점쳐진다. 시장에선 합병 법인의 기업가치를 2조~3조원 수준에서 최대 4조원까지 내다보고 있다.

남은 과제는 수익성 제고다. 출범 3년차인 사피온코리아는 지난해 연간 매출 56억원에 영업손실 259억원을 기록하며 적자를 이었다. 같은 기간 리벨리온 역시 매출 27억원에 영업손실 159억원이라는 저조한 성적표를 받았다. 양사가 합병을 한다고 해서 당장 시너지를 내는 건 어려울 수 있다는 의미다. 양사의 연간 매출을 합한 83억원은 유망 스타트업을 기준으로 봐도 적은 수치인데, 양사의 손실 증가 폭을 적용하면 올해 영업손실은 합산 900억원이 넘을 것으로 추산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