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 팹리스 점유율 고작 1.5%, 스케일업 위해 1.1조원 ‘반도체 생태계 펀드’ 가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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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스템 반도체 수요 증가에 팹리스 시장 빠르게 성장
세계 50대 팹리스에 韓 기업은 LX세미콘 단 한 곳뿐
이대로라면 영세한 韓 팹리스 상당수가 도태될 수도
3D render CPU Technological background. Concept circuit board with computer central processing unit. Digital Chip Integrated Communication Processor. Copy space.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인공지능(AI)·사물인터넷(IoT)·자율주행차 등의 핵심 부품으로 활용되는 시스템 반도체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가운데, 시스템 반도체의 첨병으로 불리는 팹리스(반도체 설계) 시장이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하지만 국내 팹리스 기업 대부분은 규모 면에서 영세한 스타트업이나 중소기업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 사이 엔비디아, 퀄컴 등 미국 기업을 중심으로 팹리스 시장의 쏠림 현상이 갈수록 심화하고 있어 향후 영세한 국내 팹리스 상당수가 도태될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시스템 반도체 점유율 3%, 대만·일본에 뒤처져

14일 시장조사기관 옴디아에 따르면 지난해 전 세계 팹리스 시장 규모는 전년 대비 6% 늘어난 2,186억 달러(약 294조3,700억원)로 성장했다. 올해 1분기에도 시장 규모가 전년 동기 대비 43% 성장한 만큼, 이러한 추세라면 연간 기준 두 자릿수 성장률을 달성할 가능성이 높다.

현재 반도체 시장은 크게 메모리 반도체와 시스템 반도체로 나뉘는데 팹리스는 AI·IoT·자율주행차 등에 사용되는 시스템 반도체의 핵심 공정으로 꼽힌다. 2022년 기준 전 세계 반도체 시장은 메모리 반도체가 24%, 시스템 반도체가 61%의 비중을 차지한다. 시스템 반도체 생태계의 경우 반도체 설계자산(IP) 기업, 팹리스, 디자인하우스, 파운드리, 후공정(OAST)으로 이뤄지며, 프로세스마다 해당 분야의 전문기업이 철저히 분담하는 구조로 운영된다.

반도체 개발부터 생산까지 자체적으로 하는 종합 반도체 기업은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는 기술 트렌드를 쫓아가는 데 한계가 있다 보니 반도체를 발 빠르게 개발한 뒤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에 맡기는 방식으로 시장이 급성장하고 있다. 한국반도체산업협회가 분석한 시스템 반도체 국가별 시장 점유율을 보면 미국이 70%로 압도적인 1위를 차지하고 있고, 대만 6.7%, 일본 5.6%, 중국·홍콩 5.2% 등이 뒤를 따르고 있다. 한국의 점유율은 대만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3%에 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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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택 산업통상자원부 1차관(왼쪽)이 14일 반도체 관련 기업들 관계자들을 만나 ‘AI 반도체 경쟁력 강화를 위한 간담회’를 주재하고 있다/사진=산업통상자원부

산업부, 팹리스 스케일업 위해 1.1조원 펀드 가동

팹리스만 떼놓고 보면 상황은 더욱 열악하다. 전 세계 팹리스 시장에서 한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1.5%로 여전히 변방에 머물러 있다. 미국 56.8%, 대만 20.7%, 중국 16.7% 등 반도체 분야의 경쟁국과 국가들과 비교해도 크게 낮은 수치다. 세계 10대 팹리스 기업에도 한국은 없다. 미국은 엔비디아, 퀄컴, 브로드컴, AMD, 마벨, 옴니비전 등 6곳이 이름을 올렸고, 대만은 미디어텍, 노바텍, 리얼텍이 10위권에 들었다. 중국 최대 팹리스 쯔광잔루이(Unisoc)도 지난해 처음으로 10위에 올랐다. 전 세계 팹리스 시장이 80%에 육박한 점유율을 확보한 미국 기업과 대만 경쟁사를 중심으로 재편되면서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심화하는 양상이다. 이에 국내 반도체업계는 영세한 국내 팹리스 상당수가 도태할 수밖에 없다고 우려한다.

실제로 중소벤처기업연구원에 따르면 2022년 기준 국내 팹리스는 200여 곳으로 세계 50대 팹리스에 이름을 올린 기업은 LX세미콘이 유일하다. 코스닥 상장 기업은 19개에 불과하며, 최근 3년간 1조원 이상의 매출을 올린 기업도 1개뿐이다. 심지어 전체 팹리스의 60%가 최근 3년간 영업이익이 없거나 영업손실을 봤고 절반에 가까운 기업들이 초기 성장기에 머물러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창업 초기 투자 비용 확보는 물론 R&D(연구개발) 인력 수급에도 한계가 있고, 거래처 확보나 인프라 지원 등도 저조한 상황이다.

이에 14일 산업통상자원부는 시스템 반도체 기업의 대형화를 위해 스케일업이나 인수합병(M&A)을 목적으로 하는 팹리스를 지원하는 ‘반도체 생태계 펀드’를 3분기부터 본격 집행하겠다고 밝혔다. 앞서 지난해 7월 정부는 반도체 기업 750억원, 정책금융 750억원, 민간 출자 1,500억원 등 총 3,000억원 규모의 반도체 생태계 펀드 조성 계획을 발표했다. 정부는 해당 펀드 조성을 오는 2025년까지 마무리하고 여기에 신규 펀드 8,000억원을 추가로 조성해 총 1조1,000억원 규모로 펀드를 증액하는 방안도 추진한다.

팹리스 성장 위해 시스템 반도체 생태계 조성 필요

그러나 업계는 정부가 시스템 반도체 산업을 육성하기 위해 금융지원 등 방안을 내놓고 있지만, 반도체 정책 자체가 유기적이지 못하고 파편적으로 운영되다 보니 체계적인 지원이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한 팹리스 관계자는 “설계자산, 전자설계자동화, 디자인하우스, 후공정으로 이어지는 생태계 조성이 선행돼야 하는데 미국, 중국, 유럽 등 해외 기업과 비교해 정부 차원의 지원이 체계적으로 이뤄지지 못하다 보니 기초체력을 키우기 어려운 환경”이라고 호소했다.

실제 정부 지원과 함께 생태계 육성을 앞에서 이끌어줘야 하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또한 당장 시장이 급성장 중인 고대역폭메모리(HBM)에 투자를 집중하는 상황이어서 팹리스 생태계 육성은 우선순위에서 계속 미뤄지고 있다. 여기에 제3판교 테크노밸리에 구축하기로 한 시스템 반도체 클러스터 사업마저 지지부진하다. 해당 사업의 경우 현재 국토교통부와 경기도 승인은 마쳤으나, 성남시가 부지 배분을 확정 짓지 못해 여전히 논의 중인 것으로 전해진다.

이에 일각에서는 정책을 총괄하는 컨트롤타워를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현재 해당 정책은 산업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중소벤처기업부 등 3개 부처로 업무가 분산돼 정작 어느 부처 하나 지원을 집중하기 어려운 상황이기 때문이다. 주원인으로는 탑다운 운영 방식의 한계가 거론된다. 3개 부처 모두 R&D 과제가 많고 지원금도 작지 않지만, 정부가 과제의 상세한 스펙까지 정하고 여기에 맞는 제안을 기업체가 하는 방식으로 시장이 빠르게 변하는 상황에서는 이미 정해진 스펙으로 과제를 수행하면 나중에 쓸모없게 돼버리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