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의 비만약’ 위고비·젭바운드, 투약 중단하면 체중 복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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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LP-1 유사체 비만 치료제, 요요현상 확인
고혈압, 당뇨병처럼 평생 투약하며 관리해야 
‘유전자’ 조작해 살 빼는 RNA 치료제 개발 돌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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젭바운드, 위고비/사진=일라이 릴리, 노보 노디스크

‘꿈의 비만약’으로 불리는 위고비(Wegovy), 젭바운드(Zepbound)로 체중 감량에 성공해도 약을 끊으면 체중이 다시 원래대로 돌아가는 요요현상이 일어나는 것으로 확인됐다. 요요현상을 막으려면 비만도 고혈압이나 당뇨병처럼 약으로 평생 관리해야 한다는 것이다.

위고비·젭바운드, 주사제 끊으면 ‘요요’

13일 바이오업계에 따르면 뉴욕타임스(NYT)는 지난 9일(현지 시각) ‘글루카곤 유사 펩타이드(GLP)-1′ 유사체 기반 체중 감량에 성공해도 약을 갑자기 끊으면 대부분 체중이 원래대로 돌아온다는 전문가들의 의견을 전했다. 데이비드 커밍스(David Cummings) 미국 워싱턴대 의대 교수는 “위고비나 젭바운드로 체중을 감량한 사람이 약을 끊으면 거의 모두 원래 체중으로 돌아왔다”며 “체중뿐 아니라 혈당과 지질 수치 등 비만 인자도 이전 수치로 돌아왔다”고 말했다. 이어 커밍스 교수는 “지금까지 어떤 방법을 써도 이들 주사제를 멈춘 후 요요현상을 겪지 않은 환자는 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미첼 라자(Mitchell Lazar)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의대 교수도 “체중을 완벽하게 감량시키는 마법 같은 방법은 없다”고 말했다.

덴마크 제약사 노보 노디스크가 개발한 위고비(성분명 세마글루타이드)는 대표적인 GLP-1 유사체 비만 치료제다. GLP-1을 흉내 내 인슐린 분비를 자극하고 식욕을 줄이며 포만감을 높이는 원리다. 미국 일라이 릴리가 개발한 젭바운드(성분명 티르제파타이드)는 GLP-1과 동시에 ‘위 억제 펩타이드(GIP)’를 흉내 낸다. GIP는 지방세포를 분해하고 메스꺼움을 줄여준다. 두 분자를 모두 모방하면 체중 감량에 시너지 효과가 난다.

이번 분석과 관련해 앨리슨 슈나이더(Allison Schneider) 노보 노디스크 대변인은 “임상시험 단계에서 (요요현상을 막기 위한) 체계적인 연구가 진행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위고비가 처음부터 비만 치료제로 개발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위고비는 원래 당뇨병 치료제(오젬픽)로 나왔다가 체중 감량 효과가 밝혀지며 비만 치료제로 재탄생했다. 젭바운드도 마찬가지다. 젭바운드 역시 원래 당뇨병 치료제인 마운자로로 나왔지만 체중 감량 효과가 밝혀지며 비만 치료제로 변신했다.

건강관리데이터 업체 트루베타와 펜실베이니아대 의대 공동 연구진이 진행한 연구 결과, 당뇨병이 없는 비만 환자는 절반 이상이 위고비 또는 젭바운드를 투여한 지 1년 이내에 체중 감량 효과를 보고 중단했다. 그러자 3분의 1이 요요현상으로 인해 다시 투여를 시작했다. 이 연구 결과는 지난달 29일 논문 사전공개 사이트 ‘메드아카이브(medRxiv)’에 실렸다.

전문의들은 요요현상이 없으려면 위고비, 젭바운드 등 GLP-1 비만치료제를 영원히 맞아야 하며, 비만 역시 고혈압이나 당뇨병처럼 평생 치료해야 한다고 보고 있다. 다만 이들 주사제를 평생 맞는다고 체중이 계속 줄어드는 것도 아니다. 슈나이더 대변인은 “임상실험 결과 위고비를 계속 맞더라도 약 60주 후에는 체중 감량이 멈추고 일정 체중이 지속됐다”고 말했다. 노보 노디스크와 일라이 릴리 자문위원회에 속한 애니아 재스트레보프(Ania Jastreboff) 미국 예일대 의대 교수는 “위고비와 젭바운드를 오래 맞더라도 어느 순간 음식에 대한 갈망이 돌아오기 때문”이라며 “하지만 약을 투여하기 전보다 적은 양만 먹어도 포만감을 느끼기 때문에, 감량한 체중을 유지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바이오업계, 요요현상 차단에 초점

이에 바이오업계는 체중을 감량하는 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체중을 유지하는 기능까지 더하기 위한 임상에 돌입한 상태다. 글로벌 제약사 리제네론(Regeneron)은 위고비에 근육량 유지 효과가 있는 항체를 함께 병용하는 임상 2상을 시작할 예정이다. 이번 임상을 통해 체중 감량뿐 아니라 근육 유지량, 치료제 중단 후 체중 유지가 되는지까지 검토해 보겠다는 계획이다.

리제네론이 개발한 트레보그루맙(trevogrumab)과 가레토스맙(garetosmab) 등 2개의 항체는 당초 노화로 인해 근육이 감소되는 ‘근감소증’ 치료제 후보 물질로 개발돼 오던 것으로, 근육의 손실을 막는 역할을 한다. 일라이 릴리 역시 젭바운드와 지난해 인수한 근감소증 치료제 비마그루맙(bimagrumab)의 병용 치료를 계획하고 있다. 최근 실적 발표에서 일라이 릴리의 최고과학책임자 겸 릴리연구소 소장인 대니얼 스코브론스키(Daniel Skovronsky) 박사는 “비마그루맙의 근육 유지 효과가 기존의 비만치료제와 함께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는지 확인할 것”이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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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커스 쉰들러 노보노디스크 최고과학책임자(CSO)/사진=노보 노디스크

기존 약은 식욕 억제, RNA 치료제로 유전자 치료

비만을 완전히 없애기 위한 유전자 치료법 연구도 진행되고 있다. 비만은 유전의 영향을 많이 받는 만큼 인체가 저절로 에너지 소비를 늘리도록 유전자를 개조하는 약을 만들겠다는 구상이다. 리제네론은 미국 바이오기업 앨라일람 파마슈티컬스(Alnylam Pharmaceuticals)과 함께 ‘리보핵산(RNA) 간섭’ 기술을 활용한 유전자 비만치료제를 개발 중이다. RNA는 DNA의 유전 정보를 복사해 단백질을 만드는데 RNA 중 일부 짧은 가닥은 단백질을 만들지 않고 다른 RNA와 결합해 기능을 차단한다. 이를 RNA 간섭이라고 한다.

이에 양사는 ‘게으름 유전자’라고 불리는 GPR75를 표적으로 한 RNA 가닥 개발에 한창이다. 리제네론은 지난 2020년 영국·미국·멕시코인 약 65만 명의 유전자를 분석한 결과, GPR75 유전자에 돌연변이가 생겨 작동하지 않으면 체질량지수(BMI)가 낮고 살이 찔 가능성이 낮다는 것을 확인했다. 즉 간섭 RNA로 게으름 유전자를 차단하면 영원히 살이 찌지 않는 체질로 바꿀 수 있다고 본 것이다.

미국 대표 헬스케어 기업 암젠(Amgen)도 ‘건강한 비만’ 유전자로 불리는 FAM13a를 겨냥한 RNA치료제를 개발하고 있다. FAM13a는 혈당을 낮추는 호르몬인 인린에 작용하는 유전자다. 앞서 연구에서 해당 유전자가 지방세포에서 덜 작동하면, 인슐린 분비가 줄고 당뇨병과 같은 대사질환에 걸리는 것으로 밝혀졌다. 암젠은 이 유전자가 충분히 발현되도록 하는 RNA 간섭 기술을 활용할 예정이다.

노보 노디스크는 독감 백신처럼 1년에 한 번만 접종해도 살이 빠지는 신약 개발에 돌입했다. 노보 노디스크의 최고과학책임자(CSO)인 마커스 쉰들러(Marcus Schindler) 박사는 위고비와 같은 치료제를 연 1회 접종해도 체중 감량 효과가 지속될 수 있도록 하는 가능성을 탐구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오래 지속되는 GLP-1 분자를 만들기 위해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고민하고 있다”며 “체중 설정점을 재설정하면 건강한 체중을 유지할 수 있는 약물요법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쉰들러 박사는 체중 감량 효과가 지속되는 신약을 개발하는 연구는 비만 치료법을 혁신하고 체중 감량과 심혈관 혜택을 유지하는 새로운 방법을 제시할 수 있다고 봤다. 그는 약을 덜 자주 복용할 수 있는 치료법을 개발하면, 나아가 정상 체중을 영구적으로 유지할 수 있는 약물을 개발하는 단계로 나아갈 수도 있다고도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