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츠 화재 사고에 발칵 뒤집힌 전기차 시장, 소비자 ‘벤츠·전기차 포비아’ 확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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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츠코리아, 홈페이지에 전기차 차종별 배터리 정보 공개
여론 진화 노력에도 싸늘한 소비자 시선, 판매량 부진 기조 이어질까
전기차 전반 불신하는 국민들, 정부·업계 대책 마련 '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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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츠코리아가 인천 청라에서 발생한 전기차 화재 사건 대응에 속도를 내고 있다. 차종별 배터리 제조사 정보를 공개하고, 국토교통부의 ‘특별 점검 권고’ 수용을 검토하는 등 여론 진화에 총력을 기울이는 양상이다. 다만 시장에서는 벤츠의 이 같은 노력에도 불구, 한동안 전기차에 대한 소비자의 부정적 인식을 해소하기는 사실상 어려울 것이라는 우려가 흘러나온다.

사태 수습 나선 벤츠코리아

13일 오전 벤츠코리아는 자사 홈페이지에 전기차 차종별 배터리 제조사 정보를 공개했다. 지난 1일 인천 청라에서 아파트 전기차 화재 사건이 발생한 이후 12일 만이다. 벤츠는 당초 영업 비밀 보호 등을 이유로 배터리 제조사 정보 공개에 난색을 표했으나, 화재 사고 이후 소비자의 안전 관련 우려가 가중되자 입장을 선회했다.

벤츠가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화재가 발생한 전기차 모델인 EQE 350+는 연식과 관계없이 모두 중국 파라시스 배터리를 탑재했다. △AMG EQE 53 4MATIC+ △EQE 350 4MATIC 등 나머지 EQE 모델과 △Mercedes-Benz EQE 500 4MATIC SUV △Mercedes-Benz EQS 350 등에도 파라시스 배터리가 탑재됐다. 이밖에 EQS SUV와 마이바흐 EQS SUV에는 CATL 배터리가 사용됐다. 국내 업체인 SK온의 배터리를 탑재한 벤츠 전기차는 EQB 300 4MATIC, EQA 250(2023~2025년식) 등이며, EQC 300 4MATIC 등 과거 모델 일부도 LG에너지솔루션 배터리를 사용했다.

한편 이날 배터리 제조사 정보를 공개한 벤츠코리아는 국토교통부의 ‘특별 점검 권고’도 수용할 계획이다. 앞서 국토부는 중국 파라시스 배터리가 탑재된 약 3,000대의 벤츠 전기차 EQE 차량에 대한 전수 점검을 권고한 바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완성차 업계 관계자는 “업계에서는 국토교통부가 오늘(13일) 오후 국내 완성차·수입차 업체 전반이 참석하는 간담회를 여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며 “벤츠코리아가 해당 간담회 자리에서 국토교통부에 특별 점검 권고를 수용하겠다는 입장을 밝힐 가능성이 높다”고 귀띔했다.

땅에 떨어진 ‘벤츠’의 위상

벤츠코리아가 사태 진화에 힘을 쏟고 있음에도 불구, 업계에서는 당분간 벤츠가 국내 완성차 시장에서 고전을 면치 못할 것이라는 비관적 전망이 제기된다. 다수의 벤츠 차량 모델에 탑재된 파라시스 배터리가 시장에서 ‘시한폭탄’ 취급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파라시스는 배터리 제품의 화재 발생 위험으로 인해 중국 현지에서도 한 차례 대규모 리콜을 실시한 전력이 있다. 지난 2021년 중국 국영 베이지자동차그룹(BAIC)은 파라시스 배터리를 탑재한 전기차가 ‘특정 환경에서 배터리 화재 발생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 3만 대 규모의 리콜을 시행했다. 당시 파라시스는 결함을 인정하고 리콜 비용을 모두 부담한 것으로 전해진다.

일각에서는 이번 화재 사고로 인해 지난해부터 이어진 벤츠의 판매 부진 기조가 한층 심화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실제 벤츠는 2015년부터 2022년까지 8년 연속 수입차 판매 1위 자리를 지켜왔으나, 지난해 BMW에 1위 자리를 내주며 2위로 내려앉았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올해 벤츠의 국내 판매량은 3만4,380대 수준으로, 1위 업체인 BMW(4만1,510대) 대비 7,130대 적다. 한 업계 관계자는 “벤츠의 올해 판매량은 국내 시장 내 브랜드 위상을 고려하면 상당히 부진한 수준”이라며 “(벤츠에 대한) 소비자 여론이 악화하고 있는 만큼, 하반기에도 판매량 감소 상황이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실제 벤츠 차량에 대한 소비자의 차가운 시선은 중고차 시장 등에서 고스란히 입증되고 있다. 중고차 플랫폼 엔카닷컴·케이카 등에 따르면, 벤츠 EQE 모델은 주행거리가 1만~2만㎞에 그침에도 불구하고 6,000만원대 가격에 판매되고 있다. 기존 벤츠 EQE 350+ 모델이 1억990만원에 판매를 시작한 것과 비교하면 사실상 반값 수준이다. 해당 모델에서 화재 사고가 발생했다는 사실이 널리 알려지며 소비자 수요가 얼어붙은 것으로 풀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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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차 포비아’ 일파만파 확산

주목할 만한 부분은 소비자들이 특정 브랜드 차량을 넘어 전기차 전반에 대한 공포심을 드러내고 있다는 점이다. 일부 아파트 단지 등은 화재 위험이 있는 전기차의 지하 주차장 이용을 금지하기도 했다. 일례로 경기도 안양시에 위치한 한 아파트는 입주자대표회의 의결을 통해 지하 주차장의 전기차 출입을 금지하고, ‘불이 나면 모든 책임을 지겠다’는 각서를 쓴 차주에 한해 지하 주차장 이용을 허용하기로 했다. 한 전기차 차주는 “아파트뿐만이 아니다. (인천 청라) 화재 사고 이후 곳곳의 지하 주차장에서 전기차 입차를 금지하고 있다”며 “눈치가 보여 지상 주차장, 심지어는 길거리에 차를 대는 전기차 차주들도 많다. 지하에서는 충전만 하고 지상에서 주차 자리를 찾는 식”이라고 토로했다.

‘전기차 포비아(공포)’ 현상이 확산하자 정부는 부랴부랴 대책 마련에 나섰다. 지난 12일 오전 국토교통부와 산업통상자원부 등 각 부처 담당자들은 환경부 차관 주재로 긴급회의를 가졌다. 회의 자리에서는 △전기차에 탑재된 배터리를 공개하도록 하는 방안 △차량의 100% 충전을 제한하는 방안 등이 논의된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는 13일 국무조정실 주재로 차관 회의를 진행한 뒤 추가 논의를 거쳐 다음 달 초 전기차 화재 종합 대책을 제시할 예정이다.

한편 위기를 감지한 자동차 회사들은 예정에 없던 프로모션을 진행하며 ‘고객 붙잡기’에 착수했다. 아우디는 전기차인 e-트론 55 콰트로를 정상가에서 29.5% 할인된 8,256만원에, 고성능 전기차인 RS e-트론 GT을 24.5% 할인된 1억5,372만원에 판매하고 있다. e-트론 스포츠백과 e-트론S 콰트로의 할인율도 29.5%에 달한다. 지난달까지 할인이 없었던 BMW의 전기차 i7 xDrive 60은 이달 들어 12.7% 저렴한 가격에 판매되고 있다. iX xDrive 50 스포츠플러스 모델에도 이달부터 12.9% 할인이 적용됐다. 한 수입차 업계 관계자는 “일반적으로 수입차 브랜드들은 연말에 할인 폭을 키우는 경향이 있다. 여름부터 할인율을 높이는 것은 상당히 이례적”이라며 “화재 사고의 여파, 즉 전기차 포비아 현상이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이 있다”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