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차 캐즘’에 성장세 꺾인 배터리 3사, 돌파 전략 마련 ‘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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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차 캐즘 여파에 배터리 3사 2분기 실적 둔화
LG에너지솔루션·SK온, 보수적 전략으로 선회
삼성SDI는 투자 그대로, 설비투자 규모 6.5조 전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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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LG에너지솔루션, SK온, 삼성SDI

전기차 캐즘(Chasm·일시적 수요 둔화) 장기화로 국내 배터리 3사의 2분기 실적이 일제히 뒷걸음질 친 가운데 기업별 대응 전략이 엇갈리고 있다. LG에너지솔루션(LG엔솔)과 SK온은 자산 유동화와 외부 자금 유치 등 다양한 조달 옵션을 검토 중인 반면 삼성SDI는 대규모 투자에 드라이브를 걸며 자체적으로 실탄을 확보하는 모습이다.

국내 배터리 3사, 수익 일제히 하락

9일 배터리업계에 따르면 LG엔솔·SK온·삼성SDI 등 배터리 3사의 2분기 수익은 일제히 고꾸라졌다. LG엔솔은 올해 2분기 매출 6조1,619억원, 영업이익 1,953억원을 기록했다. 전년 동기 대비 각각 29.8%, 57.6% 줄어든 실적이다. 특히 2분기 영업이익에 반영된 미국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세액 공제 금액(4,478억원)을 제외하면 2분기 실적은 영업손실 2,525억원이다.

SK온의 2분기 실적은 매출 1조5,535억원, 영업손실 4,601억원이다. 이번 2분기 영업손실은 직전분기(-3,315억원)보다 1,000억원 이상 확대된 규모로, 출범 이래 11개 분기 연속 적자다. 삼성SDI는 매출 4조4,501억원, 영업이익 2,802억원을 기록했다.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할 때 매출은 23.8%, 영업이익은 37.8% 줄어든 수치다.

배터리 3사의 실적 둔화는 전기차 수요가 줄었기 때문이다.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이 전기차 생산 속도 조절에 나서고 하이브리드 생산을 늘리는 등 사업 전략을 수정함에 따라 배터리 업체들 역시 전반적인 실적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다. 향후 전망도 밝지는 않다. 시장은 하반기에도 수요가 전망에 미치지 못하고, 본격 회복 시점이 예상보다 늦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LG엔솔·SK온, 외부 자금 유치 및 지분 유동화 논의 진행

이에 배터리 업계는 최근 사업 전략을 재검토하고 있다. 먼저 LG엔솔은 올해 매출 목표를 전년 대비 싱글(4~6%) 성장에서 ‘20% 이상 감소’로 변경했다. LG엔솔이 연간 매출 목표를 역성장으로 잡은 것은 출범 이래 처음이다. IRA에 따른 수혜 규모도 연초 제시한 45∼50GWh에서 30∼35GWh로 낮춰 잡았다.

이와 함께 애리조나주 에너지저장장치(ESS) 리튬인산철(LFP) 배터리 전용 생산 공장 건설과 제너럴모터스(GM)와의 합작법인 얼티엄셀즈의 미시간주 랜싱 3공장 건설도 일시 중단했다. 앞서 올해 초 LG엔솔은 애리조나 공장 건설을 위해 2,000억원 규모의 리스채권을 글로벌 IB(투자은행)에 판매하는 식으로 외부 자금 유치를 추진했지만, 전기차 시장 불확실성이 커지자 착공 두 달 만에 잠정 보류를 택한 것이다. LG엔솔은 대신 가동률이 떨어진 현지 전기차용 배터리 공장의 생산라인을 ESS용으로 일부 전환할 계획이다.

SK온은 자금사정이 더 심각하다. 11분기 연속 적자를 내고 있음에도 설비투자(Capex)에 연간 수조원을 쓰고 있어서다. 올해 2분기 기록한 4,601억원의 영업손실은 연간 설비투자 규모인 7조5,000억원을 충당하기엔 한참 부족한 수준이다. 앞서 프리 IPO(상장전 지분투자)를 통한 자금 조달을 추진하기도 했으나 여의치 않자 사모 영구채 발행, 자산 유동화 등의 방법으로 자금 조달에 고삐를 죄고 있다.

지난 6월엔 5,000억원 규모의 사모 신종자본증권(영구채)을 발행했고, 최근엔 국내 대형증권사와 1조원 규모의 자산 유동화를 논의 중이다. 방식으로는 SK온 주식을 활용한 PRS(주가수익스왑, Price Return Swap) 계약이 유력하다. PRS는 계약 만기 시 기초자산의 가치 변동에 따라 수익 또는 손실을 정산하는 파생상품이다. 증권사는 수수료 수익과 원금 보장을 받게 되며, 계약 기업은 자산유동화를 통해 현금을 확보하는 구조다. SK온의 주식가치에 대한 향후 수익 혹은 손실을 증권사와 공유하는 일종의 채권이나 주식담보대출과 유사한 계약이다. 아직 구체적인 시기는 확정되지 않았지만, 현재 논의 속도로는 이달 중 마무리될 것으로 관측된다. 해당 거래까지 합하면 SK온은 올해 증권업계로부터 1조5,000억원 이상의 자금을 수혈받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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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말레이시아 스름반에 위치한 삼성SDI 생산법인 2공장을 점검하고 있다/사진=삼성전자

삼성SDI는 투자 계획 그대로 유지

이에 반해 삼성SDI는 기존에 예정된 투자를 그대로 이어가며 위기를 정면 돌파하는 모습이다. 전기차 캐즘과 주요 고객들의 재고 조정, 불확실한 경영 환경 등은 단기적인 현상이며 중장기적으로 전지 산업의 고성장은 변함없을 것이란 판단에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이에 올해 설비투자도 축소 없이 계획대로 집행한다. 앞서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은 올해 첫 해외 현장 경영 일정으로 삼성SDI 말레이시아 사업장을 방문해 담대한 투자를 주문하기도 했다.

삼성SDI는 올해 설비투자 규모를 6조5,000억원으로 설정했다. 이는 전년 대비 50% 이상 증가한 것으로 헝가리 법인 증설과 북미 스텔란티스(Stellantis) 합작법인(JV)인 스타플러스에너지(StarPlus Energy LLC.) 1공장 건설 등에 투입될 예정이다. 다만 삼성SDI의 내부 보유 현금만으로는 6조원 이상의 투자재원을 마련하기 어려운 상황인 만큼 외부자금 조달은 불가피하다.

삼성SDI는 그동안 채권 발행 등 조달에 적극적이지 않았다. 유상증자, 전환사채(CB)·신주인수권부사채(BW) 발행 등 자본성 조달을 실시한 사례는 찾아보기 어렵고 기업어음(CP)이나 전자단기사채도 찍지 않았다. 이에 삼성SDI 자금 방안 마련에 업계의 이목이 집중된다. 현재 삼성SDI의 신용등급은 AA(안정적) 수준으로, 차환 발행을 통해 만기를 연장하고 대규모 자금을 확보할 수 있다. 순차입금비율도 지난해 말 기준 18.3%로 건전한 수준으로 유지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시장 일각에서는 삼성SDI가 6년 만에 공모채 시장의 문을 두드리는 게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통상적으로 가장 많은 자금을 끌어올 수 있는 공모채가 우선적인 고려 대상이다. 삼성SDI는 지난 2018년 9월 3년물 3,700억원, 5년물 2,200억원 등 총 5,900억원을 조달한 이후 공모채 사장을 찾지 않고 있다. 회사채는 모두 현금으로 상환했다. 이와 관련 삼성SDI 관계자는 “공모채를 비롯해 여러 자금 조달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