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MIT공학 박사가 왜 하버드 MBA 밑에서 일해야 하나?’ 지적에 MBA도 기술 준(準)전문가 양성하도록 진화하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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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A 출신에 대한 프리미엄 빠르게 사라지는 중
기술적 이해 전무, 교육 과정도 대부분 학부 저학년 기초 과목 수준에 불과
기술적 이해도 키워주는 MBA 출신 아니면 불필요한 학위라는 인식에 공감대 확산

지난 2014년 AMD의 CEO가 된 리사 수 MIT 공학 박사는 당시 “MIT박사가 하버드 MBA 밑에서 일하는 것이 이해되지 않았다. AMD에서는 그런 일이 없을 것”이라고 표현한 적이 있다. 그간 기술력을 갖춘 인재들을 제쳐놓고 기업 경영을 2년동안 배웠다는 이유로 기술 기업을 운영하는 고위직에 MBA 출신들이 몰렸던 것에 대한 기술직들의 불만을 압축적으로 표현한 문장으로 업계에서 두고두고 회고된다.

실제로 기업 현장에서 MBA 출신들의 무능함에 대한 현장직의 불만은 매우 크다. MBA 출신들이 상대적으로 많이 몰려 있는 투자은행(IB) 업계, 전략 컨설팅 업계를 넘어, MBA 출신들이 상대적으로 덜 선호하는 대기업들에서도 MBA에 대한 불신이 팽배한지 오래됐다. 과거에는 MBA 교육 기관들의 대규모 홍보로 마치 MBA를 졸업하면 글로벌 최상위권의 초고급 인재가 되는 것처럼 홍보가 되기도 했으나, 리사 수 대표의 발언을 비롯한 각계 각층의 불만이 시장에 누적되면서 MBA의 매력은 크게 떨어진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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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 전문가보다 기술을 더 잘 파악할 수 있다는 MBA 출신들의 변명

현재 K모 IT그룹의 대표로 재직 중인 J씨가 그룹 산하의 벤처 투자기관 대표로 재직하던 시절에 J씨에게 투자 심사를 받았던 A씨에 따르면, J씨가 기술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면서 기술을 아는 척하는 것이 굉장히 불편한 자리를 겪었다고 밝혔다. 당시 A씨는 넷플릭스 등에서 쓰고 있는 추천 알고리즘의 핵심이 ‘요인 분석(Factor Analysis)’를 다른 데이터 형태로 진행하는 것에 불과하다는 점을 지적하고, 같은 방식의 응용을 이용해서 교육 분야에서 기출 문제들의 공통 요인을 찾아 예상 문제를 추출하는 알고리즘을 설명했다. 그러나 J씨는 “그렇게 옛날 꺼를 쓴다고 하면 어떻게…”라는 표현을 통해 A씨의 알고리즘이 어떤 문제를 어떻게 풀어내기 위한 고민을 담은 것인지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는 것을 보여줬다는 것이다. J씨는 국내에서 Y대 비상경 전공으로 학부를 한 후, 미국에서 2류 MBA 군으로 분류되는 M모 대학의 MBA를 졸업했다.

신세계 정용진 회장은 지난 2019년 강희석 전 대표를 이마트 부문 대표로 선임했다. 강희석 전 대표는 서울대학교 법학과 출신으로 행정고시, 농림수산부 등을 거쳐 2004년에 와튼 MBA, 2005년부터 2014년까지 글로벌 전략컨설팅 회사인 베인앤컴퍼니(Bain & Company)에서 소비재/유통부문을 맡았다. 강 전 대표를 임명하던 당시, 업계에서는 정용진 회장이 “MBA, 전략 컨설팅 출신을 대표로 앉히는 걸 보니 아직 경영할 줄 모른다”는 부정적인 표현들이 꾸준히 나왔다. 강 전 대표가 이끈 것으로 알려진 G마켓 인수 전 당시에도 3조4,400억원이라는 고가 인수에 대해 정 회장이 강 전 대표에게 설득당했다는 표현들이 업계 전반에 회자됐다. 2020년 850억원의 흑자를 냈던 G마켓은 2021년 신세계 그룹에 인수된 후 2022년 654억원, 2023년 321억원의 적자를 기록했다. 강 전 대표는 지난 2023년 9월 자진사임했다.

강 전 대표 재직 시절, 이마트 그룹은 디지털 전환을 담당하는 DT본부를 설립해 인공지능(AI)과 빅데이터 등 IT 기술을 쇼핑애 접목해 고객 서비스를 개발하려 했으나, AI 전문 역량을 갖춘 인재를 뽑는 것이 아니라, IT 개발자들을 대거 채용하는 바람에 기술력의 수준이 대단히 낮은 것으로 평가받는다. 강 전 대표 퇴임 이후 DT본부의 개발자들은 본업인 개발 업무로 돌아가면서 IT계열사로 보직이 변경됐다. 개발자와 AI 전문가를 구분하지 못하는 경영 실패는 비단 강 전 대표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이 변명이 될 수 있으나, 정 회장이 강 전 대표에게 기대했던 미국 최상위 기업 수준의 시야와는 거리가 먼, 국내 일반 기업들 수준의 시야 밖에 갖추지 못했다는 단적인 증거가 된다는 것이 업계의 공통된 해석이다.

2년간 골프만 치다온다는 속설 있는 MBA, 새 시대 맞춰 교육 과정 변경해야

일반의 인식과 달리 미국 주요 대학의 MBA 과정은 기술적인 역량을 쌓게 하거나, 기술적인 역량이 있는 인재를 발굴하는 역량을 갖추게 하기 보다는, 대인 관계 역량을 배우는 과정 중에 학부 상경계열 수준의 지식을 일부 맛보기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미국의 모 명문대 박사 과정을 거친 A씨는 J씨가 기술적으로 전혀 이해를 못하는 것이 놀랄만한 일이 아니라면서 A씨가 겪은 미국 명문대의 MBA 학생들이 A씨의 학부 재학 시절에 풀었던 연습문제조차도 어려워했다는 점을 지적했다. 학부 경영학과 수준의 과제에 버거움을 느낄만큼 지식 역량에 대한 강조가 사실상 사라진 것이 MBA의 현실이라는 것이다.

최근 들어 미국 주요 명문대의 MBA들도 시장의 비판을 인식하고 조금씩 변화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MIT의 경우 기술 MBA 과정의 수준을 끌어올려 학부 고학년 수준의 수학, 통계학, 사회과학, 공학 과정을 결합한 ‘데이터 분석 석사(MSc Data Analytics)’ 과정을 슬론(Sloan) 경영대학 산하에서 지난 2018년부터 운영하고 있다. 학위 인증 기관들은 MIT의 MSc Data Analytics를 AI에 특화된 MBA로 분류한다. 같은 경향은 뉴욕 맨하탄의 명문대 중 하나인 콜롬비아(Columbia) 대학에서도 나타난다. 콜롬비아 대학도 지난 2020년부터 MBA 과정 중 세부 분류 과정으로 AI 특화 과정을 열었다. MBA 입학생 중 주요 과목에서 기준 학점을 넘은 경우에만 해당 과정을 들을 수 있도록 해, 교육 수준을 높게 유지한다는 것이 콜롬비아 대학에서 주장하는 강점이다. 해당 프로그램을 거친 B씨는 일부 수업들이 학부 고학년 수학, 통계학 지식을 필요로 해 중도 포기하는 학생이 많다면서 MBA 학생들 사이에서는 쉽지 않은 과정이라는 인식이 공유된다고 밝혔다.

최근 쿠팡에서 채용하는 데이터 과학 인력들은 국내에서 보기 드물만큼 수학적 훈련이 탄탄하게 갖춰져 있다는 평가들이 나온다. 최근 국내 C모 기업에 재직하다 쿠팡이츠로 자리를 옮긴 한 AI 전문 MBA 출신의 데이터 과학 인력에 따르면 쿠팡이츠의 배달 비용 절감을 위한 연구 목적에서 네트워크 형태로 데이터의 형태를 바꾸고, 영미권 주요 명문대 박사과정에서나 볼 법한 최적화 수학 문제를 풀기 위한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상세 사항은 알 수 없으나, 미국 1위 유통기업 아마존의 전략을 따라하는 것으로 널리 알려진 쿠팡인만큼, 국내 대기업들과는 질적으로 다른 수준에서 기술적 도전을 진행하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그런 연구 팀의 도전을 이해하고 기업 경영진과 중간 가교 역할을 할 수 있는 고급 인재를 길러내지 못한다면, 더 이상 MBA 학위에 비용을 지불할 필요가 없다는 불만들이 시장에서 끊임없이 터져 나오는데는 이유가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