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법원 “구글, 검색 독점은 불법”, 빅테크 권력에 제동 건 ‘획기적 판결’ 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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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검색엔진'으로 설정해 독점적 지위 확보
삼성·애플 등 기기 제조사에 거액의 대가 제공
애플·메타 등 다른 빅테크 소송에 영향 미칠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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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검색 시장의 95%를 점유한 구글이 미국 법무부가 제시한 반독점 위반 소송에서 패소했다. 거대 플랫폼 기업이 본격적으로 등장하기 시작한 2000년대 이후 빅테크가 미국 법원에서 ‘독점 기업’으로 인정된 첫 사례다. 구글뿐 아니라 메타, 애플, 마이크로소프트(MS) 등도 미국 규제당국과의 소송이 진행 중인 가운데 거대 기술 기업의 권력에 제동을 건 ‘획기적 판결’이란 평가가 나온다.

美 법원 “구글은 독점기업, 시장 지배력 남용”

5일(현지시각) 미국 워싱턴DC 연방법원은 미국 법무부가 구글에 제기한 반독점법 위반 소송에서 정부의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구글은 독점기업(monopolist)으로 독점적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해 왔다”며 “구글이 자사 검색 엔진을 스마트폰의 기본 웹 브라우저로 설정하기 위해 비용을 지급한 행위는 독점을 불법으로 규정한 셔먼법 2조를 위반한 것”이라고 적시했다. 셔먼법은 1890년 제정된 미국 최초의 독점 금지법으로 시장 지배력 남용, 경쟁 제한, 우월적 지위 남용에 대한 금지를 골자로 한다.

이날 판결과 관련해 워싱턴포스트는 “미국 정부가 빅테크를 상대로 거둔 20년 만에 가장 큰 승리”라며 “다른 빅테크와의 반독점법 위반 소송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평가했다. 앞서 지난 2020년 10월 미국 법무부와 콜로라도주 등 38개 주 법무부는 구글이 검색 엔진 시장에서 독점적 지배력을 구축하는 과정에서 스마트폰 제조 업체에 거액을 지급해 반독점법을 위반했다며 제소했다. 실제로 재판 과정에서 구글이 애플에 2022년 200억 달러(약 27조3,000억원), 삼성전자에 4년에 걸쳐 80억 달러(약 10조9,000억원)를 지급한 사실이 공개되기도 했다.

판결문에 따르면 구글은 검색 시장을 장악하기 위해 스마트폰 제조사, 통신사 등과 ‘수익 공유’ 계약을 맺어왔다. 구글의 검색 엔진 사용으로 발생하는 광고 수익을 일정 비율로 나눠 가진 것이다. 이에 대한 대가로 애플은 자사 브라우저인 ‘사파리’와 음성 인공지능(AI) ‘시리’에서 구글을 기본 검색 엔진으로 사용했다. 삼성 역시 갤럭시 스마트폰의 기본 검색을 구글로 설정했다. 그 결과 모바일 검색 시장에서 구글의 지배력은 95%까지 확대됐다. 대부분 이용자는 기본 설정(default)을 바꾸지 않고 서비스를 사용하기 때문이다.

재판부에 이에 대해 “기본 설정을 활용해 구글은 엄청난 양의 사용자 데이터를 얻었다”며 “이를 통해 광고 시장을 장악하고, 점진적으로 광고 가격을 인상하며 수익을 독점했다”고 지적했다. 다만 법원이 구글의 독점력 해소를 위해 어떤 조처를 할지는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 이를 두고 업계에서는 이용자가 스마트폰 등을 처음 설정할 때 어떤 검색 엔진을 사용할지 묻는 절차를 두도록 하는 방안부터 수익 공유를 중단하거나 검색 사업과 온라인 광고 사업을 분할하는 극단적인 방안까지 다양한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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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릭 갈랜드 미국 법무부 장관이 3월 21일(현지시각) 애플에 대한 반독점법 위반 소송과 관련해 브리핑하고 있다/사진=미국 법무부 유튜브

이번 판결로 빅테크의 독점적 지위 남용 제동

이날 구글에 대한 판결은 지난 2000년 MS가 자사의 인터넷 브라우저만 PC에 기본적으로 탑재하도록 한 것은 불법이라는 판결이 나온 이후 주요 빅테크의 반독점법 위반 논란에 대한 첫 판결이다. 이에 업계에서는 이번 판결이 미국은 물론 세계적으로 독점적 지위를 이용해 경쟁자의 시장 진입을 막거나 배제해 과도한 이윤을 챙겼다는 비판을 받아온 빅테크를 본격적으로 제어하는 사법적 판단의 신호탄이 될 수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미국은 한때 유럽에 비해 빅테크 견제에 미온적이라는 평가를 받았지만 2020년 말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지배적 기업과의 전쟁을 선언하며 적극적인 소송전에 돌입했다. 현재 미국은 법무부와 연방거래위원회(FTC), 각 주 검찰 등 다양한 정부 기관이 구글, 애플, 아마존, 메타 등과 소송을 진행하고 있다. 구글은 지난 5일 발표된 판결 외에 다음 달 또 다른 반독점 소송 재판을 앞두고 있다. 법무부는 구글이 2,500억 달러(약 341원) 규모의 디지털 광고 시장을 불법적으로 독점하고 있다고 봤다.

또 미 법무부는 15개 주, 워싱턴DC 등과 연합해 애플에 대한 반독점 소송도 진행하고 있다. 법무부 등은 아이폰이 막대한 영향력을 지녔으면서도 iOS, 아이메시지, 애플워치, 애플페이 등 전반에 걸쳐 타사 서비스와의 연동을 제한해 공정한 경쟁을 막고 소비자에게 독점적인 힘을 행사하고 있다고 판단했다. 소비자들의 아이폰 의존성을 높여 대체 방안 마련을 의도적으로 막았다는 것이다.

법무부와 함께 반독점 집행 권한을 공유하는 FTC도 지난해 9월 17개 주 검찰과 함께 아마존에 대한 소송을 제기했다. 전자상거래 시장을 독점한 아마존이 독점적 지위를 활용해 소비자들이 더 많은 돈을 지불하도록 하고, 아마존에서 제품을 판매하는 셀러에게 과도한 요금을 부과했다는 내용이다. 또 40개 주와 함께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을 운영하는 메타에 대해선 인스타그램과 왓츠앱을 불법 인수해 소셜미디어 시장의 공정한 경쟁을 저해했다는 이유로 소송을 제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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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도 ‘디지털시장법’ 제정해 거대 플랫폼 규제

유럽도 글로벌 빅테크 때리기에 한창이다. 유럽연합(EU)은 올해 3월부터 시장 지배적 사업자인 플랫폼의 불공정행위를 제재하기 위해 ‘디지털시장법(DMA)’을 시행해 규제를 강화했다. DMA에서는 자사 제품과 서비스 우대, 끼워팔기 등을 대표적인 불공정행위로 규정하고 특별 규제 대상인 ‘게이트키퍼’로는 구글, 애플, 메타, 아마존, MS, 바이트탠스 등 6개 글로벌 플랫폼을 지목했다. EU집행위원회는 DMA 시행 직후 애플, 구글, 메타 등 3개 사에 대한 공식 조사에 착수했고 지난 6월 애플은 DMA 시행 3개월 만에 첫 위반 사례로 지목됐다.

애플은 지금까지 폐쇄적인 생태계를 운영하며, 앱스토어를 통해 일부 인기 앱에 대해 매출의 30%에 해당하는 수수료로 부과해 왔다. 이 때문에 앱 개발사는 애플에서의 서비스 비용을 더 높게 부과하기도 했다. 뒤늦게 애플이 유럽에서 제3자 앱장터를 허용했지만, 또 다른 명목의 수수료와 예외 조항을 통해 여전히 앱 개발사의 수익을 과도하게 나눠 갖고 있다고 집행위는 판단했다. 다만 이는 예비조사 결과로 2025년 3월 25일 위반 여부가 최종 확정되기전 까지 애플은 반론 등 대응에 나설 수 있다.

집행위는 애플 앱스토어에 이어 MS 회의 앱 ‘팀즈’ 끼워팔기에 대해서도 DMA를 위반한다고 잠정 결론 내렸다. 시장지배적 위치에 있는 MS가 팀즈를 엑셀·워드 등 오피스 제품에 끼워팔기해 슬랙, 줌 등 경쟁사와의 공정한 경쟁을 저해했다는 판단이다. 지난 4월 MS는 공식 조사가 시작되자마자 선제적으로 팀즈를 분리 판매하겠다고 발표했지만 집행위는 “MS의 조치는 우려를 해소하기에는 불충분하며 경쟁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변화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韓, 반독점 규제 위한 제도 미흡해 한계 지적

국내에서도 빅테크의 반독점 규제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다. 다만 플랫폼의 특성을 반영한 제도가 마련되지 않아 공정거래법에 따라 불공정거래 행위를 제재하는 수준에 그치고 있는 데다, 이마저도 오프라인 중심의 경제 시스템에 적용하는 규제 기준을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일례로 공정거래법에 따르면 ‘1개 사업자의 시장점유율 50% 이상 또는 3개 이하 사업자의 시장점유율 합계 75% 이상’이면 지배적 사업자로 추정하는데 이는 플랫폼이 생기지 않았던 1999년에 만든 기준이다.

더욱이 독과점 기업으로 인해 소비자 가격이 오르지 않으면 괜찮다는 ‘소비자 후생’ 중심의 논리에도 제한이 따른다. 플랫폼 기업은 소비자에게 저렴한 가격과 편리성을 제공하면서도 ‘소비자 독점’을 무기로 소상공인 등 입점 업체에 부담을 가중시키거나 경쟁업체의 시장 진입을 제한하는 등 산업 전반의 생태계를 흔들어 놓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이들이 회원제 등을 통해 확보한 소비자를 기반으로 각종 사업에 공격적으로 진출할 경우 기존 시장 질서가 파괴되는 사례도 문제가 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국내 디지털 플랫폼 기업에 대한 사전 규제를 골자로 공정거래위원회가 추진해 온 ‘온라인 플랫폼법’ 제정 작업은 한발도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최근 발생한 티몬과 위메프 사태도 정부가 ‘자율 규제’라는 명목으로 사실상 손을 놓고 있어 벌어진 문제라는 지적이 나온다. 구글 인앱결제에 대한 과징금 부과 문제도 당초 상반기 중 제제안을 방송통신위원회 전체 회의에 상정할 계획이었으나 방송통신위원회가 ‘식물 기구’로 전락하면서 언제 논의가 가능할지조차 가늠하기 어려운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