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극화에 빠진 백화점 업계, 서울 매출 고공 행진할 때 지방은 줄폐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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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에 밀리고 인구 줄어들고, 지방 유통업계 눈물
전국서 서울만 10%대 성장률, 지방선 업종 변경 움직임
서울 외 점포 실적 부진, F&B 강화 및 명품 유치에 속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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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 유통산업이 무너지고 있다. 백화점 업계를 중심으로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심화면서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닫혔던 하늘길이 열리고 외국인 관광객들이 대거 유입되면서 수도권의 주요 백화점은 연일 매출 신기록을 갈아치우는 반면 지방 소재 백화점은 매출 부진으로 업종을 바꾸거나 폐점하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이에 유통 인프라가 무너지면 지역 고용과 관련 산업까지 줄줄이 쇠퇴함에 따라 지방 소멸이 가속화할 수 있다는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지방 백화점, 도산 위기

29일 유통업계에 따르면 최근 롯데백화점은 광주점의 사업성 점검에 들어갔다. 한때 ‘지역 1등 백화점’으로 승승장구했지만 신세계백화점에 1등 자리를 내준 이후 연매출이 계속 줄어들더니 지난해(2,977억원)엔 3,000억원 밑으로 떨어졌다. 롯데백화점은 지난달 비슷한 이유로 마산점도 닫았다. 전국 32개 롯데백화점 점포 중 매출 최하위권이던 마산점을 매장 임차 종료 시점에 맞춰 결국 문을 닫기로 한 것이다.

주요 지방 대도시 백화점도 매출 부진 상황에서 예외는 아니다. 부산진구 전포동에 있는 NC백화점 서면점도 이달 영업종료를 앞두고 있다. 1995년 개점해 30년 가까이 부산광역시 동구 범일동에서 명맥을 유지해 온 현대백화점 부산점도 사실상 영업 종료에 들어간 상태다. 다만 현대백화점 부산점을 철수 대신 대대적 리뉴얼을 거친 뒤, 9월 새로운 형태의 복합쇼핑몰인 ‘커넥트현대 부산’으로 재개장할 계획이다.

슈퍼마켓 등 소규모 유통업체의 사정은 더 심각하다. 국세청에 따르면 올해 4월 기준 서울 외 지역에 있는 슈퍼마켓은 2만3,723개로 5년 전(2만6,016개)보다 2,293개 줄었다. 이들 사례는 지방 유통가의 현실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지역 경기 침체와 인구 감소로 인해 매출은 줄어드는데 이마저도 이커머스의 공세에 밀리고 있어서다.

특히 새벽배송 권역을 빠르게 넓혀가는 쿠팡, 컬리 등은 지방 유통산업을 위협하는 주요인으로 꼽힌다. 쿠팡은 3년간 3조원 이상을 투입해 ‘쿠세권’(쿠팡 로켓배송 가능 지역)을 도서산간 등으로 확대하기로 했고, 컬리도 지난해 경남 창원과 경기 평택에 물류센터를 짓고 새벽배송 확장에 나섰다. 올 2월에는 국내 새벽배송 서비스 기업 중 최초로 경북 경주와 포항에도 진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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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세계백화점 강남점 전경/사진=신세계백화점

서울은 웃고 지방은 울고, 백화점 ‘빈익빈 부익부’ 심화

이렇다 보니 최근 수익성 개선에 나선 유통 대기업들은 확실한 지역 1위 매장이 아니면 수요가 확실히 보장된 수도권에 ‘선택과 집중’을 하고 있다.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유통 양극화가 가속화하고 있는 셈이다. 실제로 서울 도심 한복판에 자리한 주요 백화점은 명품 매장과 각종 팝업스토어 인기 등에 힘입어 연일 매출 신기록을 경신하고 있다.

신세계백화점 강남점은 이미 지난해 12월 말 백화점 단일점포 최초로 연매출 3조원 돌파 신기록을 썼다. 롯데백화점 잠실점도 지난해 2조6,000억원의 매출을 올렸고, 올해 이변이 없는 한 연매출 3조원 돌파가 유력하다. 롯데백화점 본점 또한 지난해 2조원 가까이 매출을 찍었고, 현대백화점 역시 여의도 ‘더현대 서울’이 지난해 오픈 2년 9개월 만에 연매출 1조원을 돌파, 국내 백화점 중 최단기간 1조원의 매출 신기록을 세웠다.

통계청이 발표한 각 시도별 백화점 판매액 추이를 보더라도, 지역 간 격차는 날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2020년 11조9,694억원이던 서울 백화점 판매액 규모는 3년 만인 지난해 18조6,189억원대까지 급증했다. 조사 대상 전국 8개 시·도 가운데 서울만 유일하게 10%대 성장률(12.3%)을 기록한 것이다. 또 서울 외 7개 시·도 지역(경기·부산·대구·광주·대전·울산·경남) 판매액(19조7,067억원)을 모두 합쳐야만 서울 백화점 판매액을 넘길 수 있는 것으로 추산됐다.

지역별 백화점 판매액을 보면, 그나마 제2의 수도인 부산광역시의 판매액 규모가 전년 대비 8% 뛰면서 체면치레를 했고, 수도권인 경기도도 6% 성장세를 보였다. 반면 호남권 최대 도시인 광주광역시의 백화점 판매액 규모는 1조852억원으로 1년 전(1조986억원)보다 1.2% 감소했다. 대전광역시의 백화점 판매액(1조9,466억원)도 전년 대비 2.3% 성장하는 데 그쳤다. 대한상공회의소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국내 백화점 시장은 상위 10개 점포 매출이 전체의 45%를 차지하는 반면, 하위 10개 점포 매출은 전체 업계 매출의 3.5% 수준에 불과한 것으로 파악됐다.

지방 점포 리뉴얼에 집중

이에 국내 백화점업계는 서울 외 지역 점포 경쟁력 강화를 위해 리뉴얼에 속도를 내고 있다. 롯데백화점은 지난해 11월 정준호 대표 직속 ‘중소형점 활성화 태스크포스(TF)’ 조직을 신설하고 대구점, 울산점, 포항점 등 지방 10개 점포 활성화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지방 중소형 점포에 신규 브랜드를 유치하고 체험형 콘텐츠 강화 등을 통해 점포 경쟁력 키우겠다는 구상이다.

롯데백화점과 롯데마트 등을 총괄하는 롯데쇼핑의 김상현 부회장도 최근 열린 주주총회에서 “백화점 비효율 점포 리포지셔닝(재조정)을 검토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대표적인 리뉴얼 점포는 수원점이다. 롯데백화점은 2014년 개점한 수원점을 10년 만에 올해 대대적으로 리뉴얼, 프리미엄 백화점과 쇼핑몰을 합친 복합몰로 탈바꿈시키고 있다. 수원점은 인기 브랜드의 대형 플래그십 매장과 5,000㎡(약 1,512평) 규모 푸드홀 등을 연내 선보일 계획이다.

현대백화점은 지난해 말부터 경기도 부천시에 있는 중동점에 대한 대규모 리뉴얼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구찌, 발렌시아가, 페라가모, 몽클레르 등 신규 브랜드 4곳의 입점을 확정하고 명품 카테고리를 대폭 강화하는 식이다. 서울 목동점에는 상반기 중 이탈리아 브랜드 발렉스트라가 입점할 예정이다. 이외에도 현재 매출 부진으로 고전하고 있는 부산점을 7월 말까지 운영하고 업태를 바꿔 새로 문을 연다는 계획이다.

갤러리아백화점을 운영하는 한화갤러리아도 지방 점포 새단장에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우선 대전 갤러리아 타임월드점 내 스위스 명품시계 브랜드 롤렉스 매장을 기존 대비 3배가량 키워 국내 최대 규모 수준으로 재단장했다. 타임월드점 1층에는 영국 하이엔드 주얼리 브랜드 그라프도 오픈했다. 그라프는 1960년 영국에서 탄생한 하이엔드 주얼리 브랜드로 서울, 수도권이 아닌 지방 백화점에 매장을 연 것은 처음이다. 지난해 12월에는 타임월드점에 구찌 남성 전용 매장을 새롭게 열었고, 최근엔 지하 1층 남성 명품 매장에 팝업 전용 공간을 조성하기도 했다.

신세계백화점은 대구점 지하 1층 식품관에 오는 8월 스위트 파크를 오픈하기 위해 리뉴얼 작업에 한창이다. 스위트 파크는 해외에서만 맛볼 수 있던 유명 디저트부터 국내 빵집 등 인기 디저트 매장을 한데 모아 놓은 공간이다. 올해 2월 강남점에 처음 문을 연 스위트 파크는 하루 평균 4만7,000여 명이 찾을 정도로 흥행하고 있다. 신세계백화점은 앞서 2019년부터 8년간 진행해 온 경기점의 리뉴얼도 올해 1월 모두 마쳤다. 전체 매장 면적의 90%에 달하는 4만6,280㎡(약 1만4,000평)의 공간을 새롭게 바꾸고, MZ세대 고객과 가족 단위 고객을 공략하기 위해 아카데미, 영화관 등 문화·체험·서비스 시설을 강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