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제 못 버텨” 메타, EU 회원국에 차세대 AI 모델 출시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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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U 규제에 발목 잡힌 메타, 역내 라마 3 미출시 선언
'AI법' 등으로 美 AI 개발 기업 숨통 옥죄는 EU
EU '규제 울타리' 바깥에선 여전히 경쟁 치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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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가 유럽연합(EU) 회원국에서 새로운 범용 인공지능(AI) 모델을 더 이상 출시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최근 이어진 EU의 고강도 AI 규제 움직임을 고려, 과감한 후퇴를 결정한 것으로 풀이된다.

‘라마 3’ 멀티모달, EU에선 이용 불가

18일(현지시간) 미국 뉴스 매체인 악시오스(Axios)에 따르면 메타는 3세대 모델인 ‘라마 3’를 EU 회원국에서 출시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이에 따라 유럽 기업들은 비디오를 비롯한 오디오, 이미지, 텍스트를 모두 이해·처리하는 라마 멀티모달 모델을 사용할 수 없게 된다. 비(非)EU 기업들도 해당 모델을 사용한 제품과 서비스를 유럽에서 제공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다만 텍스트 전용 버전인 ‘라마 3’는 EU 내에서도 출시될 예정이다.

메타는 이 같은 결정을 내린 배경으로 유럽의 예측할 수 없는 규제 환경을 지목했다. 당초 메타는 지난 5월 페이스북·인스타그램 게시물 데이터를 활용해 AI 모델을 훈련할 계획이었으며, 당시 유럽 사용자들에게 데이터 수집을 거부할 수 있는 권리인 옵트아웃(opt-out)을 지원했다. 개인 데이터 보호를 위한 일종의 안전장치를 마련한 셈이다. 하지만 EU 규제 당국은 메타가 일반데이터보호법(GDPR)을 위반했다고 판단, 지난달 메타 측에 데이터 훈련을 중단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메타 관계자는 “EU와 유사한 법을 가진 영국에서는 이러한 문제를 겪지 않고 있다”며 “영국 시장에는 새로운 모델을 출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외신은 이번 사건이 미국 빅테크와 유럽 규제 당국 간 갈등 상황을 여실히 보여주는 사례라고 분석했다. 악시오스는 “EU는 개인정보 보호와 독점 금지 문제를 중요하게 보고 있다”며 “이는 기술 기업들과 상반된 입장”이라고 언급했다.

EU AI Act 20240719

빅테크 억누르는 ‘AI법’

실제 EU는 AI 관련 규제 강도를 꾸준히 높이며 미국 빅테크 업체들에 압박을 가하고 있다. 지난 5월 세계 최초로 AI 규제법인 ‘AI법(AI Act)’을 승인한 것이 대표적인 예다. AI법은 AI를 위험도에 따라 나눠 차등 규제하는 법안이다. 의료와 교육, 선거나 자율주행 등에 사용되는 AI 기술은 고위험 AI로 분류되며, 반드시 사람이 감독하고 위험 관리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또 AI를 활용해 개인 데이터를 수집해 개별 점수를 매기거나, 인터넷이나 CCTV에서 얼굴 이미지를 무작위로 수집하는 행위 등은 EU 내에서 원천 금지된다. 실제 사람의 외모와 목소리를 닮은 생성 AI가 만든 이미지와 소리에 대해서는 AI가 만든 것임을 명확히 밝혀 투명성을 확보해야 한다. 아울러 고도의 지능을 갖춘 범용 AI를 개발하는 기업은 EU 저작권법을 반드시 준수해야 하며, AI의 학습 과정에 사용한 콘텐츠를 명시할 필요가 있다.

AI법은 지난달 EU 27개 회원국 역내에서 정식 발효됐으며, EU 회원국 승인 과정을 거쳐 올해 말부터 2027년까지 단계적으로 시행될 예정이다. 우선 발효 6개월 뒤부터는 안면인식 등 금지 대상 AI 규정이 시행되며, 12개월 이후부터는 챗GPT, 제미나이, 코파일럿 등 ‘범용 AI’에 대한 규제가 본격화한다. 다만 범용 AI 개발 기업에는 법률을 준수할 수 있도록 발효일로부터 36개월의 ‘전환 기간’이 주어진다. 

EU 집행위원회는 AI법 위반 기업에 3,500만 유로(약 518억원) 또는 글로벌 매출의 7%에 해당하는 금액 중 더 높은 금액의 벌금을 부과할 수 있다. 이와 관련해 한 IT 업계 관계자는 “시장에서는 사실상 EU의 AI 규제가 미국 빅테크 기업을 ‘정조준’하고 있다고 보고 있다”며 “학습 데이터 출처 공개 등의 강도 높은 규제는 빅테크 기업들의 (EU) 역내 AI 사업 확장에 커다란 장애물이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AI 시장 열기는 여전

주목할 만한 부분은 이 같은 EU의 강력한 규제 움직임도 글로벌 AI 시장의 경쟁 열기를 꺼뜨리지는 못했다는 점이다. 지난 4월 마이크로소프트(MS)는 개발에 사용된 매개변수(파라미터)가 38억 개에 불과한 소형 AI 모델 ‘파이-3 미니’를 공개했다. 당시 세바스티엔 부벡(Sebasiten Bubek) MS 생성형 AI 연구담당 부사장은 “파이-3는 비슷한 성능을 지닌 타 모델들과 비교해 10분의 1 비용만 든다”며 “약간이 아닌 획기적인 비용 감소가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에릭 보이드(Eric Boyd) MS 애저 AI 플랫폼 부사장도 “파이-1은 코딩, 파이-2는 추론에 중점을 둔 모델이었다”며 “파이-3는 코딩과 추론에 더욱 능숙해졌다”며 성능 개선 상황에 대한 자신감을 내비치기도 했다.

MS의 소형 AI 개발은 현 AI 시장의 경쟁 구도를 고려한 일종의 전략적 움직임으로 풀이된다. 실제 최근 생성형 AI 개발사들은 거대화 경쟁보다는 고효율화에 집중하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업계 관계자는 “막대한 매개변수를 투입해 만든 초대형 AI에는 그만한 가동 비용이 필요하다”며 “초고성능 AI가 굳이 필요하지 않은 작업 환경에서는 오히려 적은 매개변수로 만들어진 소형언어모델(SLM)이 요구될 때가 많다. 최근 AI 개발 기업들이 효율화에 집중하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AI 소형화 경쟁의 대표 주자로는 메타가 꼽힌다. 메타는 전작인 라마-2부터 매개변수 70억 개를 투입한 ‘라마-2 7B’ 모델을 주력으로 내세운 바 있다. 메타의 차세대 SLM 라마-3 역시 매개변수가 80억 개인 ‘라마-3 8B’와 700억 개인 ‘라마-3 70B’로 나뉜다. 메타 외 유력 테크 기업들도 고효율화 AI를 속속 출시하며 시장에 도전장을 던지고 있다. 구글은 지난 2월 매개변수가 각각 20억 개, 70억 개에 불과한 젬마 2B와 7B를 선보였으며, 오픈AI 대항마로 꼽히는 엔트로픽도 상반기 출시한 초거대 AI ‘클로드3’를 규모별로 세분화했다. EU 시장의 ‘규제 울타리’ 바깥에서는 여전히 치열한 AI 패권 경쟁이 벌어지고 있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