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NG 종주국’으로 부상하는 일본, 아시아 허브 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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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전 재가동·신재생에너지 확대 나선 일본
"LNG도 놓칠 수 없다", 동남아 등지에 재수출
인접국 중심 LNG 도입 안정성 강화에 총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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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대 액화천연가스(LNG) 수입국인 일본이 그동안 비축해 둔 LNG를 대만과 동남아시아 등으로 ‘밀어내기 수출’을 늘리고 있다. 아시아 신흥국들에 LNG 수입 터미널을 지어주면서다. 이는 원자력 발전 재개 등으로 자국 내 LNG 소비량이 줄어드는 가운데 에너지 안보적 측면에서 LNG 수입 물량을 계속 유지하고 싶어 하는 일본 정부의 전략과 맞물린다. 일각에서는 LNG를 생산하지 않는 일본이 재수출을 통해 LNG 허브로 거듭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LNG 재고, ‘밀어내기 수출’로 처리

18일 외신 등에 따르면 최근 일본은 LNG 재고 수출을 통해 공급 과잉 문제 해결에 속도를 내고 있다. 일본은 한국처럼 자원 빈국으로 분류된다. 일본 정부는 이를 극복하기 위해 에너지·금속광물자원기구(JOGMEC) 주도로 적극적으로 해외 자원 개발에 투자해 왔고, 그 결과 세계 최대 LNG 수입국이 됐다. 현재 연간 2억 톤이 넘는 LNG를 처리할 수 있는 수입 터미널을 운영하면서 매년 꾸준하게 1억 톤을 웃도는 LNG를 수입하고 있다.

일본은 2011년 후쿠시마 사고 이후 일본은 탈원전을 택했고, 원전의 대안으로 LNG 수입량을 더욱 늘려왔다. 그러나 JOGMEC에 따르면 2022회계연도(2022년 4월 1일부터 2023년 3월 31일까지) 기준 LNG 수입량은 전년 대비 8% 감소해 1억2,000만 톤에 그쳤다. 2009년 이후 최저치였다. 이는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원전을 다시 가동하겠다”고 한 여파로 풀이된다.

태양광·풍력 발전이 탄력을 받은 것도 원인이다. 원전, 신재생에너지 등 무탄소 발전원이 늘면서 LNG 소비량이 줄어들자 일본 기업들이 LNG 수입을 줄이고 있다는 의미다. 2022년 일본의 LNG 수입량 중 국내 사용량은 7,100만 톤을 차지했다. 이런 가운데 2030년이면 국내 소비량이 5.000만 톤 내외로 4분의 1 이상 줄어들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미국 에너지경제재정분석연구소(IEEFA)는 “제라(JERA), 도쿄가스, 오사카가스, 간사이전력 등 일본의 주요 LNG 플레이어들은 연간 1.200만 톤의 LNG 공급 과잉을 겪을 수 있다”고 관측했다.

이에 일본 정부는 늘어나는 LNG 재고를 해결하기 위해 동남아 국가들에 LNG 수입 터미널을 지어주고 있다. 아울러 자국 기업들의 ‘아시아 가스 시장’ 구축 전략도 적극 장려 중이다. 닛케이에 따르면 도쿄가스는 베트남의 타이빈 지방에서 1.5기가와트(GW) 규모의 LNG 발전 프로젝트를 시작할 예정이며, 필리핀의 LNG 재기화 터미널 지분도 매입했다. 일본 대기업 마루베니와 종합무역상사 소지츠는 인도네시아에서 1.8GW 규모의 LNG 발전소를 착공하기도 했다.

IEEFA에 따르면 일본은 도쿄가스, 오사카가스, 간사이전력이 주도해 대만을 비롯해 방글라데시, 인도,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미얀마, 필리핀, 싱가포르, 태국, 베트남 등에서 30개 이상의 가스 관련 프로젝트에 발을 담그고 있다. 지분을 취득했거나 LNG를 공급하기로 하면서다. 로이터통신은 “국제가스연맹 데이터를 기반으로 계산하면 2019년 이후 현재까지 일본 기업들은 방글라데시, 인도네시아, 필리핀에 총 1,620만 톤 용량의 신규 LNG 수입 터미널에 투자했다”며 “일본의 투자 덕분에 베트남과 인도에도 2030년까지 연간 1,300만 톤 용량의 LNG 수입 터미널이 추가로 건설될 예정”이라고 전했다.

새로운 수급처로 미국·호주 선택

일본은 미국·호주와 LNG 장기공급 계약을 체결하며 안정적인 자원 수급처 확보에도 나서고 있다. 제라는 지난 2월 호주 에너지 기업 우드사이드 에너지의 스카버러 가스 개발 프로젝트에 14억 달러(약 1조8,655억원)를 투자해 연간 최대 120만 톤에 달하는 LNG 공급계약을 체결했다. 또 일본 5대 전력회사 중 하나인 규슈전력은 미국 에너지 트랜스퍼 사의 레이크 찰스 LNG 프로젝트 지분을 인수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주요 외신들은 2022년 이후 일본 에너지 기업들이 미국과 호주에서 5개의 자원 개발 프로젝트에 투자했으며, 이를 통해 확보된 LNG만 연간 500만 톤을 상회할 것으로 추산했다. 이는 지난해 일본 LNG 소비량의 8%에 해당하며 세계 최대 규모의 자원 공급 계약이다.

호주와 미국이 일본의 유력한 자원 공급 파트너로 부상한 배경에는 러시아의 지정학적 리스크가 크게 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호주의 탄소 배출 규제나 조 바이든 대통령의 LNG 수출 라이선스 승인 동결과 같은 동맹국의 정치적 리스크보다는 러시아의 전쟁 리스크가 일본에 더 치명적으로 다가왔을 것이란 분석이다. 규슈전력의 미츠요시 타카시 전무는 “최근 바이든 정부의 LNG 수출 동결 움직임으로 인해 북미에 대한 우려가 있지만, 미국과 호주는 어쨌든 동맹국”이라며 “여전히 다른 국가들에 비해 공급 안정성 측면에서 우위를 가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런던증권거래소 그룹(LSEG)의 일본 에너지 분야 수석 애널리스트 노부오카 요코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국제적인 에너지 위기가 촉발되면서 일본의 에너지 안보를 위한 동맹국과의 협력이 중요해졌다”고 설명했다. 일본과 미국은 G7 회원국이자 호주와 함께 4자 안보 대화 쿼드(QUAD) 참가국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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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게티이미지뱅크

자원외교, 비상 수급대책 마련도 활발

일본은 에너지 안보 강화를 위해 자원 외교에도 한창이다. 주요 LNG 수출국들을 방문해 안정적인 공급을 요청하는가 하면 수요 패턴이 상이한 태국, 싱가포르 등 동남아시아 국가들과는 협력 방안을 논의했다. 지난해 12월에는 자원 외교의 결실로 오만 LNG, 미국 CP2 LNG 프로젝트와 연간 340만 톤 규모의 LNG 도입 계약을 추가로 체결하기도 했다.

비상 수급 대책 마련에도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일본은 LNG를 비축할 의무가 주어지지 않고 민간의 자율에 맡겨 물량을 비축하는 구조라 위기 상황에 취약한 편이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정부차원에서 △전력-도시가스의 2단계 비상대응 체계 구축 △조정 명령 개선 △비상 조달 등 다양한 방법으로 개입에 나서기 시작했다. 대체 공급원 확보 등 공급 대책을 강화하는 방향에 중점을 둔 것이다.

여기서 2단계 비상대응 체계는 지역 발전사와 도시가스사간 협력을 통해 지역 단위의 LNG 공급 문제를 대응하다 비상 상황이 발생할 경우 일본 정부의 중개 하에 전국 단위의 카고 스왑(Cargo Swap) 등으로 협력하는 개념으로, 동절기에 한시적으로 운영할 방침이다. 아울러 전기사업법의 전력소비제한령과 유사한 소비제한령을 가스사업법에 추가해 가스공급 부족으로 인한 심각한 경제 충격이 초래할 경우 대규모 도시가스 수요처의 소비를 제한하는 제도도 마련했다.

비상 조달 부문은 JOGMEC법 개정을 통한 JOGMEC 긴급 조달 대행자 지정, 전략적 완충재고(SBL, Strategic Buffer LNG) 개념을 통해 보완했다. LNG 도입 경험과 인프라가 풍부한 민간 사업자를 선정해 전략적 완충재고를 월별로 최소 한 카고 이상을 확보토록 하고 수급 불균형시 우선 국내에 재판매하게 하는 식이다. 이때 발생하는 손실은 경제산업성이 조성한 기금을 통해 보전하는 방식으로 운영되며 국가가 나서야 할 경우 JOGMEC이 LNG를 조달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