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최고의 복지는 동료’를 해 주고 싶은 기업들과 기업의 욕심을 갉아먹고 사는 직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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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복동'이란 목표 아래 채용 앞장서던 스타트업들, 국내 인력 역량 부족에 불만↑
대기업들 사정 다르지 않아, 전반적으로 한국인 생산성 낮다는 인식 퍼져
리모트 근무 확산되며 해외 기업 인재 뽑아쓰는 경우도 크게 증가 추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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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모 스타트업의 한 데이터 과학자가 동료 직원의 무능에 대해 강한 불만을 표현하는 자리에 참석한 적이 있다. 학문적인 훈련이 전혀 안 돼 있는 탓에 모르는 문제는 무조건 챗GPT에 질문하고, 챗GPT의 버전이 높아지면 좋은 답변을 내줄 수 있으니까 회사에 예산을 더 달라고 하는 인력이라는 혹평이었다.

도대체 그렇게 심각한 수준인 인력을 왜 계속 데리고 있는지 의심이 들어 해당 회사의 C-레벨에 있는 관계자 A씨에게 질문을 해 봤다. 국내에 코딩 위주의 데이터 과학자를 뽑으면 프로젝트가 엉망이 된다는 인식이 널리 퍼진 상황이 된 데다, A씨는 주변에 전문 데이터 과학자 인맥이 탄탄하게 갖춰져 있어 충분히 인력을 걸러서 뽑을 수 있는 상황이라고 봤기 때문이다. 그런데 A씨는 안타깝게도 회사 내 인력 수준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있지만, 해고 결정이 단독 결정이 아닌 데다, 회사가 항상 고급 데이터 과학 업무만 하고 있는 것도 아니어서 어쩔 수 없이 데리고 있는 인력이라고 답했다.

최고의 복지는 동료라는 직장

A씨는 스타트업계 경력이 10년이 넘는 베테랑이다. 그간 시리즈 C 이상의 투자를 받은 5개 이상의 회사에서 C-레벨로 있으면서 다양한 조직을 경험했고, 언제나 회사 운영의 가장 핵심 가치를 ‘최고의 복지는 동료(약칭 최복동으로 표현했다)’로 생각하고 조직을 운영했다. 그런 그도 뛰어난 역량을 갖춘 인재가 드물고, 회사 업무가 항상 도전적인 일만 있는 것이 아닌 탓에 ‘최복동’을 지키기는 쉽지 않았다고 하소연을 늘어놨다.

다른 스타트업 관계자들의 반응도 크게 다르지 않다. 회사 성장의 핵심은 최복동이라는 생각에 대규모의 투자금을 받고 나면 연봉 수준을 올려서라도 채용에 나서지만, 국내에서 ‘검증된 인력’으로 취급되는 대기업 출신이라고 해서 딱히 최복동을 충족시켜주지 못한다는 불만이다.

일례로 삼성동의 한 스타트업 대표는 지난해 S대 학부 시절 후배 B씨를 채용하고 회사 내의 C-레벨 3명을 단계적으로 내보냈다. B씨는 S대 재학 시절부터 교내에서 유명했던 능력파로, 1명이 3명·5명 몫을 한다는 평가를 받던 인재였다. B씨는 여느 조직에서나 그렇듯이 자신에게 주어진 업무를 다 이해하고 나면 옆 부서의 사정을 파악하고, 회사에 부족한 부분들을 찾아서 메워넣곤 했는데, 이를 보고 해당 스타트업 대표는 자기에게 주어진 업무도 제대로 다 못하고 성과도 못 내던 기존의 C-레벨 3명이 없어도 B씨가 혼자서 모든 일을 다 할 수 있는 상황이 됐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 C-레벨들은 국내 S모 전자, L모 전자 등의 유명 대기업 계열사 출신들로, 영입 당시에 해당 스타트업이 보도자료까지 내며 회사의 체급이 올라갔다고 자랑을 했던 인력들이었다. 그런데 국내 대기업의 일반 인력 수준보다 높다는 평가를 받고 스톡옵션까지 챙겨가며 이직한 인재들 3명이 S대의 S급 인재 1명으로 대체될 수 있는 수준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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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의 욕심을 갉아먹고 사는 인력들

현재 B씨는 C-레벨 5명의 업무를 하고 있고, 덕분에 해당 스타트업 대표는 사업 영역을 크게 확장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고 전했다. 다만 신규 사업 분야로 채용 시장에 나가보니 기존 C-레벨 보다 역량이 부족한 인력들 밖에 없어 고민이 많다고 토로했다. 400억원대 대규모 투자를 받아 체급이 성장한 스타트업인데, 대표와 C-레벨의 눈에 차는 인력을 뽑기가 어려운 것이다. 이에 대해 B씨는 “대기업의 A급 인재들도 우리 눈높이를 못 맞추는 만큼, 욕심을 버려야 하지 않겠나”고 답했다.

실제 A씨의 스타트업에 있는 데이터 과학자는 국내 굴지의 IT기업으로 알려진 K모 회사에서 데이터 과학 업무를 했던 경험이 있다. 당시 팀 전체가 간단한 통계학도 이해 못한 상태에서 외부의 프로그램 코드만 붙여서 작업하는 것에 충격을 받고 실력파들이 모인 스타트업으로 이직했다고 속내를 밝힌 바 있으나, 현재 재직 중인 스타트업에서도 충격적인 수준의 인력을 내보내지 못하는 것을 보고 답답한 심정이라고 밝혔다.

스타트업의 인사 조직 관계자들은 기업들이 ‘데이터 과학자’ 숫자를 늘려야 한다는 압박감에 역량 부족인 인재들에게 데이터 과학자라는 직함만 주는 경우가 아직도 비일비재하다고 지적한다. 앞서 B씨가 재직하는 스타트업이 C-레벨에 대기업 인재들을 배치시켜 회사의 체급을 올리려고 했던 것도, 외부인의 눈에 봤을 때 그 스타트업이 대기업 수준의 인력이라는 신호 효과를 주고 싶었기 때문으로 해석된다.

그러나 검증이 됐다는 대기업의 A급 인력도 생존을 위해 노력하는 스타트업의 기대치를 충족시키지 못하는 만큼, 기업들이 부여하는 직함에 관계없이 고급 인재를 뽑기는 쉽지 않다는 설명이다. 한 관계자는 직함만 노리는 인력들도 본인의 역량이 부족하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지만 회사의 명성과 직함에서 나오는 이미지를 업무 역량 성장보다 우선하는 경우도 많다고 지적했다. 결국 기업은 외부에 A급 역량을 갖춘 인력이 많다는 자랑을 하기 위해, 직원들은 자신이 마치 매우 엄청난 일을 하고 있는 것처럼 포장하기 위해 직함을 이용하는 셈이다.

국내 인재 채용 포기하고 해외로 눈 돌리는 기업도

논현동에 있는 스타트업 대표 C씨는 지난해 초부터 회사 인력을 차례로 내보냈다. 이제 텅 비어 있는 사무실을 어떻게 쓸 계획이냐는 질문에 클라우드로 돌리고 있던 IT서비스도 사무실 내부의 ‘온프레미스(On-premise, 자체 서버를 말함)’로 돌리고, 개발자들 공간으로 썼던 구역을 서버실로 돌려놨다고 밝혔다. 개발자 10명에게 급여 및 각종 부대 비용을 포함해 월 6,000만원에서 많게는 월 1억원까지 썼음에도 원하던 성과를 낼 수 없었으나, 해외의 솔루션 기업들이 제공해 주는 서비스를 C씨 본인이 서버 위에서 직접 수정하면서 2년간 부실한 상태로 운영됐던 서비스를 1년 만에 글로벌 수준으로 끌어올릴 수 있게 됐다는 것이다.

해외 솔루션 기업들이 대부분 저임금 국가인 남유럽, 동유럽, 인도, 베트남 등에 몰려있어 한국 기업 입장에서는 인건비가 크게 절감되는 반면, 해당 국가에서는 고액 연봉으로 취급받기 때문에 비용을 줄였음에도 불구하고 한국 개발자들보다 훨씬 더 적극적으로 업무에 임한다는 평가도 내놨다.

이어 C씨는 “국내 인력의 경우 인건비 대비 업무 역량을 감안하면 ‘오버페이(Over-pay)’하는 상황이지만, 기술직은 동유럽·인도, 영업직은 필리핀·대만 등에 외주를 주는 편이 비용 대비 역량 수준이 높다”고 답했다. 특히 ‘가성비’ 관점을 넘어 역량 자체에서 한국 인력들이 해외 인력보다 부족한 경우가 많았다는 지적과 함께, 한국에서 다시는 채용에 나서지 않을 방침이라고 답하기도 했다.

C씨 역시 한때 ‘최복동’을 생각하며 채용에 많은 노력을 쏟아 부었으나, 국내에서 눈높이를 충족시켜 줄 수 있는 인력이 사실상 없다는 현실을 깨닫고 방향을 틀었다고 밝혔다. C씨는 지난 3년간 국내 채용 중 받았던 지원자들의 입사 시험 답안지 및 중간 평가 사항들을 실명 비공개로 보여주면서 “경력직임에도 즉시 투입이 불가능할 수준으로 결과물의 수준이 낮고, 신입 직원은 훈련을 시켜도 교육 내용이 흡수가 되지 않는 것이 눈에 보인다”며 안타까움을 내비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