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남 내부거래’ 의혹 조사 나선 한미약품, 경영권 갈등에 내부 폭로전 벌어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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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경한미-코리그룹 부당내부거래 의혹, 총수 일가 장남에 일감 몰아줬다?
기업 내 몰아주기 횡행, 지분 100% 회사에 관계사 매출만 80% 넘기도
형제-모녀 경영권 분쟁 심화, 가족 간 '내부 폭로' 이어질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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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약품이 북경한미에 대한 내부조사에 착수했다. 고 임성기 한미약품그룹 창업주의 장남 임종윤 한미사이언스 이사가 실소유한 회사와 부당 내부거래를 했다는 의혹이 제기된 데 따른 조치다.

한미약품, 북경한미 부당내부거래 의혹 조사 착수

8일 업계에 따르면 최근 한미약품 감사위원회는 북경한미 부당내부거래 의혹과 관련한 업무 진단에 돌입했다. 박재현 한미약품 사장은 지난 5일 임원들에게 이 소식을 알리며 “(내부거래 의혹을) 경영에 위해가 될 수 있는 위중한 사안으로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사실관계를 확인하고 필요한 추가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북경한미는 임종윤 이사가 최대 주주이자 회장으로 있는 코리그룹과 부당내부거래를 한 의혹을 받고 있다. 코리그룹의 자회사가 북경한미의 의약품을 사들여 수수료를 붙여 팔면서 수익을 냈다는 것이다. 코리그룹의 홍콩법인인 코리홍콩 계열사 오브맘홍콩은 자회사인 룬메이캉을 통해 북경 한미와 의약품 거래를 해왔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북경한미의 지난해 매출 3,976억원 중 룬메이캉과의 거래액만 2,142억원에 달한다.

일감 몰아주기 의혹으로 만들어진 코리그룹의 자금은 국내로도 흘러 들어왔다. 임 이사가 최대 주주인 DXVX는 올 초 지급보증과 담보 제공에도 투자자들이 기피한 탓에 자금 조달에 실패한 바 있는데, 지난 3월 오브맘홍콩이 DXVX에 무담보로 254억원을 빌려줬다. 임 이사 대신 주주배정 유상증자에 참여하겠다고도 했다. DXVX는 이번에 추진하는 유상증자가 진행돼도 2년 연속 법인세비용차감전계속사업손실 50% 초과로 인한 관리종목 지정 가능성이 높을 것으로 보고 오브맘홍콩 대여금의 출자 전환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코리그룹과 한미그룹을 연계해 재원을 마련함 셈이다.

임성기 시절부터 지적돼 온 일감 몰아주기

이 같은 내부거래 의혹은 임 창업주가 타계하기 전부터 꾸준히 지적돼 온 바다. 지난 2016년 채이배 당시 국민의당 비례대표에 따르면 한미사이언스그룹은 한미아이티와 한미메디케어 등에 일감 몰아주기를 자행했다. 2005년 4월 설립된 한미아이티는 의료용품 및 의료기기판매업, 시스템 통합 용역서비스업, 전산 주변기기 및 하드웨어 판매업 등을 목적으로 설립된 회사로, 임 창업주의 자녀들이 100%의 지분을 보유한 사실상의 개인 회사다. 한미아이티의 총매출액 중 관계회사에 대한 매출은 80%를 상회하는 수준이었다. 총수 일가 개인 회사에 대한 그룹 차원의 일감 몰아주기가 이뤄진 것이다.

의료영구의 제조 및 판매를 목적으로 2000년 설립한 한미메디케어에서도 일감 몰아주기가 자행됐다. 총수 일가가 직·간접적으로 93.5%의 지분을 보유한 상황에서 총매출액 중 특수관계자에 대한 매출이 2010년 60%에 달한 것이다. 2015년엔 그 비중이 35.30%로 다소 줄었으나 여전히 계열사와의 거래 비중이 30% 이상을 유지했다. 일감 몰아주기 문제가 단순 임 이사 한 명의 일탈에 의한 것은 아니란 방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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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송영숙 한미약품그룹 회장, 임주현 한미약품그룹 부회장, 신동국 한양정밀 대표이사 회장/사진=한미약품그룹, 한양정밀

경영권 분쟁에 내부 비리가 ‘공격 구실’ 된 듯

이런 일감 몰아주기가 반복될 수 있었던 건 한미그룹이 공정거래법상 규제 적용 대상에 포함되지 않았던 탓이다. 공정거래법상 규제 대상은 대기업으로 한정돼 있는데, 한미그룹은 대기업 재벌그룹에 속하진 않았다. 한미메디케어의 경우 직접지분이 10.8%에 불과해 규제를 피할 수 있었다. 공정거래법상 총수 일가의 직접지분이 30%(비상장법인은 20%)인 경우에만 일감 몰아주기를 제재할 수 있다. 사각지대에 속해 법적인 문제로부터는 다소 자유로울 수 있었단 것이다.

그런데도 내부에서 장남의 일감 몰아주기 의혹을 정조준하고 나선 배경엔 형제 측과 모녀 측 사이의 경영권 분쟁이 있다. 당초 경영권 분쟁에서 임종윤·임종훈 이사 등 형제 측은 우위에 있었다. 지난 3월 임시 주주총회에서 표 대결 끝에 경영권을 직접 확보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최근 ‘키맨’으로 꼽히는 신동국 한양정밀 회장이 송영숙 회장·임주현 부회장 등 모녀 측의 손을 들어주면서 상황이 바뀌었다.

신 회장은 모녀 측 지분 6.5%(444만4,187주)를 매수하는 주식매매계약을 체결하고 공동으로 의결권을 행사하는 약정 계약(의결공동행사약정)을 체결했다. 이로써 모녀 측은 신 회장 등 우호지분을 합해 48.19%로 한미사이언스 전체 의결권의 과반에 근접하는 지분을 확보할 수 있었다. 형제 측 지분과 자녀 지분까지 합한 지분율이 총 24%가량임을 고려하면, 사실상 힘의 균형이 완전히 깨진 셈이다. 재계에서 불문율로 여겨지던 가족 간 내부 폭로가 발생한 것도 경영권 분쟁에서 힘을 더 싣기 위한 방편인 것으로 보인다.

일각에선 “애초 코리그룹이 한미그룹 경영권 분쟁의 불씨 중 하나였던 만큼 코리그룹과 형제 측의 관계성을 빠르게 정리하려는 목적이 있는 것 아니냐”는 의견도 나온다. 업계에 따르면 임 이사는 한미그룹의 주주 가치가 훼손될 수 있음에도 코리그룹을 활용한 상속세 재원 마련을 지속적으로 주장해 왔으며, 모녀 측은 코리그룹과 한미와의 연계 및 상속세 재원 마련 활용에 부정적인 입장을 견지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