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도전 불붙은 유통가, 컬리도 ‘퀵커머스 시장’ 출사표 “출혈 경쟁 본격화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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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자 전환 컬리, 서울 서대문·마포 일대서 '컬리나우' 스타트
럭셔리 뷰티, 신선식품 등 5,000여 개 상품 1시간 이내 배달
비마트·요마트 등 이미 시장 선점, 후발주자 컬리 차별성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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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년 전 국내 이커머스 시장에 새벽배송 개념을 처음 도입했던 리테일 테크기업 컬리가 ‘컬리나우’ 서비스를 론칭하며 퀵커머스(Quick Commerce) 시장에 뛰어들었다. 상장 재추진을 앞두고 기업가치를 제고하기 위해 신사업에 발을 들인 것으로 분석된다. 앞서 이마트와 쿠팡 등 유통 공룡들이 퀵커머스에 도전했다가 철수의 쓴맛을 본 가운데 컬리가 기존 사업과 시너지를 창출할 수 있을지 이목이 쏠린다.

컬리, 퀵커머스 서비스 ‘컬리나우’ 론칭

25일 컬리는 퀵커머스 서비스 컬리나우를 서울 서대문구와 마포구 일부 지역에서 시작한다고 밝혔다. 컬리나우에서는 컬리몰을 통해 선보이는 로컬 맛집과 유명 디저트, 신선식품, 생활필수품, 가정간편식(HMR), 화장품 등 5,000여 개 상품을 오전 9시부터 오후 10시 사이에 주문하면 1시간 이내에 받아볼 수 있다. 고객 주문이 들어오면 컬리가 마포구 디지털미디어센터(DMC) 인근에 확보한 소규모 PPC(Pick Packing Center·도심형 물류 센터)에서 물건을 포장한 뒤 배달 대행업체를 통해 고객에게 배송해 주는 방식이다. 배달은 부릉과 체인로지스가 맡는다.

컬리는 해당 지역에서 컬리나우 운영이 안정화되면 연말까지 서울 내 다른 지역으로도 서비스를 확장할 계획이다. 다음 사업지로는 강남이 유력하게 검토되고 있다. 서비스의 완성도를 높여 1인 가구가 많은 강남에서 컬리나우의 진가를 발휘하겠다는 취지로 풀이된다. 업계는 컬리나우가 첫 사업장으로 서대문구를 택한 이유 역시 강남 진출을 위한 포석으로 분석한다. 강남구보다 인구는 적지만 1인 가구 비율이 높다는 공통점이 있어서다.

아울러 컬리는 올해 삼성물산과 코오롱FnC의 의류 브랜드를 입점시키며 패션·잡화 카테고리도 강화하고 있다. 지난 2022년 뷰티컬리를 론칭해 신선식품에서 화장품으로 외연을 확장한 것처럼 패션을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삼겠다는 구상이다.

9년 만에 첫 분기 흑자로 자신감↑

컬리가 퀵커머스 시장에 출사표를 던진 데는 올해 하반기 IPO(기업공개)를 앞두고 기업가치를 높이겠다는 복안이 담겨있다. 컬리는 2022년 한 차례 상장을 추진했으나 투자심리 위축으로 기업가치가 3조원에서 1조원 밑으로 떨어지자 자진 철회했다. 이후 외형 확대를 위해 화장품 사업인 뷰티컬리를 론칭, 뷰티 부문을 중심으로 성장한 컬리는 올 1분기 매출 5.381억원, 영업이익 5억원으로 2015년 설립 이후 처음으로 분기 흑자를 기록했다.

전체 거래 규모도 큰폭으로 늘었다. 올해 1분기 컬리의 전체 거래액(GMV)은 지난해 1분기 대비 13% 늘어난 7,362억원으로, 마켓과 뷰티, 3P(판매자 배송) 등의 고른 성장이 주효한 것으로 분석된다. 구매자 수도 전년 동기 대비 7% 늘어나며 지속적인 증가세를 유지했다. 또 영업활동에 따른 현금 창출력을 의미하는 지표 중 하나인 조정 상각전영업이익(EBITDA)에서도 첫 분기 흑자를 냈다. 올해 1분기 EBITDA는 71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287억원 개선됐다.

흑자로 자신감을 얻은 컬리는 신사업으로 퀵커머스 서비스를 낙점하고 고객 수요 점검에 돌입했다. 그동안 3040세대 소비자를 주 타깃으로 새벽배송 시장을 키워온 컬리는 ‘미식 딜리버리’, ‘오늘 저녁 뭐먹지’ 등 시범 서비스를 통해 2030세대의 당일 배달 수요를 확인, 이번 컬리나우 론칭으로 기존 고객은 물론 컬리를 사용해 보지 않은 2030세대에도 ‘컬리온리’의 HMR 상품 경쟁력과 고품질의 컬리 생필품 등을 누릴 수 있게 한다는 전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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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포화된 퀵커머스 시장, 경쟁력 없이는 출혈만

다만 시장에서는 컬리의 경쟁력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이미 업계에 자리 잡은 업체들을 추월할 만한 차별화된 경쟁력 없이는 출혈만 이어질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다. 현재 국내에서 퀵커머스 서비스를 활발하게 전개하고 있는 업체로는 배달의민족과 요기요, 홈플러스 등이 있다. 지난해 메쉬코리아(부릉)을 인수하며 퀵커머스 시장 참전을 예고한 hy(옛 한국야쿠르트)는 이달 말 배달앱 노크(knowk)를 출시, 서울 강서구에서 시범 운영에 들어갈 예정이다.

현재 퀵커머스 시장에서 앞서가는 업체는 배달의민족이 운영하는 비마트로, 지난해 비마트 등 배민의 커머스 사업 부문 매출은 전년(5,122억원) 대비 34% 증가한 6,880억원을 기록했다. 비마트는 서울과 수도권 외에 천안·대전·대구·울산·부산 등에 70개의 PP센터를 갖췄고, 물류 자회사인 우아한청년들을 통해 배송 효율성을 높였다. 2021년엔 배민스토어를 출시하기도 한 배민은 편의점·뷰티·가전·책 등 다양한 상품을 바로 배송하며 시장 확대를 꾀하고 있다.

GS리테일이 2021년 인수한 요기요의 퀵커머스 서비스인 요마트의 기세도 가파르다. 요마트는 수도권은 물론 강원·충청·호남·영남 등 전국 5개 지역 370여 개 GS더프레시 점포를 통해 9,000여 종의 상품을 배달한다. 지난해엔 요편의점도 출시하며 전국 1만2,400여 개의 GS25 매장을 활용 중이다.

홈플러스도 전국 홈플러스 익스프레스 매장을 물류 거점으로 활용하며 즉시배송 서비스를 운영하고 있다. 홈플러스 익스프레스의 즉시배송은 최근 2년간 연평균 80%대의 매출 성장률을 보이며 폭발적으로 성장하고 있다. 올해 1~5월 즉시배송 매출은 지난해 동기 대비 약 57% 증가했고, 같은 기간 즉시배송 신규 고객 수 역시 전년 대비 약 11% 늘었다. 아울러 3개년 연평균 성장률(CAGR)은 84%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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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마트의 쓱고우/사진=바로고

고비용·저효율에 수익 내기 어려워, 이마트·롯데도 철수

경쟁 업체 외에도 난관은 또 있다. 지난해 겨우 흑자를 낸 컬리가 퀵커머스 사업 비용을 감당할 수 있을지다. 주문 후 1시간 이내에 물건을 배송하기 위해서는 도심 곳곳에 최소 1,000~1,700㎡(300~500평)의 마이크로풀필먼트센터(MFC)를 확보해야 하는데 도심의 임차료를 고려하면 수익을 내기 쉽지 않아서다.

실제로 퀵커머스는 고비용·저효율 사업으로, 일부는 높은 물류비 부담으로 인해 과도한 할인 프로모션 등 출혈 경쟁을 벌인 끝에 사업을 철수하는 경우도 다수 발생했다. 게다가 업계 1위라는 타이틀 역시 뚜렷하게 부각하긴 어려운 시장이다. 이처럼 적자를 보면서까지 출혈 경쟁을 지속한다면 한계점이 명확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앞서 퀵커머스에 도전한 대형 유통사들이 사업을 축소하거나 접은 것도 이런 이유에서였다. 지난 2022년 이마트는 논현역에 MFC를 마련해 쓱고우 베타서비스를 시작했지만 2년을 채우지 못한 채 지난해 말 운영을 종료했고, 자체 퀵커머스인 이츠마트를 운영하던 쿠팡도 지난해 강남과 서초 지역 배달을 중단하는 등 서비스 지역을 축소했다.

롯데슈퍼 역시 공들였던 바로배송 서비스를 철수했다. 2020년 일찍이 퀵커머스 시장에 진출한 롯데슈퍼는 자사의 전국 매장을 물류 거점으로 활용할 수 있다는 점을 근거로, 경쟁사 대비 더 많은 배송 권역을 확보할 수 있어 비용 측면에서 유리하다고 평가했으나 지난해 2월 결국 종료했다. 퀵커머스 사업의 높은 벽을 넘지 못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