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비디아, 美 정부 제재에도 중동에 AI 가속기 수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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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사우디·UAE 등 중동 우회하는 대중 수출 규제 강화
엔비디아, 카타르 통신그룹 우레두와 대규모 수출 계약
미·중 갈등에도 '큰 손' 고객 중동과의 협력 확대 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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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단 인공지능(AI) 반도체 시장을 주도하는 엔비디아가 미국 정부의 규제에도 불구하고 중동 기업에 대규모 AI 칩을 판매하기로 했다. 앞서 지난해 10월 미국 정부는 중동을 우회해 중국으로 유입되는 첨단 AI 칩의 유출을 막기 위해 자국 반도체 기업의 대중동 수출을 제한했다. 하지만 중동 국가들이 AI 산업에 천문학적 자금을 투입하면서 엔비디아 등과의 협력을 강화할 것으로 보여 당분간 미국 정부와 반도체 기업 간의 눈치싸움이 이어질 전망이다.

우레두 “중동에 엔비디아 기술 제공하는 최초 사례”

23일(현지시각)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지난 19일 엔비디아는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열린 TM포럼에서 중동의 대형 통신그룹 ‘우레두’와 대규모 AI 칩 수출계약을 체결했다. TM포럼은 800여 개 통신사와 테크 기업이 참여하는 글로벌 협의체로 AT&T, 차이나 모바일, 델, 에릭슨, 소프트뱅크, 화웨이 등이 주요 회원사로 참여하고 있다. 엔비디아가 이번 계약을 통해 우레두에 공급할 AI 칩의 구체적인 제품 성능과 계약 금액 등 세부 사항은 공개되지 않았다.

우레두는 본사 네트워크가 있는 카타르를 기반으로 쿠웨이트, 알제리, 튀니지, 오만, 몰디브 등 5개국에서 데이터센터를 운영 중이다. 해당 데이터센터의 용량은 40MW(메가와트) 수준으로 오는 2030년까지 10억 달러(약 1조4,000억원)를 투자해 용량을 3배 이상 늘린다는 계획이다. 최근에는 데이터센터와 함께 해저 케이블과 광케이블 네트워크 사업에도 투자를 강화함에 따라 엔비디아의 AI 기술 도입이 더욱 가속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아지즈 알투먼 파코루 우레두 최고경영자(CEO)는 “이번 계약을 계기로 자사의 기업간거래(B2B) 고객은 경쟁사가 제공하지 못하는 서비스를 향후 18~24개월 이내 제공받게 될 것”이라며 “우레두는 엔비디아의 생성형 AI와 그래픽 처리 기술을 쿠웨이트, 알제리, 오만 등에 직접 제공할 수 있는 중동 최초의 회사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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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레두의 오만 데이터센터/출처=우레두

美 정부, 사우디·UAE 등 수출 승인 지연시키거나 불허

앞서 지난해 10월 미국 상무부는 중국이 중동 지역을 우회해 대중 수출 규제 대상인 첨단 AI 전용 반도체를 공급받을 수 있다는 이유로 첨단 AI 전용 칩의 중동 판매를 제한했다. 이에 따라 중동 국가에 첨단 AI 전용 칩을 수출하고자 하는 미국 기업은 정부의 사전 특별 허가를 받아야 한다. 어떤 국가가 규제 대상에 이름을 올렸는지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업계에서는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UAE)가 포함됐을 것으로 추정한다.

해당 조치는 특히 엔비디아나 AMD의 대규모 중동 수출을 제한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최근 AI 산업을 미래 성장 동력으로 육성하고 있는 중동 국가들은 엔비디아의 ‘큰 손’ 고객으로 자리매김했다. 파이낸셜타임스(FT) 등 외신에 따르면 규제가 시행되기 전까지 사우디아라비아는 엔비디아로부터 최소 3,000개의 H100 칩을 사들였고 UAE도 엔비디아로부터 수천 개의 AI 반도체를 확보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런 가운데 미국 정부는 올해 들어 반도체 기업의 대중동 수출 규제를 더욱 강화하고 있다. 블룸버그통신 등에 따르면 미국 정부는 지난달부터 중동으로 대규모 AI 가속기를 수출하려는 엔비디아와 AMD의 수출 허가 신청을 승인하지 않거나 승인을 미루고 있다. ‘AI 가속기’는 AI 모델이 데이터를 학습하고 추론할 때 필수적인 반도체로 중동 국가들이 디지털 인프라 구축을 위해 천문학적인 자금을 투자해 사재기에 나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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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비디아의 H100 칩/사진=엔비디아

중동과 중국, 첨단 칩뿐 아니라 인적·기술 협력도 활발

미국 정부가 대중동 수출을 불허하는 배경에는 중동이 중국의 ‘AI 컴퓨팅 허브’가 될 것이란 우려가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중국 기업들이 미국의 규제를 피해 정상적인 교역으로는 구매할 수 없는 첨단 칩에 접근하는 수단으로 중동 국가들을 활용하고 있어서다. 중동에서 중국 기술기업의 입지가 커지고 있는 것도 이러한 우려를 불러일으키는 원인 중 하나다. 지난해 9월 화웨이는 사우디 수도 리야드에 클라우드 데이터센터를 오픈한 것으로 알려졌다.

게다가 지난해 사우디가 구매한 H100 반도체 대부분이 사용되는 사우디 압둘라 국왕 과학기술대(KAUST)에는 미국에서 활동이 막힌 중국 AI 전문가들이 대거 모여있다. 지난 2022년에는 사우디 통신부가 중국 정부와 AI 분야 협력을 위한 전략적 파트너십을 체결하기도 했다. UAE는 이미 서방의 제재 대상인 러시아와 수출 금지 품목을 거래한 이력이 있다는 점에서 중국으로의 유출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고 있다.

이런 위협은 비단 아랍국가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이스라엘도 중국 기술 기업과의 협력 관계를 강화하고 있다. 화웨이와 샤오미는 이스라엘에 연구센터를 두고 있으며 중국 투자자들은 이스라엘 반도체 제조업체들에 투자하는 벤처캐피털회사에 자금을 지원한다. 이 밖에도 중국 공급업체들은 밀매를 통해 인도, 대만, 싱가포르 등 다른 국가의 기업들로부터 칩을 공급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