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진출한 국내 배터리·자동차·반도체 기업, 노조 리스크 급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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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정부·노조 이해관계 맞물려 강성노조 입김 세져
LG·GM 합작법인, 3년간 임금 30% 인상 잠정 합의
노조 없던 현대차 美 공장, 이달 중 가입여부 투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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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전미자동차노조(UAW)

오는 11월 미국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조 바이든 행정부가 노동조합 지지를 선언함에 따라 강성 노조의 입김이 거세지면서 미국에 진출한 국내 배터리·자동차·반도체 기업의 고민이 커지고 있다. LG에너지솔루션은 산별 노조와의 임금 협상에서 현지 배터리 합작법인 근로자의 임금을 상당 규모 인상해 주기로 했고 현대자동차 현지 공장은 산별 노조 가입을 놓고 노동자 투표를 앞두고 있다.

얼티엄셀즈·UAW 잠정 합의, 최종 임금 115% 상승

16일 업계에 따르면 LG에너지솔루션과 제너럴모터스(GM)의 배터리 합작법인 얼티엄셀즈는 지난 10일(현지시각) 미국 최대 제조업 산별노조인 전미자동차노조(UAW)와의 임금 교섭에서 3년간 임금 30% 인상안에 잠정 합의했다. 오하이오주에 있는 얼티엄셀즈 1공장 노동자들은 공장 가동을 시작한 2022년 12월 UAW에 가입한 이후 지속적으로 임금 인상을 요구해 왔다.

UAW는 디트로이트에 있는 포드·스텔란티스·GM 등 이른바 ‘완성차 빅 3’ 근로자 약 14만6,000명과 오하이오주에 위치한 자동차 제조업체의 합작 배터리 공장 근로자 약 800명을 대표한다. 오하이오주에는 도요타를 비롯한 BMW, 메르세데스 벤츠, 혼다 등 12개가 넘는 자동차 기업의 배터리 공장이 있다.

얼티엄셀즈 노사는 지난해 8월 임금을 25% 인상하는 협상안에 합의했지만 이후 추가 인상을 요구하는 노조의 입장을 반영해 인상률을 최종 30%까지 올렸다. 이번 잠정 합의안은 14~16일(현지시각) 진행되는 조합원 표결을 거쳐 최종 확정된다. 30% 인상안이 확정되면 얼티엄셀즈 노동자의 최종 임금 수준은 2022년 대비 115%가량 상승할 것으로 추산된다.

UAW, ‘노조 없는 자동차 공장’으로 가입 범위 확대

이번 임금 인상 타결을 두고 자동차 업계에서는 향후 UAW가 다른 기업의 배터리 공장에도 영향력을 발휘할 가능성이 거론된다. 뉴욕타임스는 UAW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UAW가 이번 얼티엄셀즈와의 계약 템플릿을 포드, 스텔란티스 등 GM의 경쟁사가 짓고 있는 배터리 공장에도 적용할 것”이라고 관측했다.

UAW는 지난해 빅 3를 대상으로 동시 파업을 벌인 이후 지난해 11월 4년간 33%의 임금 인상을 골자로 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신입 노동자의 초임과 숙련 노동자의 시급 인상, 퇴직자를 위한 연간 보너스, 임시직 노동자의 정규직 전환, 공장 폐쇄에 대한 파업권 보장과 전기차 전환 과정에서 일자리 보호 등도 얻어냈다.

이후 UAW는 현대차, 도요타, 혼다 등 노조가 없는 공장의 근로자들을 대상으로 노조 가입 범위를 넓혀왔다. UAW에 따르면 현재 테슬라를 포함해 현대차, 도요타, 리비안, 닛산, BMW, 메르세데스 벤츠 등 1만 명이 넘는 14개 비노조 자동차 노동자들이 노조에 가입 신청을 했다. 지난 2월에는 오는 2026년까지 미국 내 비노조 자동차 공장과 EV 배터리 공장 노동자 조직에 4,000만 달러(약 530억6,000만원)를 투입할 것이라고 밝혔다.

노조 결성하면 시장 변화에 빠르게 대응하기 어려워

자동차·배터리 업계를 둘러싼 노조 리스크는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에 따른 보조금 혜택을 받기 위해 미국에 진출한 현대차그룹, 삼성SDI, SK온 등 국내 기업에도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현대차는 2005년 미국에 제조 공장을 지은 후 올해까지 무노조 경영을 해 왔으나 앨라배마주 몽고메리 공장 노동자 4,000명은 이달 중 UAW에 가입 여부를 두고 투표를 진행할 예정이다.

앞서 지난해 11월 현대차 미국 법인은 노조 가입을 저지하기 위해 앨라배마 공장 등에서 근무하는 생산직의 임금을 4년간 25% 인상한 바 있다. 만약 이번 투표로 노조가 결성되면 GM, 포드, 스텔란티스 등 미국의 자동차 제조사와 같이 UAW와 임금에 대해 산별 교섭을 벌여야 한다. 차종별 생산량을 조절할 때도 노조와 별도 협상을 진행해야 하기 때문에 시장 변화에 기민하게 대응하기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SK온은 포드와 배터리 합작 법인을 설립하고 오는 2026년 캔터키주와 테니시주에 배터리 공장을 설립할 예정이었지만 강성 노조의 압박으로 가동시기를 늦춘 상태다. 지난해 3분기 포드는 6주간 진행된 UAW 파업으로 13억 달러(약 1조7,614억원)의 손실을 봤고 결국 미국 켄터키 배터리 공장 가동을 포함해 앞서 발표한 약 120억 달러 규모의 전기차 투자계획을 연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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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전미통신노동자연합(CWA)

반도체도 노조리스크, 삼성·SK도 노조 설립에 주시

반도체 업계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 바이든 행정부의 대규모 반도체 보조금을 받기 위해 미국에 진출한 삼성전자, SK하이닉스 역시 노조 설립 움직임을 주시하고 있다. 올해 재선을 노리는 바이든 대통령이 미국의 기술·미디어 노동자를 대표하는 단체인 전미통신노동자연합(CWA)을 공개적으로 지지하면서 CWA의 입김이 세지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CWA는 마이크론과 오는 2028년 가동 예정인 뉴욕 북부의 클레이시 공장을 두고 협상을 시작했다. 공장이 문을 열면 마이크론은 CWA의 노조 추진을 방해하지 않고 CWA는 피켓 시위, 파업 등으로 마이크론 사업을 방해하지 않는다는 내용이다. 마이크론 공장이 노조를 결성하게 되면 동종업계의 인텔, TSMC,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도 연쇄적으로 영향을 받을 가능성이 높다.

특히 애리조나주에 공장을 건설하고 있는 TSMC는 현지 노동자들과 고용·근로환경, 대만 출신 근무자와 차별 등 문제를 두고 마찰을 빚어 왔다. 이 때문에 공장 가동 시기를 6개월 정도 늦추기도 했다. 다만 지난해 12월 건설 현장 근로자 노조와 분쟁을 해소하기 위한 협약을 체결하면서 이를 통해 노조 리스크를 해소하고 미 정부의 보조금 심사에서도 가점을 받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결국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국내 기업들도 마이크론, TSMC의 선례를 따라 적극적으로 노조 설립과 활동을 장려하겠다는 점을 강조하게 될 공산이 클 것으로 보고 있다. 현재 삼성전자는 미국 텍사스주 테일러시에 400억 달러(약 55조5,000억원)를 투자해 반도체 관련 시설을 구축 중이며, SK하이닉스는 미국 인디애나주 웨스트라피엣에 38억7,000만 달러(약 5조2,000억원)를 투자해 AI 메모리용 어드밴스드 패키징 생산 기지를 짓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