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S전선, 대한전선에 ‘해저케이블 독자 기술 유출’ 의혹 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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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S전선 “20년간 1조 투자해 기술 개발, 유출 사실이면 법적 조치”
대한전선 “2009년부터 해저케이블 개발, 자력으로 설비 역량 갖춰”
전선 업계 슈퍼사이클, 해저케이블·해상풍력 시장 가파른 성장세 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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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전선의 충남 당진 공장 전경/사진=대한전선

LS전선의 해저 케이블 기술이 공장 건축 설계업체를 거쳐 경쟁사인 대한전선으로 유출됐다는 의혹을 두고 경찰이 수사에 나선 가운데 LS전선이 강경 대응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에 대해 대한전선은 이미 해저케이블 설비와 생산에 대한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다며 맞대응했다.

‘해저케이블 기술 유출’ 두고 경찰 수사 진행 중

14일 전선 업계에 따르면 경기남부경찰청 산업기술안보수사대는 최근 부정경쟁방지법 위반 등 혐의로 케이블 제조업체인 대한전선과 건축 설계업체 A사 관계자 등을 입건해 조사 중이다. 경찰은 A사가 과거 LS전선의 해저케이블 공장 시공 과정에서 얻은 기술 정보를 최근 해저케이블 공장을 건설한 대한전선에 빼돌렸다는 의혹에 대해 수사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A사는 2008~2023년 LS전선의 고전압 해저케이블 공장 1~4동의 건축 설계를 전담했다. LS전선에 따르면 A사는 15년간 LS전선 해저케이블 공장의 건축 설계 작업을 진행하면서 설비 배치도, 설비 수량, 턴테이블의 배치·운영, 케이블 이송 경로, 주요 설비의 특징, 설계 컨셉 등을 확인할 수 있는 도면 자료를 가지고 있었으며 공사 과정의 모든 히스토리와 노하우를 알고 파악하고 있었다.

이번 의혹의 핵심은 설계 업체가 LS전선의 독자 기술을 후발주자인 대한전선에 유출돼 실제 공장 건설에 사용됐는지 여부다. ‘고전압 해저 케이블 기술’은 중저압 케이블에 비해 작동 속도와 내구성이 우수해 해상풍력 발전의 고부가 가치 기술로 평가받는다. 경찰은 최근 대한전선이 해저케이블 생산 공장을 설립하는 과정에서 LS전선으로부터 유출된 기술을 활용했는지 등에 대해서도 들여다보고 있다.

LS ‘독자 기술 유출’ vs 대한 ‘이미 기술력 확보’

이에 LS전선은 14일 설명자료를 내고 “LS전선은 약 20년간 해저케이블 공장과 연구개발(R&D) 등에 약 1조원을 투자했다”며 “독자 개발한 기술이 유출된 것이 사실이라면 회복할 수 없는 손해를 입었다”고 강조했다. 이어 “특히 500kV(킬로볼트)급 초고압직류송전(HVDC) 해저케이블은 국가 핵심기술로 기술 정보가 다른 국가로 유출될 경우 국가 안보와 국민 경제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고 우려했다.

LS전선은 또 “해저케이블 설계는 장조장, 고중량의 케이블 생산·보관·이동을 위한 설비 배치에 관한 것으로 공장에서 항구까지 이송하는 방법도 보안 사항에 해당한다”며 “이런 특성 때문에 후발 업체의 시장 진입 장벽이 높을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A사가 경쟁사와 거래를 했다는 사실을 심각하게 보고 있으며 수사 상황을 예의 주시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대한전선도 같은 날 별도의 설명자료를 통해 입장을 밝혔다. 대한전선은 “6월 14일 현재 LS전선의 해저케이블 기술을 유출한 혐의에 대해 피의자로 특정되거나 관련 통보를 받은 사실이 없다”며 “경찰이 지난 6월 11일에 진행한 대한전선 해저케이블 공장 현장사무실에 대한 압수수색은 피의자인 건축 설계업체 관계자의 혐의 입증을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해저케이블 시장의 진입 장벽이 높은 것은 사실이나, 설비의 특수성과 배치 등에 대한 기밀성 때문이 아니라 해저케이블 전용 공장을 짓는데 들어가는 자금이 막대하기 때문”이라며 “대한전선은 명실공히 케이블 관련 최고 수준의 기술력과 노하우를 확보한 전문 기업으로, 자력으로 해저케이블 설비를 설치·건설할 충분한 역량을 갖추고 있다”고 강조했다.

전선의 꽃 ‘해저케이블’, 2025년 6조 시장 전망

최근 전선 업계는 20년 만에 첫 슈퍼 사이클을 맞았다. 노후 전력망 교체와 신재생 에너지 수요에 더해 생성형 인공지능(AI) 열풍으로 세계 곳곳에 데이터센터 설립이 잇따르고 북미를 중심으로 반도체·전기차 배터리 공장이 대거 신설되면서 글로벌 전력망에 대한 투자가 급증한 덕분이다. 강세 사이클이 향후 5년 이상 이어질 것이란 증권가 전망에 올해 들어 전선주가 최대 4배까지 올랐고 업체들도 넘쳐나는 수주 물량 덕에 생산라인을 ‘풀가동’ 중이다.

특히 해저케이블은 전선 업계에서도 ‘전력케이블의 꽃’으로 불린다. 제품의 균질한 품질은 물론 심해에 매설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돌발상황까지 빠르게 대처할 수 있어야 하는 만큼 최고 난도의 기술력을 요한다. 전선 업계에서는 글로벌 해저케이블 시장 규모가 2021년 23억 달러(약 3조원)에서 오는 2025년 45억 달러(약 6조원)으로 2배가량 성장할 것으로 추산한다. 글로벌 해상풍력 시장도 2025년까지 연평균 23% 성장할 것으로 예상되는 블루오션이다.

현재 해저케이블 산업은 소수의 글로벌 기업이 전체 해저케이블 시장을 지배하는 상황이다. 유럽의 ‘빅3’로 불리는 이탈리아의 프리즈미안, 프랑스의 넥상스, 덴마크의 NKT를 비롯해 일본의 스미토모와 한국의 LS전선이 글로벌 시장의 85% 이상을 점유하고 있다. 구체적인 점유율 수치는 공개되지 않았지만, LS전선은 세계 4위권으로 분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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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10일 LS전선 동해사업장에서 열린 ‘525kV HVDC 케이블 양산 기념행사’에서 참석자들이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사진=LS전선

글로벌 경쟁 치열, 국내 기업 분쟁보단 ‘우호적 협력’ 필요

이런 가운데 LS전선과 대한전선은 슈퍼사이클 원년을 맞아 해외에서 잇단 수주에 성공하면서 생산능력을 확장하기 위한 투자를 확대하고 있다. 먼저 LS전선은 강원도 동해시에 위치한 5동을 증설하는데 약 1,000억원을 추가 투자할 예정이다. 1,555억원이 투입된 4동 증설에 이어 1년도 채 되지 않은 투자 결정이다. 내년 하반기 5동이 완공되면 HVDC 케이블 생산능력이 4배 늘어난다. 지금까지 동해 해저케이블 공장의 누적 투자액은 약 9,500억원에 이른다.

대한전선은 지난 4일 충남 당진 아산국가단지에 해저케이블 1공장의 1단계 건설을 완료하고 지난 3일 공장 가동식을 개최했다. 대한전선은 “해저케이블 1공장의 1단계 설비가 완비되면서 매년 급성장하는 해저케이블 수요에 대응할 수 있는 생산 역량을 갖추게 됐다”며 “해상풍력용 포설선을 인수해 시공 역량까지 갖추게 된 만큼 적극적인 사업 확대를 통해 세계 해저케이블 시장의 게임체인저로 자리매김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이처럼 글로벌 경쟁이 치열한 만큼 일각에서는 국내 기업 간의 분쟁보다는 우호적 협력이 필요하다는 시각이 나온다. 일례로 SK이노베이션와 LG에너지솔루션은 성장 잠재력이 큰 배터리 기술을 둘러싸고 2년간 미 국제무역위원회(ITC) 분쟁을 이어가다가 지난 2021년 극적으로 합의했다. SK이노베이션은 ‘사업 정리’의 위기에서 벗어나 재도약을 노릴 수 있게 됐고 LG에너지솔루션은 ‘기술 우위’를 확인시키며 2조원 상당의 배상금을 챙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