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호 발급 재개에 국산 게임 ‘중국 러시’ 본격화, 낮은 경쟁력·기울어진 운동장은 여전히 과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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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게임 수입 나선 중국, 펄어비스 등 국내 게임사 중국 진출 랠리
글로벌 시장 대세는 중국산 게임, 한국 시장서도 중국산 게임이 '우위'
국내 게임업계선 볼멘소리, "중국산-국산 기울어진 운동장부터 해결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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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당국이 해외 게임 수입에 전향적인 움직임을 보이면서 국내 게임업계에도 훈풍이 불기 시작했다. 국내 주요 게임사들은 현지 게임 출시를 줄줄이 예정하고 나섰고, 1분기 현지에서 출시된 국산 게임이 흥행에 성공하는 사례까지 나왔다. 다만 업계 일각에선 중국 현지에서의 성공이 기업에 큰 실익을 가져다주진 못할 것이란 지적이 나온다. 현지 업체와 퍼블리싱(배급) 계약을 체결하는 형태로만 진출이 가능한 중국 시장 특성상 IP(지식재산권)가 대규모 흥행을 거두지 않는 이상, 들인 공력에 비해 수익이 적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빗장 푼 중국, 국산 게임 ‘줄줄이’ 진출

14일 게임업계에 따르면 최근 중국은 심의를 거친 해외 게임사 게임에 한해 ‘외자판호’를 발급해 서비스를 허가하고 있다. 한동안 한국산 신작 게임 IP에 대한 판호(인터넷 출판 자격) 발급을 막아온 중국 당국이 전향적 움직임을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이에 국내 주요 게임사들은 현지 게임 출시에 열을 올렸다. 펄어비스는 지난 5일 ‘검은사막’에 대한 외자판호를 발급받은 뒤 중국 텐센트와 퍼블리싱 계약을 체결했고, 엔씨소프트도 지난해 12월 ‘블레이드앤소울2’의 판호를 발급받고 텐센트와 함께 연내 출시를 목표로 현지화 작업을 진행 중이다. 위메이드는 지난해 회사의 대표 IP인 ‘미르M’의 판호를 발급받았다.

이미 현지 출시 후 성과를 얻어낸 게임들도 있다. 넷마블은 텐센트를 현지 배급사로 선정한 뒤 지난 2월 ‘제2의 나라: 크로스월드’를 중국에 출시했고, 넥슨은 중국에서 ‘던전앤파이터 모바일’을 지난달 21일 출시했다. 해당 게임들은 출시 직후 중국 앱스토어에서 게임 매출 1위에 오른 이래 현재까지도 선두를 유지하고 있다. 넥슨의 ‘블루 아카이브’ 역시 지난해 8월 현지 출시 이후 매출 19위를 차지하는 등 견조한 실적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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펄어비스의 게임 ‘검은사막’/사진=펄어비스

여전히 우위 점한 중국산 게임, “현지 진출해도 큰 실익 없을 수 있어”

문제는 국산 게임이 중국산 게임 대비 특별히 우위를 점하진 못하고 있단 점이다. 이는 중국 내부에서만의 문제가 아니다. 글로벌 시장에서도 국산 게임은 중국산 게임에 현저히 뒤처지고 있다. 글로벌 모바일 시장 데이터 분석 기업 센서 타워(Sensor Tower)가 발표한 2022년 1월 전 세계 모바일 게임회사 매출 순위에 따르면 1~3위는 모두 중국 게임회사로, 텐센트(Tencent), 넷이즈(NetEase), 미호요(miHoYo) 순이다.

국내에서마저도 국산 게임보단 중국산 게임이 인기를 끌고 있다. ‘붕괴3rd’, ‘붕괴: 스타레일’, ‘원신’, ‘명일방주’, ‘퍼니싱: 그레이레이븐’, ‘라스트워’ 등이 대표적이다. 퀄리티 높은 중국산 게임이 거듭 수입되다 보니 최근엔 한국 시장에서 중국산 게임과 중국산 게임이 경쟁 구도를 형성하는 사례도 잦아졌다. 대표적인 게임이 ‘원신’과 ‘명조:워더링 웨이브’다. ‘명조’는 출시 초기 ‘원신’과 비교되며 다소 평가절하당하는 분위기였지만, 현재는 14일 구글 플레이스토어 기준 최고 매출 게임 3위를 기록하는 등 ‘원신’과 함께 한국 시장에 완전히 자리를 잡았다. 중국산 게임의 경쟁력과 침투력이 단적으로 드러나는 사례다.

이렇다 보니 업계 일각에선 국산 게임이 중국에 진출한다 해도 큰 실익이 없을 수 있단 의견이 쏟아진다. 중국산 게임의 아성을 뛰어넘기 쉽지 않은 데다, 중국 게임시장 특성상 국산 게임이 성과를 내도 수익의 대부분은 중국 게임사(배급사)로 흘러 들어갈 게 뻔하단 것이다.

통상 중국에서 판호를 발급받기 위해선 ‘인터넷 문화 경영 허가증’과 ‘인터넷 출판 허가증’ 등이 필요한데, 이를 해외 업체가 단독으로 발급받을 방법은 없다. 즉 해외 업체가 중국 현지에 게임을 출시하기 위해선 중국 내 퍼블리셔와 반드시 협력해야 한단 것이다. 또 중국에서 온라인게임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선 판호 외에 ICP(인터넷 콘텐츠 제공자) 허가증이 필요하다. ICP 허가증은 외국인 투자자 지분 점유 비율 50% 이하 요건 등이 요구되는 등 취득 절차가 매우 복잡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처럼 현지 게임 출시 과정이 지나치게 어렵다 보니, 한국 게임사들 사이에서는 중국 게임업체에 자사 IP만 판매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자사 IP만 판매하면 게임 자체를 출시하는 것보다 훨씬 과정이 간편해진다”며 “이 경우 퍼블리셔와 개발사의 통상적인 수익 배분율은 7대 3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IP 영향력이 얼마나 크냐에 따라 개발사 배분율이 높아질 순 있지만, 최소 절반 정도는 배급사가 가져간다”고 덧붙였다. 결국 국산 IP 게임이 중국에서 흥할수록 서비스하는 중국 게임사의 수익만 커진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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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산 게임과 국산 게임의 ‘기울어진 운동장’

중국 시장의 불합리한 시장 구조도 국내 게임업계의 뜨거운 감자 중 하나다. 국산 게임이 중국 시장에 진출하기 위해선 상술한 각종 복잡한 과정을 거쳐야만 하고, 이마저도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가로막히는 경우가 잦다.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사태 등 지정학적 갈등이 가시화한 직후 판호 발급을 중단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아울러 중국의 각종 고강도 규제를 직격으로 맞는 경우도 적지 않다. 국내 게임사가 중국에 게임을 출시하기 위해선 높은 수수료를 감안하더라도 현지 게임사에 배급을 맡길 수밖에 없는 상황인 셈이다.

반면 중국산 게임은 국내 시장에 진입할 때 별다른 어려움이 없다. 중국 기업들은 한국에서 직접 서비스를 이어가면서 수익을 온전히 가져가고 있으며, 국내 게임 관련 규제에서도 상대적으로 자유롭다. 물의를 빚은 데 책임을 지지 않고 떠나기 용이한 탓이다. 올 초 매출 순위 1위를 기록하며 관심을 끈 조이나이스게임즈의 ‘버섯커 키우기’ 역시 이용자와 소통할 수 있는 국내 창구를 마련하지 않고 유료 상품에 대한 환불 요청을 거부하는 등 규제에서 벗어난 ‘막장 행동’을 다수 취한 바 있다.

국내 자율규제를 지키지 않는 경우도 많다. 한국게임정책자율기구(GSOK)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온라인·모바일 상위 100위권 게임 중 확률공개 자율규제를 준수하지 않은 게임사는 총 13개사였는데, 이 중 5개사가 중국(홍콩 포함) 게임사였다. 심지어 이 가운데 3개사는 규제 미준수 누적 횟수가 무려 23회에 달하기도 했다.

문제는 이들 중국 게임사를 처벌한 법적 근거가 마땅치 않단 점이다. 공정거래위원회의 온라인 및 모바일게임 표준약관, 게임산업진흥에 관한 법률안 등을 보면 자율규제를 무시하고 공격적으로 국내 진출을 하고 있는 중국 게임사를 규제할 근거는 사실상 없다. 최근 당국이 ‘대리인 지정제’를 언급하며 해외 게임사에 대한 책임 강화를 부르짖고 있지만, 업계에선 여전히 “피하려면 여전히 피할 수 있는 제도”라는 쓴소리가 나온다. “다른 건 몰라도 최소한 중국산 게임과 국산 게임 간 ‘기울어진 운동장’은 정책적으로 타파할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가 업계를 중심으로 쏟아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