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우조선의 잇단 기술 유출, “대주주였던 산은도 보안 관리 나 몰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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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듭 드러나는 대우조선 기술 유출 실태, 장보고Ⅲ 잠수함 기술도 빼돌려
산업은행 관리 아래 있었지만, "자금 회수에 매몰돼 보안은 나 몰라라"
한화그룹 인수 후 보안 정상화됐지만, 과거 원죄가 '족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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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우조선해양(현 한화오션) 퇴직자 등이 2019년 재직 당시 장보고Ⅲ(도산 안창호급) 잠수함에 활용된 유럽 A사 기술을 빼돌린 혐의로 비공개 재판을 받고 있는 사실이 확인됐다. 대주주였던 산업은행이 관리하던 시절 대우조선의 기술 유출 의심 사례가 거듭 가시화하면서 산업은행과 대우조선의 보안 및 관리책임에 대한 비판이 쏟아지는 모양새다.

잠수함 기술 유출됐나, 대우조선 시절 보안 문제 다시 도마에

28일 방산업계에 따르면 창원지방법원 마산지원은 대외무역법·부정경쟁방지법 위반 등의 혐의로 기소된 대우조선 전 직원 등 관련자 5명에 대해 2022년 11월부터 지난 9일까지 총 16번에 걸쳐 1심 공판을 벌이고 있다. 이번 재판에서 쟁점이 된 기술은 유럽 방산업체 A사 소유 기술로, 장보고Ⅲ 잠수함에 쓰인 바 있다. 해당 국가에서 문제를 제기하면 외교 분쟁으로까지 번질 수 있는 사안인 셈이다.

대우조선의 기술 유출 사건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앞서 지난 1월 경남경찰청 산업기술안보수사대는 대우조선 근무 당시 도면을 빼돌리고 잠수함 개발 컨설팅 회사인 S사로 이직한 대우조선 전 직원 등 2명을 산업기술유출 혐의로 입건해 수사를 진행한 바 있다.

당시 대만으로 넘어간 것으로 파악된 잠수함 설계 도면은 대우조선이 2011년 12월 인도네시아로부터 11억 달러(약 1조4,393억원)에 3척을 수주한 ‘DSME1400’ 모델의 도면인데, 대만 정부와 컨설팅 계약을 맺은 S사가 대만국제조선공사(CSBC)와 손잡고 잠수함을 만드는 과정에서 기술이 유출된 것으로 추정된다. 대우조선의 허술한 보안 시스템 문제가 직접적으로 드러난 사건이다.

2022년에도 유출 의혹, “기술 대만으로 빠져나가”

지난 2022년에도 비슷한 사건이 있었다. 우리 해군의 최신예 3,000t급(장보고-3급) 잠수함 기술 일부가 대만으로 유출된 혐의가 드러난 것이다. 당시 언론에 따르면 경찰은 군사 장비를 무허가 수출하고 대우조선의 잠수함 기술을 대만의 국영기업인 대만국제조선공사에 넘긴 혐의로 조선기자재 업체 B사 등 법인 3곳과 관계자 3명을 검찰에 송치했다.

당초 B사는 1,500억원 규모의 계약을 맺고 2019년부터 대우조선의 잠수함 사업부에서 일했던 퇴직자 15명을 포함해 총 20여 명을 대만에 파견했다. 경찰은 이들이 대만 남부 가오슝에 있는 대만국제조선공사에서 잠수함 건조 업무에 투입된 것으로 보고 있다. 대우조선 퇴직자들을 대만으로 직접 보내는 방식을 통해 기술을 빼돌렸단 것이다. 특히 이들 중 한 명은 대우조선에서 빼낸 잠수함 유수분리장치, 배터리 고정 장치 등 핵심 부품의 설계 도면 2건을 넘긴 것으로 확인되기도 했다.

해당 건에 대해 당시 대만 측에선 “한국 잠수함 설계 기술과 관련 문서를 제공받지 않았다”며 유감의 뜻을 표명했다. 기술 유출 의혹을 전면 부인한 것이다. 대만국제조선공사는 “대만 잠수함 프로젝트와 한국 장보고급 잠수함 설계 구조는 완전히 다르다”며 “한국의 잠수함 건조 기술은 대만 잠수함 프로젝트에 적용될 수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우리의 잠수함 배수량은 2,000t이고 한국의 배수량은 3,000t이다. 또 방향타 등 잠수함 각종 장비의 구성이 다 다르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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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우조선·산업은행 ‘보안 부실’ 원죄 여전, 한화오션도 피해

현시점에서 대만이 실제 기술 유출을 감행했는지 여부는 명확히 밝혀내기 어렵다. 업계에서도 우선 유출 의혹을 받는 기술이 핵심기술은 아닌 만큼 지켜봐야 한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철저한 보안이 필수적인 방산 기술을 다뤄왔음에도 약점을 거듭 노출한 대우조선과 대주주였던 산업은행에 대해선 거듭 책임론이 불거지는 모양새다.

업계에서도 과거 산업은행이 대우조선을 통한 공적자금 회수에만 골몰한 나머지 방산 기술 관리에 소홀했던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대우조선은 지난 2001년 워크아웃 졸업 이후 산업은행 관리 아래서 20여 년간 공적자금 투입과 출자 전환 등 과정을 거치며 여러 차례 매각이 추진됐으나 모두 무산된 바 있다. 이후 2010년대 중반부터 2020년대 초반까지 조선 경기 악화가 겹치며 임금 동결과 구조조정 등이 이뤄졌고, 이 과정에서 내부 기술 보안 시스템이 망가진 것으로 관계자들은 보고 있다.

특히 전현직 관계자들의 전언에 따르면 당시 대우조선은 협력사에 문서보안장치(DRM)도 하지 않고 기밀을 넘기는 일이 잦았다. 사실상 보안 시스템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였단 것이다. 한 관계자는 “대우조선의 허술한 보안체계는 2020년 북한 소행으로 추정되는 2차 해킹 사고가 터진 뒤에야 수습이 시작됐다”며 “그러다 2022년 12월 대우조선이 한화그룹에 완전히 인수되면서 정상화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결국 한화오션마저 대우조선의 심각한 보안 문제를 채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단 점에서 피해자 입장에 놓여 있는 셈이다.

앞서 언급한 사건들을 포함해 산업은행 관리 시절 대우조선에서 벌어진 잠수함 기술 유출 의심 사고는 총 네 건에 달한다. 대우조선과 산업은행의 원죄가 여전히 한화오션을 옥죄고 있는 셈이다. 해당 사건들에 대한 책임 소재를 분명히 하는 한편 대우조선의 사례를 반면교사 삼아 경영난을 겪는 방산 기업에 대한 정부 차원의 관리 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업계 관계자들을 중심으로 쏟아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