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SMC 66억 달러·삼성 70억 달러” 독소조항에도 타오르는 미국 보조금 경쟁, 반도체 업계에 득일까 독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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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반도체법 두고 경쟁 심화, 미국 내 투자 늘리고 나선 반도체 기업들
초과이익 공유, 회계자료 제출 등 독소조항 만연하지만, 업계는 "어쩔 수 없다"
거듭되는 공장 신설에 '공급과잉' 가능성도, "시장 수요가 공급 감당 못할 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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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SMC가 미국 정부로부터 9조원가량의 보조금을 지원받는다. 미국 내 투자를 확대하면서 거액의 보조금을 획득한 것이다. 삼성전자 등 여타 반도체 기업들도 미 보조금을 얻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각종 독소조항이 포함돼 있는 만큼 미 보조금이 오히려 독이 든 성배로 작용할 우려가 적지 않다는 의견도 있지만, 기업 입장에서 미국 시장 내 영향력을 확대하기 위해선 어쩔 수 없이 보조금을 받아야 한다는 게 대체적인 분위기다. 향후 상황을 따지고 할 것 없이 당장 보조금을 받지 못하면 뒤처질 위기에 처하게 되니 울며 겨자 먹기로라도 보조금을 받아 가는 양상인 셈이다. 다만 이렇다 보니 최근엔 공급과잉 우려도 높아지는 모양새다. 더 많은 보조금을 타내기 위해 여러 기업들이 공장 신설을 타진하고 있는데, 공장 설립이 완료된 이후 폭발적으로 터져 나올 반도체 공급을 시장 수요가 감당할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미국 투자 확대 나선 반도체 기업들, 대가는 막대한 ‘보조금’

8일(현지 시각) 미국 정부가 TSMC에 보조금 66억 달러(약 8조9,463억원)를 지급하고 최대 50억 달러(약 6조7,775억원)의 저금리 대출을 지원한다고 발표했다. TSMC도 이에 맞춰 애리조나주에 세 번째 반도체 제조공장을 추가하기로 했으며, 오는 2030년까지 계획한 투자액도 기존 400억 달러(약 53조원)에서 650억 달러(약 89조원)까지 늘렸다. 미국 내 투자를 확대하는 대가로 거액의 보조금을 거머쥔 셈이다.

TSMC의 첫 번째 애리조나 공장은 2025년부터, 두 번째 공장은 2028년부터 양산에 들어갈 예정이다. 업계에 따르면 두 번째 공장에서는 2나노미터(2㎚) 공정으로 첨단 반도체를 만들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미 상무부는 해당 사업을 통해 6,000개의 직접 제조 일자리와 2만 개의 건설 일자리가 창출될 것으로 예상했으며, TSMC 협력사 14곳도 미국에 공장을 건설하거나 기존 공장을 증설할 예정인 만큼 그 파급 효과는 더욱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이런 가운데 삼성전자도 경쟁적으로 미국 내 투자를 확대하고 나섰다. 앞서 삼성전자는 미국 텍사스주 테일러시에 170억 달러를 투자해 신규 파운드리(반도체 수탁생산) 공장을 세우기 시작했는데, 알려진 바에 따르면 앞으로 삼성전자는 미국 내 투자금을 기존의 두 배 이상인 최소 440억 달러로 증액할 예정이다. 여기에는 텍사스주 테일러의 새 반도체 공장, 패키징 시설, 연구개발(R&D)센터에 더해 알려지지 않은 장소에 대한 투자도 포함될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삼성전자는 미국 정부로부터 최대 70억 달러(약 9조5,000억원) 이상의 보조금을 받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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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소조항 뿌리내린 반도체법, 업계에 ‘독배’ 되나

이처럼 미국이 반도체 보조금을 거듭 뿌리는 건 미중 갈등과 관계가 깊다. 반도체 기업을 자국으로 끌어들임과 동시에 중국으로 빠져나갈 길을 막음으로써 글로벌 경쟁력을 높이고 중국을 견제하겠다는 게 미국의 최종적인 목표다. 실제 미국은 앞서 반도체법 제정을 통해 국내외 반도체 선두기업의 생산 설비를 자국 내로 끌어들여 세계 첨단 반도체의 20%를 생산하겠다는 경제·안보 전략을 설정한 바 있다. 이에 따르면 미국은 향후 5년간 390억 달러와 R&D 비용 132억 달러 등 총 527억 달러를 지원하고 나선다. 가히 천문학적인 물량 공세다.

다만 정책의 의도가 자국우선주의에 기반한 만큼 시장에선 “미국 보조금이 반도체 업계에 오히려 ‘독이 든 성배’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업계에 따르면 미국으로부터 보조금을 지원받기 위해선 향후 10년간 중국과 같은 미국이 지정한 ‘우려국가에 반도체 설비를 지어선 안 된다. 중국 반도체 생산시설에 대한 증설 제한으로 인해 국내 기업이 보유한 기존 중국 공장의 생산성 및 수익성 악화가 초래할 수 있다는 게 시장의 지적이다. 반도체 시설 접근 허용 조건도 주로 지적되는 사항 중 하나다. 골자는 반도체 생산시설에 미 국방부 등 국가안보기관의 접근을 허용해야 한다는 건데, 첨단시설인 반도체 공장에 타인의 출입을 허용하면 기술 및 영업 비밀 유출의 가능성이 높아질 수 있다.

이외에도 초과이익 공유, 상세한 회계자료 제출 등이 독소조항으로 꼽힌다. 미국은 반도체법을 제정할 당시 1억5,000만 달러 이상의 보조금을 받는 반도체 기업이 예상보다 많은 이익을 얻게 될 경우 보조금의 최대 75%를 미국 정부와 공유해야 한다는 요건을 뒀다. 이에 업계에선 “기업 본연의 목표인 이윤 추구를 정부 차원에서 제한하는 꼴인 데다, 나아가선 투자에 대한 경제성 하락으로 기업 수익성에 악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는 목소리가 쏟아져 나온다.

사업의 예상 현금흐름과 수익률 등의 자료 제공 시 기술 및 영업 비밀의 유출 가능성에 대한 우려도 있다. 상세한 회계자료 제출 요건은 재무자료뿐 아니라 주요 생산 제품, 생산량, 상위 10대 고객, 생산 장비, 원료 등 자료까지 제출을 요구한다는 의미다. 이중 반도체 생산 관련 자료, 원료명, 고객정보 등은 기업의 영업 비밀에 해당할 정도로 민감한 정보다.

투자 강행하는 업계, 일각선 ‘공급과잉’ 우려도

미국의 이같은 반도체 보조금 지급 조항에 국내 반도체 업계는 당혹스럽다는 입장이다. 미국에 대규모 생산시설을 구축 중이거나 계획 중인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당연히 보조금 지원 신청이 필요한 상황이지만, 중국 반도체 공장에 신규 투자를 할 수 없게 될 경우 사업 운영에 어려움을 겪게 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국 시장 확대가 시급한 국내 업계 입장에선 여러 조건을 달더라도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보조금을 신청하는 게 최선이라는 게 시장의 대체적인 분위기다.

이에 대해 김형준 차세대지능형반도체사업단 단장은 “우리나라 입장에서는 중국에 투자를 못 하게 되더라도 미국에 보조금을 받고 생산시설을 늘리는 것이 최선일 것”이라며 “삼성전자가 파운드리 공장을 미국에 짓고 있는데, 파운드리는 결국 팹리스를 지원하는 사업이다. 미국에는 파운드리 고객사인 팹리스 기업이 다수 있다. 미국과 가까이 위치하며 친밀하게 공급하는 게 사업적으로 유리하다는 건 자명한 사실”이라고 설명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최근 들어선 업계 내 우려의 방향성도 조금 달라졌다. 이전까지는 미국이 내건 독소조항이 문제였다면, 현시점의 가장 큰 이슈는 다름 아닌 ‘공급과잉’이다. 더 많은 보조금을 얻기 위해 여러 반도체 기업들이 경쟁적으로 공장 신설을 타진하고 있는 만큼, 공장 설립이 완료된 이후 갑작스럽게 터져 나올 반도체 공급을 시장 수요가 제대로 견뎌낼 수 있을지 의문이라는 것이다. 미 반도체법을 기점으로 반도체 업계의 치킨게임이 시작된 셈이다.

실제 반도체 공급과잉은 이미 가시화한 상태다. 글로벌 회계·컨설팅 기업 KPMG가 발표한 ‘2024 글로벌 반도체 산업 전망’ 보고서에 따르면 반도체 산업 리더 10명 중 7명 이상(75%)은 반도체 공급과잉이 이미 존재하거나 향후 4년 내 올 것으로 예상했다. 반면 앞으로 4년 내 수요 과다로 인한 재고 부족 상황이 나타날 것이라고 응답한 비율은 8%에 불과했다.

이런 가운데 최근 시장에선 중국 반도체 기업이 글로벌 시장에 공급과잉을 주도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증권전문지 시킹알파(Seeking Alpha)에 따르면 투자은행 도이체방크는 2024년 반도체산업 전망 보고서를 내고 “중국의 공격적 증설에 따른 공급과잉 우려가 커지고 있다”고 밝혔다.

도이체방크는 SMIC와 화훙반도체 등 중국 기업들이 구형 반도체 장비로 생산할 수 있는 28나노 이상 공정 기반의 반도체 생산을 대폭 늘릴 것으로 예상된다고 전망했다. 미국 정부의 수출통제 강화에 따라 중국이 고성능 반도체 제조에 쓰이는 장비를 확보하기 어려워지자 구형 반도체 생산에 투자를 집중하고 있다는 게 그 근거다. 도이체방크는 중국 반도체기업의 물량공세 전략이 글로벌 반도체 시장에 더욱 치열한 경쟁 환경을 조성하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현재 중국 정부는 400억 달러에 이르는 자금을 들여 18개의 신규 반도체 투자 프로젝트를 지원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이 저가 반도체 시장을 꽉 잡기 시작하면 반도체 업계의 파이는 상당 부분 줄어들 것으로 시장은 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