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일머니’ 구애에도, 규모 작은 국내 VC엔 눈길도 안 주는 사우디 “중요한 건 현지 비즈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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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일머니 관심 갖는 벤처업계, 정작 사우디의 눈길은 '중국'으로
규모 면에서 불리한 한국, "현지 사무소 설립 등 실질적 노력 필요해"
현지 진출 전략 '본격화', 페블스퀘어 등 이미 시동 건 기업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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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처투자업계에서 사우디아라비아 시장에 대한 관심이 늘기 시작했다. 규모가 큰 오일머니를 유치하기 위한 노력이 이어지면서다. 다만 사우디로부터 실질적인 투자를 받기까진 난관의 연속이다. 상대적으로 투자 규모가 작은 한국은 사우디에 있어 매력적인 미끼가 아닌 까닭이다. 이에 시장에선 사우디 현지에 직접 사무소를 차리는 등 노력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차별적인 비즈니스를 선보임으로써 사우디의 이목을 끌 필요가 있다는 의견이다.

사우디 문 두드리는 벤처업계, 하지만

12일 벤처투자업계에 따르면 최근 사우디의 문을 두드리는 국내 벤처캐피탈(VC), 액셀러레이터(AC) 등 벤처투자사들이 부쩍 늘었다. AC 씨엔티테크는 최근 사우디 공립 공과대학 카우스트(KAUST), 사우디 왕립과학기술원인 칵스트(KACST)의 산하기관 더가라지와 스타트업 보육을 위한 네트워크를 구축했다. 이외 빅뱅엔젤스와 넥스트웨이브벤처파트너스 등 투자사들도 사우디 벤처투자 생태계와의 네트워크 강화에 나섰다.

정부 기관도 적극적이다. 중소벤처기업부는 지난해 3월 국내 스타트업들의 사우디 진출을 위해 리야드에 글로벌비즈니스센터(GBC)를 개소했다. 모태펀드 운용사인 한국벤처투자는 사우디벤처캐피탈(SVC)과 손잡고 1억6,000만 달러(약 2,102억원)가량의 공동펀드를 조성해 투자를 시작하기도 했다.

다만 사우디에서 실질적인 벤처 성과를 얻기 위해선 여전히 장애물이 많다. 가장 큰 문제로 꼽히는 건 단연 투자 사이즈다. 중기부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건당 벤처투자액은 113만 달러(약 15억원)으로, 사우디의 건당 1,106만 달러(약 145억원)의 1/10 수준이다. 사우디의 경우 1억 달러(약 1,300억원) 이상 메가딜을 제외한 벤처투자 평균 투자액마저 431만 달러(약 57억원)로 높은 편이다. 한 벤처투자 관계자는 “사우디는 펀드 규모 자체가 크다 보니 1,000억원 이상의 큰 딜에 관심이 많은 편”이라며 “그러다 보니 규모 있게 펀드를 만들고 투자 금액도 큰 사모펀드(PE) 정도만 사우디에서 출자를 받는 모양새가 이어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렇다 보니 한국에선 그나마 대형 VC만이 오일머니를 받아 드는 정도다. 당장 지난 2022년 말께 한국 VC 투자를 타진한 사우디 정부투자기관 리야드밸리컴퍼니의 시선도 대형 VC 주위에 모였다. 리야드와 만난 VC 관계자는 “리야드는 초기보단 IPO를 앞둔 후기 투자 유치 기업을 더 선호했고, 또 소형보단 대형 벤처펀드를 더 선호하는 경향이 있었다”고 당시 분위기를 전했다.

결국 사우디는 최근 들어선 규모 면에서 밀리는 한국을 벗어나 규모가 있는 중국을 향하는 추세다. 사우디와 중국은 지난해 11월 550억 위안(약 9조2,300억원) 규모로 양국 간 첫 스와프 협정에 서명한 바 있으며, 지난 2월엔 사우디 국부펀드가 지원하는 중국 VC가 1조3,300억원 규모의 중동 스타트업 투자 펀드를 조성하겠다 나서기도 했다. 사우디와 중국 사이 밀월 관계가 본격적으로 가시화하기 시작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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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일머니 유치, 첫걸음은 ‘현지 사무소’ 설립”

이에 시장 일각에선 “사우디의 오일머니를 유치하기 위해선 제품의 시장적합성(Product Market Fit, PMF)을 갖춘 현지 비즈니스 모델이 필요하다”는 분석이 나온다. 사우디 현지 사무소를 설립해 ‘사우디 벤처 생태계 활성화에 기업이 어떤 기여를 하고 있는가’를 보다 명확히 보여줄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구형철 한국벤처투자 글로벌성장본부장은 “사우디 국부펀드(PIF) 등 주요 투자기관은 30분 단위로 미팅을 진행해야 할 정도로 전 세계에서 투자 요청이 쇄도한다”며 “여기서 눈에 띄기 위해선 보다 차별화된 전략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결국 현지 사무소를 차리고, 실질적으로 비즈니스를 하는 게 중요하다”고도 덧붙였다.

국내 기업들의 사우디 현지 진출 전략은 이미 시동이 걸린 상태다. 페블스퀘어가 대표적이다. 국내 AI 반도체 팹리스 스타트업 페블스퀘어는 이달 초 조인트벤처(JV) ‘클러스터 AI랩스’를 설치하고 타티마캐피탈(Tatimah Capital) 등 현지 VC 두 곳과 7,500만 달러(약 1,000억원)가량의 투자 유치 계약을 체결했다.

특히 이번 투자 계약엔 칼리드 알팔레 사우디 투자부(MISA) 장관까지 참여하며 큰 관심을 보였다. 업계 관계자는 “타티마캐피탈 등은 현지 민간자본을 운용하는 VC지만, 사우디에서는 투자부가 투자 대상, 규모 등을 검토·승인한다”며 “알팔레 장관이 계약식에 직접 참여한 것은 정부 차원에서도 거는 기대가 크다는 의미”라고 전했다. 이보다 앞서선 지난해 11월 호텔 숙박 디지털전환(DX) 스타트업 H20호스피탈리티가 리야드에 현지 법인까지 세우며 사우디 진출을 본격화한 바도 있다. 오일머니 유치가 ‘헛물’에 그치지 않도록 다분히 노력하는 기업들의 모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