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지펀드가 벤처투자시장을 떠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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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팬데믹 2년간 헤지펀드의 벤처투자시장 진출 증가
유례없는 고금리에 투자시장마저 위축되자 철수전략 모색
상장주식, 신용거래, 공모펀드 등 자산군으로 전환 가능성도

코로나19 팬데믹 당시 자금력을 갖춘 헤지펀드들이 벤처투자시장에 진출하면서 테크 스타트업에 대한 투자가 활발히 이뤄졌다. 하지만 최근 투자심리가 위축되자 헤지펀드들이 벤처투자시장에서 철수하고 있다. 실제 벤처투자시장 관계자에 따르면 대부분의 헤지펀드들이 세컨더리 투자자들에게 스타트업을 매각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타이거 글로벌 매니지먼트(Tiger Global Management)도 올해 초부터 자산 매각을 추진하고 있으며 다른 대형 투자회사 두 곳도 컨설턴트와 고문을 고용해 세컨더리 투자자에게 자산을 매각하기 위해 접촉하고 있다.

벤처투자시장에서 헤지펀드 대부분 혼합펀드로 운용

타이거 글로벌이나 코투(Coatue) 등 몇몇 투자회사들은 벤처투자시장에 뛰어들면서 투자사들이 전통적으로 사용해 온 10년 만기 상환 방식으로 스타트업에 자금을 지원했다. 하지만 문제는 대부분의 벤처캐피탈(VC)들은 공모펀드와 사모펀드가 혼합된 대형 펀드를 운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벤처투자시장에서 비교적 엄격한 규제를 적용받는 공모펀드와 자유롭게 운영이 가능한 사모펀드를 분리해 운용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만큼, 헤지펀드가 혼합펀드로 운영될 경우 LP(출자자)들은 분기 혹은 연 단위로 자본을 인출할 수 있기 때문에 유동성에 대한 압박이 있다.

실제 이러한 상황이 현재 VC 업계에서 벌어지고 있다. 최근 하락장이 이어지면서 헤지펀드 매니저들은 VC에 대한 투자 전략을 조정해야 한다는 압력을 받고 있다. 하지만 언제든지 매각할 수 있는 상장주식과 달리 헤지펀드는 사모투자를 빠르게 회수할 수 있는 메커니즘을 갖고 있지 않다. 이 때문에 투자자가 투자금 환매를 요청하면 사모자산의 비중이 높은 기업들은 현금을 확보하기 위해 안간힘을 쓸 수밖에 없다. 이 경우 세컨더리 투자자들에게 주식을 매각해 어느 정도 자금을 확보할 수 있겠지만 상대적으로 미성숙한 세컨더리 시장에서 적정 가격에 지분을 처분하는 것이 쉽지만은 않다.

이러한 상황을 두고 일각에서는 헤지펀드를 사실상 부실 판매자라고 지적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다만 아직 VC들이 보유한 사모자산을 큰 폭으로 할인해 세컨더리 시장에 처분할 만큼 절박한 상황은 아니다. 다소 모순되게 보일 수 있지만 일부 헤지펀드들은 그간의 금융공학의 노하우를 활용해 유동성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았다. 추후 세컨더리 매각에 대비해 대출을 받거나 비상장기업의 상환 규칙을 변경해 유동성이 떨어지는 포트폴리오의 락업(lock-up) 기간을 늘리는 방식이다. 하지만 이러한 방법은 시간을 벌 순 있어도 완전한 해결책은 아니다.

벤처투자의 유동성 문제, 헤지펀드 투자 감소로 이어져

다만 현재로서는 헤지펀드의 벤처투자시장 진출이 지난 1998년 러시아 모라토리엄으로 파산한 롱텀 캐피털 매니지먼트(Long-Term Capital Management, LTCM) 사태와 같은 상황으로 이어질 가능성은 낮다. 1990년대 고수익으로 이름을 날렸던 LTCM은 한 상품에 투자한 뒤 이를 담보로 서너 차례 파생금융상품을 굴려 투자 규모를 키웠고 이익이 발생하면 새로 투자하기에 바빴던 탓에 파산 당시 현금을 거의 보유하지 않았다.

하지만 VC 생태계에서 유동성의 문제는 항상 경계해야 한다.

글로벌 투자 전문 연구기관 피치북의 수석 애널리스트인 카일 스탠포드(Kyle Stanford)는 “2020~2021년 동안 대형 투자회사들이 후기 스타트업에 엄청난 양의 자본을 쏟아 부었다”며 “헤지펀드를 포함한 크로스오버 투자자(자산운용사, 뮤추얼펀드, 헤지펀드 등)들의 참여 없이는 대형 투자회사들이 생존을 위한 충분한 자본을 조달하는 데 어려움을 겪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VC activity  by deal count
헤지펀드별 VC거래 건수(2023년 6월 기준), 주:타이거글로벌(네이비), 코트(민트), D1(오렌지), 드래고니아(옐로우)/출처=PitchBook data

현재 대부분의 헤지펀드들은 위험한 베팅으로 유동성의 문제를 키우기보다는 손실을 보더라도 사모자산을 매각해 VC 시장에서 철수하는 전략을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 피치북에 따르면 VC 운용사들의 투자는 이미 수년 만에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다. 지난해 타이거, D1 캐피털 파트너스, 코튜, 드래곤니어 인베스트먼트 그룹 등 4대 헤지펀드의 VC 거래 건수는 총 436건에 불과했다. 올해 벤처투자시장의 총 거래건수도 전년 대비 83% 감소한 76건으로 집계됐다.

일반적으로 VC들은 자신들이 투자한 스타트업에 대해 ‘죽음이 우리를 갈라놓을 때까지’ 함께 한다는 기조를 가지고 있지만 이와 달리 헤지펀드는 투자에 있어 기민하고 무자비한 경향이 있다. 상황과 전략에 맞는 전문가를 신속히 고용했다가도 추후 그 방식이 더 이상 메리트가 없다고 판단되면 언제든 해당 전문가를 해고하기도 한다. 수십년 만에 금리가 최고 수준에 이른 지금, 투자자들은 새로운 투자를 할 수 있는 유동성을 확보한다면 벤처가 아닌 상장주식이나 신용거래 등에 집중할 가능성이 높다. 그동안 테크기업을 선호해온 헤지펀드들도 락업기간이 짧은 자산군에 투자하거나 향후 IPO(기업공개)를 통해 투자 수익을 노리는 방향으로 전환할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상황을 고려할 때 내년에도 금리가 하락하지 않는 한 헤지펀드의 벤처투자는 계속 감소할 것으로 전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