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료 OTT 출시 나선 英, “방송 시장 재편의 단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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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법안 제정, '보수적'이던 英도 변화 나섰다
"OTT 출시, 시대 변화에 발맞춰 '확장성' 노리는 듯"
절벽 끝에 몰린 英 공영방송, "결국 흐름 따를 수밖에"
사진=에브리원TV 홈페이지 캡처

BBC, ITV, 채널4, 채널5 등 영국의 4대 공영방송사들이 내년 무료 OTT ‘프릴리(Freely)’ 출시를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영국의 미디어 법안(Media Bill) 제정에 따라 변화를 준비하기 시작한 것이다. 일각에선 보수적으로 움직이던 영국에마저 변화의 바람이 불기 시작한 것을 두고 “시장의 중심이 OTT 쪽으로 재편되고 있다”는 시각을 내비치기도 한다.

英 공영방송사, ‘프릴리’ 출시한다

4대 공영방송사 합작회사인 ‘에브리원TV’는 지난 9월 프릴리의 출시 소식을 알린 바 있다. 당시 에브리원TV CEO인 조나단 톰슨(Jonathan Thompson)은 “영국 시청자들이 점점 많은 콘텐츠를 온라인으로 시청하지만 여전히 함께 시청하는 라이브TV 경험을 원하고 있다”며 “모든 시청자들이 영국 콘텐츠를 중심에 두고 시청자 요구와 선호를 반영하는 라이브TV를 무료로 경험할 수 있도록 하고자 한다”고 프릴리 구상 배경을 설명했다. 팀 데이비(Tim Davie) BBC 사무총장은 “공영방송 보편성을 미래에도 유지하는 것은 영국과 모든 공영방송사들에게 가장 중요한 일”이라며 “공영방송 4사가 협력해 디지털 시대에 모든 시청자들이 소외되지 않도록 할 수 있는 방안과 시청자 가치를 제공하게 되어 기쁘다”고 전했다.

프릴리의 출시 배경으로는 영국의 미디어 법안이 꼽힌다. 해당 법안은 디지털 플랫폼을 통한 공영방송 콘텐츠 제공을 촉진하고 영국 시청자가 온라인에서 TV를 시청하는 다양한 플랫폼에서 공영방송 콘텐츠에 쉽게 접근할 수 있어야 한다는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에브리원TV가 프릴리 출시를 발표하며 “미래 공영방송 서비스(PSB) 가용성을 보장하고 미디어 법안 초안에 명시된 주문형 및 스트리밍 서비스 확산 등을 반영한 새로운 조항들을 보완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언급한 건 해당 법안과 관련이 깊은 것으로 분석된다. BBC에 따르면 영국 전체 가구의 15%에 달하는 400만 가구가 ‘인터넷 온리’(Internet-Only)를 이용하고 있는 것으로 추산된다. 전통적인 개념의 TV를 넘어 공영방송에 대한 접근성을 확대하고 보편적 서비스가 가능한 방안을 모색하는 게 불가피한 상황이라는 의미다. 이에 에브리원TV는 “프릴리를 차세대 스마트TV에 내장해 공영방송 콘텐츠 및 무료 방송 채널을 제공할 것”이라고 밝혔다. 시장 접근성을 높이겠단 취지다.

다만 일각에선 프릴리가 공영방송 시청 접근성이 얼마나 영향을 미칠 수 있을지는 장담하기 어렵다는 시각이 나온다. 이미 아이플레이어(iPlayer), ITVX, All4, My5 등의 애플리케이션으로 영국 공영방송 콘텐츠를 볼 수 있고, BBC 한 곳만 해도 기존 아이플레이어·브릿박스에 프릴리까지 추가되면 총 세 개의 공영방송 스트리밍 서비스를 제공하게 되는 셈이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KBS공영미디어연구소의 주대우 영국통신원은 “프릴리는 단순히 개별적으로 제공되던 공영방송 콘텐츠를 하나의 인터페이스를 통해 제공하는 서비스일 뿐”이라며 “오히려 영국 공영방송사들이 너무 많은 스트리밍 서비스를 런칭해 자기잠식 효과를 야기하고 있다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고 전했다. 이어 “개별 방송사들이 이에 대한 이해타산을 따지기 시작하면 프릴리에 적극적으로 콘텐츠를 제공하기보다 실시간 채널 등 필수적으로 합의된 콘텐츠만 제공하게 될 가능성도 크다”며 “레드오션이 된 영국 스트리밍 시장에 성공적으로 안착하기 위해서는 공영방송사 전체 콘텐츠를 모두 볼 수 있는 범 영국 공영방송 콘텐츠의 요람이 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사진=BBC 아이플레이어 홈페이지

‘변화’ 시사한 英, “시대의 흐름 뒤따를 뿐”

단, 이 같은 점을 감안하더라도 이번 프릴리의 발표가 영국 공영방송사들의 ‘변화’를 시사하는 바임을 부정할 수는 없다는 의견도 나온다. IT 컨설팅 및 조사분석 업체 애틀러스 리서치앤컨설팅 관계자는 “어찌 됐든 프릴리의 발표는 영국 공영방송사들이 무료 디지털 지상파 방송 제공과 보편적 시청권 보장이라는 의무 이행 방안을 모색한 결과물”이라며 “OTT 시대 변화에 발맞춰 지상파와 위성방송 기반에서 IP 스트리밍 방식으로 기반을 확장시키려 한다는 점은 상당히 긍정적”이라고 설명했다. “가장 모범적 공영방송이라는 영국 공영방송사들이 이제는 OTT가 시청자들이 일상적으로 이용하는 주류 방송 매체가 된 것을 인정하고, OTT와 IP 스트리밍 플랫폼을 통한 보편적 시청권과 공적 의무 이행에 나선 것이라는 점에서 전 세계 방송∙미디어 산업의 변화에 던지는 시사점이 상당히 크다고 할 수 있다”고 거듭 의미를 짚기도 했다.

국가 차원의 관리가 이뤄지는 영국 공영방송이 본격적인 OTT 진입을 시도한다는 점으로 말미암아, 시장의 중심이 OTT 쪽으로 더욱 기울고 있다는 분석을 제기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당초 영국 정부는 OTT에 대해 상당히 보수적인 입장을 유지하고 있었다. 지난해 7월엔 “유사 TV 콘텐츠를 대상으로 영국 방송법에 준하는 규제를 적용할 수 있도록 ‘VOD법’을 수립·시행할 것”이라며 넷플릭스·애플TV 등 글로벌 OTT에 대한 규제를 추진한다는 계획을 세우기도 했다. 그러나 당시에도 영국 공영방송은 이미 절벽 끝에 몰린 입장이었다. 영국의 통신규제기관 오프콤의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BBC가 수익모델을 수신료에서 가입형·광고형 모델로 변경할 시 10억 파운드(약 1조5,694억원)의 수익 하락을 면치 못하게 된다. 이미 방송 업계의 핵심이 ‘클라우드형 비디오 콘텐츠’로 넘어간 탓이다. 결국 시대의 흐름은 이미 차세대 시스템으로 넘어갔고, 영국 공영방송도 이에 뒤따르고 있을 뿐이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