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VC 세컨더리 투자 시장 강세, 원인은 ‘경기 침체’

유럽 세컨더리 투자 시장 거래 건수 급증 EXIT 감소로 인한 유동성 옵션으로 각광 VC, 스타트업 임직원 보유 지분 매물 쏟아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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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유럽 지역은 벤처캐피탈(VC) 시장의 유동성 감소로 인해 세컨더리 투자 시장이 활황을 띄고 있다. 유럽 세컨터리 투자 시장은 미국과 달리 시장 규모가 작고 조건이 복잡해 세컨더리 투자 거래에 소극적인 경향이 있었지만, 최근 투자 거래 건수는 증가세를 나타냈다. 투자 전문가들은 밸류에이션 평가에 대한 시장 이슈는 있으나, 세컨더리 투자 활성화는 좋은 징조라고 진단했다.

유럽 세컨더리 거래 건수 20% 증가

투자 시장의 침체에도 불구하고 올해 유럽 지역 세컨더리 투자 거래가 지난해 대비 약 20%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총투자 거래 금액은 약 1조800억 유로(약 1,535조원)를 돌파했다. 투자 전문가들은 VC 펀드와 벤처기업 임직원이 보유한 기업 주식의 유동성 옵션이 감소한 데 따른 영향으로 분석했다. VC 펀드가 초기 투자 라운드에서 확보한 기업 주식과 벤처기업 임직원들이 스톡옵션으로 지급받은 주식이 매물로 나오기 시작하면서 거래가 증가했다는 설명이다.

유럽 투자 기업 피닉스카운트그룹(Phoenix Court Group) 제너럴 파트너 줄리안 로우(Julian Rowe)는 “최근 유럽 지역 벤처캐피탈과 스타트업 임직원들의 인식에 많은 변화가 있었다”며 “기업 지분을 대하는 태도가 변하면서 세컨더리 투자 시장의 거래가 크게 증가하는 추세”라고 전했다.

거래 증가 요인은?

투자 전문가들은 엑시트(투자금회수)가 어려워진 환경을 유럽 세컨더리 투자 시장 거래 증가의 요인으로 꼽았다. 투자 전문 싱크탱크 피치북이 발표한 올해 2분기 유럽 벤처 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유럽 지역에서 443건의 엑시트가 발생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동기간 발생한 612건에 비해 약 27% 감소한 수치다.

유럽 지역 벤처캐피탈 EXIT 현황(2023년은 6.15. 기준), 주: EXIT 가치(네이비), EXIT 건수(민트), 예상 EXIT 건수(옐로우)/출처=Pitchbook

엑시트 건수가 크게 감소함에 따라 펀드 상환 만기에 도달한 VC 매니저들은 LP에 대한 자금 상환 압박에 직면했다. 이와 같은 상황에 따라 유럽 VC 업계는 엑시트가 아닌 세컨더리 투자 시장을 통한 지분 매각을 통해 기존 투자 포트폴리오에 유동성을 공급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와 관련해 로우는 벤처기업의 창업자나 임직원이 보유한 기업 지분도 유럽 세컨더리 투자 시장의 주요 공급원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세컨더리 투자 시장을 활용하면 스톡옵션 지분을 빨리 현금화할 수 있기 때문에 재정적 스트레스를 감소시켜 임직원 근속 유지에 도움을 줄 수 있다”고 덧붙였다. 벤처기업의 창업자나 임직원의 경우 보유 재산의 대부분이 기업 지분에 묶여 있는 경우가 많고, 현재로선 세컨더리 시장을 제외하곤 마땅한 유동성 옵션이 없기 때문에 적극적인 매도에 나서는 것으로 확인됐다.

유럽 소재 VC 옥토퍼스벤처스(Octopus Ventures) CEO 대니 비다르(Dany Bidar)는 유럽은 미국에 비해 초기 투자 라운드가 적기 때문에 세컨더리 투자 시장이 주목받을 수 있다고 설명한다. 비다르는 “성장형 기업을 찾는 사모투자 기업들이 가격 변동성을 활용한 합리적인 금액으로 기술 기업에 투자하기 위해 세컨더리 시장에 방문하고 있다”며 “초기 라운드에 투자한 투자자들도 펀드에서 설정한 목표 지분율을 맞추기 위해 세컨더리 투자 시장을 활용하기도 한다”고 밝혔다.

불명확한 가격 책정은 세컨더리 시장의 불안 요소

반면 일부 투자자들은 유럽 VC 산업의 세컨더리 투자 활동이 증가하고 있지만 불명확한 거래 가격 책정으로 투자 활동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입을 모았다. 그도 그럴 것이 세컨더리 투자 시장의 경우 구매자가 조기 유동성을 공급하기 때문에 할인된 가격으로 주식을 구매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판매자들은 기업 밸류에이션이 하락했음에도 불구하고 세컨더리 시장에서 거래된 금액이 향후 투자 라운드에 가치 산정 기준이 될 것이란 불안감으로 인해 가격 할인을 망설여 원활한 가격 협상의 걸림돌이 되고 있다.

세컨더리 전문 투자 기업 시에나세컨더리펀드(Siena Secondary Fund) 제너럴 파트너 레인 탐(Rain Tamm)은 “경기 침체로 인해 구매자는 더 큰 폭의 할인을 원하지만, 판매자의 가치 기준은 여전히 호황기였던 2021년 밸류에이션에 고정돼 있다”며 “유럽 지역의 초기 투자 라운드가 적다 보니 정확한 기업가치 평가가 이뤄지지 않은 기업도 많아 구매자와 판매자 간의 가격 합의가 쉽지 않다”고 전했다.

비다르는 “현재 프리미엄 가격으로 거래되는 좋은 실적의 기업과 그렇지 않은 기업 간의 거래 건수가 크게 차이 난다”며 “2021년 벤처기업에 대한 밸류에이션이 크게 상승했을 때 높은 가치를 평가받은 기업은 다운 라운드를 경험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해당 기업들을 중심으로 세컨더리 거래 건수가 크게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전망했다.

투자 전문가들은 벤처기업의 엑시트 환경이 어둡기 때문에 세컨더리 거래 건수가 더 증가할 것으로 예상한다. 로우는 “건강하고 단단한 세컨더리 시장이 있다는 건 투자 시장 전체를 봤을 때 긍정적인 현상”이라며 “스타트업이 시드 투자를 받아 IPO(기업공개)까지 도달하는 데 10년 이상의 시간이 소요될 수 있는 만큼, 그 과정에서 세컨더리 시장 같은 유동성 옵션이 있다는 것은 모두에게 좋은 소식”이라고 시장 성장을 지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