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페이’ 견제 나선 美 대형은행들, 공동 모바일 지갑 출시 계획 발표

‘JP모건, 뱅크오브아메리카, 웰스파고’ 등 대형은행 내년 중 모바일 지갑 출시 과거에도 ‘체이스 페이’ 등 자체 서비스 통해 애플 견제 나선 적 있어 반면 ‘골드만삭스’ 등 일부 금융사는 애플 페이 성장성에 애플과 협력 지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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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플페이/사진=애플

미국 대형은행들이 애플 등 빅테크로부터 자신들의 영역을 지키기 위한 협력에 나선다. 은행들은 내년 중 1억5천만 고객의 신용카드 및 직불카드 계좌와 직접 연결되는 모바일 지갑 서비스를 공동으로 출시할 것으로 보인다. 과거에도 유사한 전자결제 서비스를 출시한 적 있지만, 경쟁사가 함께 사용할 수 있는 통합 서비스를 출시하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일각에선 은행업계가 앞으로도 자체 결제 서비스를 통해 ‘애플 은행’으로 진화 중인 애플을 견제하기 위한 전략을 꾸준히 내놓을 거란 전망도 나온다.

빅테크 견제 위해 똘똘 뭉친 대형은행들

18일(현지 시간)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JP모건, 뱅크오브아메리카, 웰스파고 등 미국 대형은행은 내년 중으로 모바일 지갑 ‘페이즈(Paze)’ 출시할 계획이다. 페이즈는 결제 앱 서비스 젤레(Zelle)를 운영하는 은행 컨소시엄 그룹인 얼리워닝서비스에서 운영을 맡을 예정이다.

대형은행이 협력해 간편결제 서비스를 도입하게 된 이유는 은행의 영역으로 여겨졌던 금융서비스 결제 부문으로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는 빅테크 기업들을 견제하기 위해서다. FT는 “페이즈는 수백만 명의 사용자에게 뱅킹 서비스를 제공하려는 애플이나 구글, 그리고 최근 금융산업 진출을 선언한 X(옛 트위터)를 견제하기 위한 대형은행 간 파트너십”이라고 평가했다.

빅테크 가운데 금융서비스 부문의 급격한 변화를 이끈 건 단연 ‘애플페이’다. 시장조사기관 페이먼트(PYMNTS)에 따르면 미국 소매업체의 90%가 애플페이 결제를 도입하는 추세다. 이에 따라 5년 전만 해도 사용자가 6천만 명에 불과했던 애플페이의 현재 사용자 수는 5억 명 이상으로 급증했다.

은행들은 2017년 출시 이후 최대 P2P(개인 간 거래) 결제 앱으로 급성장한 젤레와 같은 성공이 재현되길 바라고 있다. 다만 은행 간 파트너십을 바라보는 규제당국의 시선이 곱지만은 않다. FT에 따르면 최근 은행과 핀테크의 파트너십에 대한 심사가 규제당국의 심사가 강화됐다. 특히 당국은 두 업계가 협력함으로써 은행 계좌의 소유주가 불분명해지는 문제를 통해 고객이 피해를 볼 가능성을 우려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체이스페이등 과거 전자결제 서비스 도입했던 대형은행들

금융 시장에 진출하는 빅테크 기업들을 견제하기 위한 은행들의 시도는 과거에도 여러 차례 있었다. 이전에도 대형은행들은 자체적으로 결제서비스를 출시하거나 핀테크 업체들과 파트너십을 맺으며 디지털 뱅킹 서비스를 도입했다.

특히 JP모건은 애플과 구글 등의 전자결제 서비스 진출로 입지가 좁아질 것을 우려해 2016년 은행 업계에서 가장 먼저 체이스페이(Chase Pay)라는 전자결제 서비스를 출시한 바 있다. 다만 그 성과는 그리 좋지 못했다. 월마트 등 대형 유통점들과 파트너십을 맺으며 체이스페이 고객 수 확보에 나섰지만 대중적으로 널리 사용되지 못했고 결국 2021년 3월 말 서비스를 중단했다.

이 밖에도 최근 PYMNTS가 발표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은행과 신용 조합의 65%가 지난 3년 동안 핀테크와 최소 한 번 이상 파트너십을 맺은 것으로 나타났다. 실제로 씨티 그룹은 아마존과 할부 결제 서비스에 대한 파트너십을 맺었으며, 영국의 로이드 뱅크나 프랑스 모바일 기업 오렌지의 은행 사업부도 최근 핀테크 기업과 온라인 뱅킹 플랫폼을 강화하기 위한 파트너십을 체결한 바 있다.

런던의 핀테크 기업 유랜드(YouLend)의 제이콥 페틱 최고 고객 책임자(CCO)는 “우리와 제휴를 원하는 은행들이 많이 있다”면서 “아직은 주로 유럽의 중견 은행들이 관심을 보이고 있지만, 앞으로 점점 더 많은 대형은행이 우리를 비롯한 다른 핀테크 업체에 대출 업무 등의 뱅킹 서비스를 아웃소싱할 것”이라고 전했다.

사진=JP모건 체이스

골드만삭스 협력의 배경, ‘애플페이’

은행들이 애플페이에 맞서기 위한 반격에 나선 가운데 오히려 애플과 협력하는 금융사도 있다. 미국의 투자은행 골드만삭스는 다른 은행들과 달리 애플과 디지털 금융 협력을 확장하고 있다. 골드만삭스는 2019년 애플과 손잡고 신용카드 ‘애플카드’를 선보인 데 이어 지난 5월에는 선구매 후지불 금융서비스 ‘애플페이 레이터'(Apple Pay Later) 출시를 통해 애플과 금융서비스 파트너십을 더욱 공고히 했다.

골드만삭스가 애플과의 협력을 이어온 이유는 타 대형은행 대비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은 소비자 금융 부문을 강화하기 위해서다. 골드만삭스는 2016년 이후 소비자 금융 부문을 강화하기 위한 일련의 노력에도 2020년부터 올해 상반기까지 소비자금융 부문에서만 30억 달러(약 4조원) 규모의 적자를 기록했다. 그러나 올해 4월 애플과 손잡고 출시한 고금리 저축상품을 통해 출시 3개월 만에 100억 달러(약 13조원) 이상의 잔고를 쌓는 데 성공하며 고객층을 확대하고 있다.

애플이 ‘애플은행’으로 진화하며 남다르게 성장 중인 점도 골드만삭스가 파트너십을 이어가는 이유다. 현재 애플의 금융서비스는 총매출의 20% 이상을 금융서비스로 대체하고 있다. 시장분석업체인 모펫네이던슨의 관계자는 “지난해 애플페이는 미국 전역에서 6천억 달러(약 798조원) 이상의 결제를 처리한 것으로 추정된다”면서 “애플은 풍부한 사용층을 기반으로 결제 분야에서 가장 강력한 빅테크 기업으로 부상했다”고 평가했다.

애플페이의 흥행은 국내에서도 두드러진다. 지난달 17일 금융권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전업 카드사 가운데 애플페이와 파트너십을 맺은 현대카드만이 유일하게 순이익 성장을 이뤄냈다. 현대카드의 올해 상반기 순이익은 1,572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1% 상승에 그쳤지만, 올해 대다수 카드사가 두 자릿수 역성장한 것에 비하면 호실적을 기록한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