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대면 진료 ‘잡음’, “범위 확대해야” vs “책임 소재 불분명”

비대면 진료 시범 사업 부정적 의견 ↑, ‘초진 허용’이 쟁점 ‘의사에 책임 물어선 안 된다’는 의료계 가이드라인, 하지만? 불투명한 책임 소재, 국민적 수용성 낮을 수밖에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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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대면 진료 시범 사업에 대한 대국민 인식조사 결과/출처=코리아스타트업포럼

지난 3개월간 실시된 비대면 진료 시범 사업에 대해 의사·약사들은 부정적인 의견을 다수 갖고 있다는 점이 설문조사 결과를 통해 확인됐다. 비대면 진료의 범위를 더욱 늘려 편의성을 제고해야 한다는 취지인데, 비대면 진료 확대 시 오진율이 증가할 수 있다는 우려가 큰 만큼 비대면 진료 확대는 아직 논의가 더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비대면 진료 시범 사업 곧 종료, “기준 완화 필요해”

코리아스타트업포럼과 국회 스타트업 연구모임 유니콘팜이 한국리서치에 의뢰해 진행한 ‘비대면 진료 시범 사업에 대한 대국민 인식 조사’ 결과가 23일 발표됐다. 이번 조사는 ‘비대면 진료 시범 사업’ 계도 기간이 8월 말 종료됨에 따라 지난 3개월간 진행된 비대면 진료 시범 사업에 대한 국민 인식 및 제도 개선을 모색하기 위해 실시됐다. 조사는 앱이나 전화 등으로 비대면 진료를 경험한 환자 1,000명, 의사와 약사 각 100명을 대상으로 진행됐으며, 비대면 진료 시범 사업 인지도 및 세부 시행 기준 평가를 포함해 비대면 진료 제도화 의견을 확인할 수 있는 내용으로 구성됐다.

우선 비대면 진료 시범 사업에 대한 평가를 묻는 질문에 의사 83%, 약사 61%가 부정적으로 평가했다. 이들은 시범 사업을 현행대로 유지할 경우 환자 감소 및 업무 부담 등 각종 문제점으로 인한 제도 참여 중단 또는 축소를 전망했다. 비대면 진료를 경험한 환자 중 81.1%는 시범 사업을 전혀 모르거나 대략적인 내용만 들어본 정도라고 답했다. 구체적인 제도 설명 이후에는 사실상 이용 불가능한 제도라고 평가했다.

의사의 81%는 비대면 진료 시행 기준을 완화해 초진을 포함해 폭넓게 허용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약사의 71%, 환자의 49.4%도 시행 기준 완화가 필요하다고 답했다. 환자의 77.2%는 비대면 진료를 ‘새로운 증상이나 질환에 대한 진단이 아닌 간단한 처방을 통한 약 복용’ 목적으로 이용하고 있다고 응답했다. 의사의 83%, 약사의 76%, 환자의 55%는 추가 개선사항으로 ‘병원 선택에 있어 환자들의 자율성’을 요구했다.

비대면 진료 찬반 논의 ‘치열’

코로나19 팬데믹 당시 한시적으로 허용된 비대면 진료는 지난 5월 말 코로나19 위기경보 하향에 따라 법적 근거를 상실했다. 정부는 지난 6월부터 시범 사업 형태로 비대면 진료를 허용했으나 이달 말이면 계도 기간이 끝난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제1법안심사소위원회는 24일 비대면 진료 법제화 등 내용을 포함한 의료법 개정안을 심의하는데, 정부안은 시범 사업 내용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의원급에서 ‘재진 환자’를 주 대상으로 할 것 △섬·벽지, 감염병 환자, 거동 불편자 등만 예외적으로 초진 비대면 진료를 허용할 것 △약은 직접 수령을 원칙으로 할 것 등 제한점이 유지된다는 이야기다.

비대면 진료 시범 사업 확대에 대해선 찬반 논의가 뜨겁다. 비대면 진료 반대 측에선 ‘안전은 불편함을 수반한다’는 논리를, 찬성 측에선 ‘어디까지나 대면 진료 보완재로 정착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을 펼치는 모양새다. 다만 직접적인 토론장에선 비대면 진료 반대 측에 좀 더 힘이 실리는 모습이 포착된다. 비대면 진료 확대 시 오진 우려가 높다는 점, 오진에 따라 환자의 생명이 위급해질 수 있다는 점, 환자 사망 시 책임 소재를 어떻게 할 것이냐는 점 등 각종 문제점이 뒤따라오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이영화 대한개원의협의회 의무부회장은 “비대면 진료든 원격 모니터링이든 환자에게 도움이 된다면 의사는 반대하지 않는다”라면서도 “의사는 환자의 안전을 책임져야 할 의무가 있고, 그 책임은 1차적으로 의사가 지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보수적으로 접근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진료 정확도 설문조사 결과/출처=:British Society for Rheumatology

비대면 진료 정확도↓, 책임 소재는 누구에게?

실제 캠브리지대학 연구팀의 설문조사 결과 의사의 93%와 환자의 86%가 비대면 진료의 정확도가 대면진료에 비해 낮다고 평가했다. 조사 결과에 따르면 환자의 60% 이상이 비대면 진료가 대면진료 대비 더 편리하다고 응답했으나, 진료의 정확도에 대해선 대부분의 설문 응답자가 부정적인 의견을 내놓았다. 신뢰관계 구축에 대해서도 환자의 69%가 부정적인 견해를 보였다.

한편 이런 가운데에서도 의료계는 시대의 흐름에 맞춰 비대면 진료 제도화를 점차 준비하고 있는 모습이다. ‘비대면 진료 가이드라인’이 대표적이다. 한국원격의료학회는 비대면 진료를 하는 기본 원칙과 조건 등을 담은 가이드라인을 마련했다. 특히 불가항력적 의료사고가 발생하더라도 의사에게 책임 소재를 묻지 않아야 한다는 점을 고지해 환자 동의를 구한 후 비대면 진료를 실시하도록 한다는 점이 눈에 띈다.

의사가 비대면 진료를 거부할 수 있는 조건도 제시했다. 환자가 본인 확인이나 비대면 진료 희망 표시, 정보 제공을 거부 또는 지연하거나 부정확한 상황이 발생할 경우다. 의사가 대면 진료·처방으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한 경우도 비대면 진료를 거부할 수 있다고 했다.

다만 비대면 진료 가이드라인은 의료법 등에 따른 유권 해석을 받아야 할 여지가 있는 만큼 아직 명확히 규정됐다 볼 순 없다. 특히 오진에 대한 책임을 의사에게 묻지 못할 경우 책임 소재가 불명확해진다는 문제가 남아 있다. 의료계 차원에서도 오진의 1차적인 책임은 의사에게 있음을 확실히 인지하고 있는 만큼 책임 소재를 분명히 해 국민적 수용성을 높일 필요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