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행착오’ 못 견디는 벤처투자 시장, 스타트업 수익성 찾아 줄줄이 ‘피봇’

얼어붙은 투자시장, 미래 성장 가능성보다 눈앞의 수익 우선시하는 투자자들 수익 증명 없이는 투자 유치 어렵다, 자금 유치 급한 기업들 줄줄이 ‘피봇’ 도전과 성장보다 당장의 ‘돈’ 중시하는 벤처업계, 유니콘의 시대 저물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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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벤처투자 시장에 찬바람이 몰아치는 가운데, 투자를 유치하기 위해 ‘피봇(pivot)’을 선택하는 스타트업이 증가하고 있다. 미래 가치와 성장성보다는 당장의 수익성을 증명해 투자를 유치하고, 이를 기반으로 미래 성장을 도모하겠다는 전략이다.

현재 업계에서는 미래 가치를 내세워 회사를 키우는 시대는 지났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실제로 적자를 내고 있으면서도 성장성을 내세우며 몸집을 키워온 스타트업들이 최근 추가 자금 조달에 실패하며 위기를 겪고 있기 때문이다. 반면 당장의 수익성을 증명하고 ‘성장’이 아닌 ‘추가적인 수익’을 위해 투자를 유치하는 스타트업들은 시장의 주목을 한몸에 받고 있다.

빅테크도, 유니콘도 ‘피봇’에서 출발했다

피봇은 스타트업이 신제품을 출시한 뒤 다른 사업 모델로 전환하는 것을 뜻하는 용어다. 초기 시장에 출시한 제품이나 서비스의 사업화 가능성이 낮다고 판단될 경우 과감하게 사업을 전환하는 것이다. 현재 글로벌 시장의 중심축을 차지하고 있는 대다수의 기업이 피봇 과정을 거쳐 성장해 왔다.

대표적인 예로는 ‘유튜브’가 있다. 2005년 2월 14일 스티브 첸과 채드 헐리가 창업한 유튜브는 튠인훅업(Tune in hook up)이라는 비디오 기반 데이트 서비스로 출발했다. 하지만 이용자들은 이성 간 만남보다 자신의 일상을 동영상으로 공유하는 것을 즐겼고, 이에 영감을 얻은 튠인훅업은 동영상 공유 플랫폼 ‘유튜브’로의 피보팅을 선택했다. 유튜브는 다음 해인 2006년 16억 달러에 구글에 인수됐고, 현재 매월 20억 명이 사용하는 글로벌 동영상 공유 플랫폼으로 성장했다.

업무용 메신저의 대명사인 ‘슬랙’ 역시 피봇을 통해 발전을 거듭한 서비스다. 슬랙은 창업자인 스튜어트 버터 필드가 2011년 글리츠(Glitch)라는 온라인 게임을 개발하면서 부수적으로 사용한 내부 메신저였다. 그러나 글리츠가 실패하자 버터필드는 내부 메신저를 중심으로 한 피보팅을 택했고, 2014년에 슬랙 서비스를 정식 론칭했다. 이후 슬랙은 70억 달러 이상의 가치를 가진 ‘유니콘’으로 성장했으며, 매일 800만 명이 사용하는 세계 최대 업무용 메신저로 자리매김했다.

국내에서도 이 같은 피봇 사례가 급증하는 추세다. 지난해 5월 설립된 패션테크 스타트업 ‘코디미’는 생성형 AI를 활용해 앱 내에서 가상으로 옷을 시착해볼 수 있는 서비스를 출시했다. 하지만 B2C 모델로는 소비자 반응이 크지 않았고, 결국 B2B로 피보팅을 선택했다.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실제 모델을 구하고 의류 착용 사진을 찍는 수고를 줄일 수 있다는 장점이 부각되자 B2B 수요가 몰렸고, 피보팅 한 달 만에 고객사 30곳을 확보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

슬랙의 전신인 게임 ‘Glitch’가 ‘글리치는 죽었다’는 메시지로 피봇 사실을 밝히고 있다/사진=Glitch

수익성 증명 없이는 투자도 없다, 싸늘한 투자시장

피봇은 보통 불확실한 초기 아이디어를 빠르게 바꾸는 형태로 이뤄진다. 극단적으로 이야기하면, 수익성을 확보하지 못하고 ‘실패’한 아이디어를 과감하게 내던지는 행위인 셈이다. 실제로 업계에서는 생존이 어렵다고 판단될 경우 빠르게 사업을 축소하고, 적합한 사업 모델로 피보팅하는 것이 낫다는 조언이 심심찮게 들려온다.

특히 최근 피보팅이 늘어난 것은 ‘성장 가능성’만 갖춘 초기 기업을 기피하는 벤처투자 시장의 분위기 때문이다. 기존 스타트업 투자자들은 당장 수익 실현 가능성이 낮고 리스크가 따른다 해도 도전적인 기술을 가진 기업에 기꺼이 자금을 투입해 왔다. 하지만 금리 인상과 경기 침체 등으로 유동성이 말라붙자, 투자자들은 성장성보다 수익성이 확실한 기업을 찾기 시작했다.

실제 불안정성이 높고 당장의 수익성을 증명하기 어려운 제약·바이오 기업의 투자가 급감한 것이 그 방증이다. 국내 제약·바이오 업계 투자는 2021년 하반기부터 점차 얼어붙기 시작했으며, 지난해에는 그 규모가 눈에 띄게 줄었다. 최근 들어 1,000억원대 규모 투자는 찾아볼 수 없는 데다, 투자 체결 숫자도 직전 해 대비 급감했다. 올해 1분기 시장 역시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싸늘하기만 했다. 1,000억원은커녕 100억원대 규모 투자 사례도 찾아보기 어려우며, 10억원대 ‘쪼개기 투자’도 빈번하게 이뤄지는 추세다.

자금 마련이 시급한 스타트업 입장에서는 당장의 수익성을 증명하기 위해 피봇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업계에서는 미래 성장 기대를 먹고 성장하는 유니콘의 시대는 이제 지나갔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미래 성장에 기대를 거는 혁신 기술 기반 스타트업들에는 비우호적인 환경이 조성됐다는 의미다. 경기 상황 악화로 투자자와 기업 모두가 당장의 수익성에 집중하는 가운데, 스타트업의 핵심인 ‘도전’의 가치는 점차 흐려져 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