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제 족쇄 벗어던진 ‘산학연협력 기술지주회사’, 대기업 손 잡고 날아오를 수 있을까

공정거래법 시행령 개정안 입법예고, 기술지주회사 ‘대기업 계열사 편입’ 영구 제외 최근 의무지분율 규제 완화 등으로 날개 단 기술지주회사, CVC 누르고 날개 펼까 꾸준히 증가해 온 기술지주회사 및 자회사, 이번 시행령 개정 ‘추가 동력’ 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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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대기업 집단이 소유한 대학 내 산학연협력기술지주회사(이하 기술지주회사)가 그룹 계열사에서 영구적으로 제외된다. 공정위는 26일 이 같은 내용을 담은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공정거래법)’ 시행령 개정안을 6월 27일부터 8월 11일까지 입법예고한다고 밝혔다.

업계에서는 이번 규제 완화를 계기로 꾸준히 증가해 온 기술지주회사 및 자회사의 성장 발판이 마련됐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올해 들어 의무 지분율 등 발목을 붙잡던 규제가 본격적으로 완화되기 시작한 가운데, 이번 시행령 개정을 통해 비로소 기술지주회사가 대기업 CVC(기업형 벤처캐피탈, Corporate Venture Capital)와 ‘대등한’ 선택지로 올라섰다는 평가다.

기술지주회사, 대기업 계열사 편입 대상서 제외

기술지주회사는 대학교 내 산학협력단 등이 교육부로부터 인가받아 설립한 지주회사와 그 자회사로, 일반적으로 대학 보유 기술의 사업화를 목적으로 운영된다. 기술지주회사 및 자회사는 ‘산업교육 진흥 및 산학연협력촉진에 관한 법률’에 따라 산학협력단 의무 지분율(50% 초과 보유) 등 설립요건이 엄격한 편이며, 수익금은 대학 연구 R&D 활동에만 사용할 수 있다.

그간 공정거래위원회는 원래 대기업이 일정 지분을 보유한 기술지주회사의 대기업 계열 편입을 10년간 유예해 왔다. 유예 기간이 지난 기술지주회사는 꼼짝없이 대기업 계열사로 편입돼 중소기업 관련 혜택을 잃는 구조다. 하지만 이번 시행령 개정을 통해 ‘대기업 집단이 산학연 협력을 위해 대학교 내에 설립한 기술지주회사 및 그 자회사’가 계열사 편입 대상에서 영구적으로 제외됐다.

공정위는 기술지주회사의 대기업 계열 편입 유예 제도를 약 13년 동안 운영한 결과, 기술지주회사를 통한 부당한 경제력 집중 우려가 낮다고 평가했다. 실질적으로 기술지주회사가 대기업 집단과는 별개의 지배 구조를 가지고 있었으며, 기술지주회사 관련 사익 편취 행위 등 불공정거래 행위가 발생한 사례 역시 없었다는 설명이다. 단 기술지주회사가 대기업 집단 범위에서 제외된 뒤에도 부당한 경제력 집중 우려가 제기되지 않도록 ‘동일인 지배 회사와 출자·채무보증 금지’ 등 안전장치는 그대로 유지할 예정이다.

공정위는 “이번 시행령 개정을 통해 기술지주회사와 그 자회사가 대기업 집단 범위에서 영구적으로 제외되면 이들 기술지주회사 및 자회사가 자금 지원·세제 감면 등 중소기업 관련 혜택들을 계속 받게 됨으로써 산학연협력을 통한 투자 및 대학 보유 기술의 사업화가 촉진될 것으로 기대된다”고 밝혔다.

대기업에 주어진 선택지, ‘CVC-기술지주회사’

시행령 개정으로 대기업은 두 가지의 스타트업 투자 트랙을 갖게 됐다. 자체 보유한 CVC를 활용하는 방법과 산학연을 통해 투자하는 방법이다. CVC는 스타트업을 발굴해 자금을 투자하고, 기술의 사업화를 지원하는 대·중견기업 산하 조직이다. 국내에서는 2020년 공정거래법 개정 이후 2021년 12월부터 지주회사의 CVC 보유가 본격적으로 허용됐다.

대기업 CVC의 경우 단순 자본 이익보다 모회사와의 협력을 염두에 둔다는 특징이 있다. 이는 투자 수익보다 대학이 보유한 기술을 사업화하는 데 중점을 두는 기술지주회사와 상당히 유사한 형태다. 기업은 성장을 위해 필요한 기술을 발굴 및 사업화하기 위해 CVC와 기술지주회사 중 적합한 투자 방법을 선택할 수 있는 셈이다.

지금껏 기술지주회사 투자는 대기업 입장에서 환영할 만한 선택지가 아니었다. 투자 이후 일정 기간이 지나면 발생하는 계열사 편입 의무가 기술지주회사와 대기업 모두에게 껄끄러운 일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 시행령 개정으로 관련 문제가 해결됨은 물론, 기술지주회사는 대기업으로부터 투자를 유치한 이후에도 자금 지원 및 세제 감면 등 혜택을 꾸준히 제공받을 수 있게 됐다. 이에 업계에서는 어쩌면 CVC 투자가 기술지주회사에 밀려 상대적으로 위축될 수도 있다는 전망이 제기된다.

이어지는 규제 완화, 차후 산학협력 활성화 기대 실려 

차후 대학의 기술지주회사 도입이 활성화될 것이라는 예측도 나온다. 올 들어 기술지주회사 핵심 규제가 본격적으로 완화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교육부는 지난 3월 ‘산학연협력기술지주회사 제도 개선방안’을 발표, 기술지주회사의 자회사에 대한 의무 지분율(10%)을 최초 설립 시에만 준수하도록 규제를 완화한 바 있다. 산학 협력을 활성화하기 위해 후속 투자의 걸림돌이 되는 의무 지분율 규제를 사실상 폐지한 것이다. 기존에는 기술지주회사가 자회사를 설립할 때는 물론, 설립한 후에도 반드시 10% 이상의 지분율을 유지해야 했다.

아울러 대학 산학협력단이 기술지주회사 총자본금(현금+현물)의 30%를 초과해 출자해야 하는 현물(기술) 비율 역시 기술지주회사 설립 시에만 유지하도록 기준이 완화됐다. 뿐만 아니라 기술지주회사가 자회사로 편입할 수 있는 회사 범위도 확대됐으며, 기술지주회사 이익배당금 역시 사용처를 연구개발 업무 전반으로 확장됐다.

기술지주회사 자회사는 지난 2020년 기준 이미 1,000개를 돌파했으며, 전체 대학 기술지주회사 역시 지난 3월 기준 80개까지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다. 시장 발전의 걸림돌로 치부됐던 규제가 다수 완화되면서 기술지주회사가 새로운 동력을 마련한 가운데, 차후 산학연 협력이 적극 활성화할 수 있을지 시장의 기대가 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