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자잿값 급등, 엔저 장기화에 고통받는 수출 中企 “고환율 특수는 옛말”

수출 기업 대다수 고환율 특수 못 누려, 올해 수출 증가 기업 10곳 중 1곳 ‘원자재 가격 급등’에 원자재 가공해 수출하는 우리 기업 대부분 수익성 악화 엔저 장기화에 일본보다 수출 경쟁력에서 밀려, 덩달아 ‘일학개미’도 급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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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항 컨테이너부두/사진=인천항만공사

고환율에 특수를 누려왔던 한국 수출기업들이 여전히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코로나 팬데믹과 러·우 전쟁으로 급등한 원자재 및 중간재 가격으로 마진이 줄고, 수출 경쟁국인 일본의 엔화 약세가 장기화되는 현상 등이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 특히 올해 주요 수출 품목인 반도체 부진 여파까지 겹치면서 대중(對中) 수출까지 크게 악화되고 있다.

원·달러 환율 크게 올랐지만 수출 기업 실적은 오히려 악화

그간 한국 수출 중소기업은 달러화 대비 원화 가치 하락 즉, 환율 상승을 통한 가격 경쟁력 상승효과를 톡톡히 누려왔다. 실제 2008년 금융위기부터 코로나19 팬데믹 이전인 2021년까지 원·달러 환율과 중소기업 수출액은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는 동조화를 보였다.

그러나 최근에는 이 같은 고환율 특수가 수출 기업의 실적에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반도체 수출 부진과 함께 무역수지는 15개월 연속 적자를 기록 중이다. 또한 올 1분기 실적 쇼크를 기록한 코스피 상장사들도 적지 않다.

무엇보다 중소 수출기업들이 고환율 특수를 누리지 못하고 있다. 중소기업중앙회 설문조사에 따르면 올해 환율 상승으로 가격 경쟁력이 생겨 수출이 증가했다는 응답은 10곳 가운데 1곳에 불과했다.특히 대기업과 하청관계를 맺은 중소기업들의 실적은 향후에도 개선될 여지가 적을 것으로 보인다.

6월 중소기업 경기전망지수(SBHI)는 81.1로 한 달 전 83.8보다 2.7포인트 하락했다. 수출 부진 및 고금리 기조 장기화 등으로 한 달 만에 다시 하락했는데, 여전히 기준치인 100을 넘지 못하고 있다. SBHI는 중소기업들에 향후 한 달 동안의 경기 전망을 설문한 지수로 100보다 낮으면 향후 경기 전망에 부정적으로 답한 기업이 많음을 뜻한다.

원자잿값 상승에 수출 中企 직격타

고환율 특수가 기업 실적에 반영되지 않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로 꼽힌다. 먼저 코로나 팬데믹과 러·우 전쟁으로 급등한 원자재 가격이다. 주로 원자재와 중간재를 수입한 후 가공해 제품을 생산하는 우리 수출 중소기업 특성상 제조원가에 따라 수익성이 결정된다. 그러나 글로벌 공급망 악화로 원자재 가격이 급등하고, 여기에 고환율까지 더해지니 우리 기업들 입장에선 제조원가 상승 부담이 크게 높아진 셈이다.

한국은행도 지난해 국내 기업의 부채비율이 8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고 지적하며 주요 원인으로 원자재 가격 상승을 꼽았다. 한국은행 관계자는 “글로벌 공급망 악화로 에너지 및 금속 등의 원자재 가격이 급등함에 따라 운전자금 수요가 외부 차입 증가를 이끌었다”며 “글로벌 공급망의 변화가 환율에 따른 국내 수출 기업 실적의 역학관계를 바꾸고 있다”고 설명했다.

올해 들어 세계 각국이 방역 해제 등 엔데믹 절차에 들어서면서 글로벌 공급망이 해소됐지만, 실제 수출 중소기업들의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이의현 한국금속공업협동조합 이사장은 “자동차와 기계 부품 등을 생산하는 중소기업의 경우 고강도 특수강 등의 금속이 필요한데, 대부분 수입에 의존한다. 그러나 지난해 말부터 올해까지 국제 금속 가격이 두 번이나 올라 난처한 상황이다”라며 “이에 더해 환율까지 떨어지지 않고 있어 자재 수입에 부담 크게 느끼는 기업이 대다수다”라고 전했다.

대기업보다 자금 운용 여건이 떨어지는 점도 중소기업들이 고환율에 더 큰 타격을 받는 이유다. 자동차 부품 중소기업 C사 관계자는 “해외로부터 수입하는 철강 등 원자재를 달러로 결제해야 해서 환율 상승분을 고스란히 반영해야 하는 실정이다”라며 “대기업과 달리 환 헤지를 해두지 않았고, 그럴 능력도 없다”고 설명했다.

엔저 기조, 수출경합도 높은 우리나라에 더욱 치명타

고환율 특수가 기업 실적에 반영되지 않는 또 다른 이유는 엔화 약세다. 현재 원·엔 환율은 미국 등 주요국 대비 완화적인 통화정책을 고수함에 따라 8년 만에 100엔당 800원대에 진입했다. 엔화 가치 하락은 일본과 수출 품목이 겹치는 우리나라 제조업 중심 수출 기업 경쟁력에 악영향을 미친다.

한국경제연구원에 따르면 한국과 일본의 제조업 수출경합도는 69.2다. 한국과 미국(68.5), 한국과 독일(60.3), 한국과 중국(56.0)과 비교하면 가장 높은 수준으로, 수출시장에서 일본과의 경쟁이 가장 치열하다는 의미다. 석유화학·철강·자동차 등 제조업 분야의 경쟁이 가장 치열하다. 특히 지난해 3분기까지 엔·달러 환율이 1%p 오를 때마다 우리나라의 수출 물량이 0.2%포인트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원자잿값 급등은 일본에도 악재로 작용하나 우리보다 덜 취약한 경제구조를 갖고 있다. 최근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2021년 기준 우리나라 GDP의 수출 비중은 35.6%인 반면 일본은 12.7%로 우리나라의 절반 이하인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일본은 우리보다 중화학공업 비중이 낮기 때문에 국제 유가를 비롯한 글로벌 에너지 가격 급등에 비교적 덜 영향을 받았다. 우리나라가 국제 원자재 가격 변동에 더 취약한 산업 구조를 갖고 있는 셈이다.

한편 급격한 엔화 가치 하락에 따라 엔화 수요가 급증하고 있다. 18일 금융권에 따르면 국내 4대 은행의 지난달 엔화 매도액은 301억6천700만 엔(약 2천725억원)으로 지난 4월보다 73억2천800만 엔 증가했다. 원화를 엔화로 환전한 고객이 늘었다는 의미다.

33년 만에 사상 최고치를 경신한 일본 주식시장으로도 투자자들이 몰리고 있다. 특히 일본 주식에 직접 투자하는 개인투자자가 크게 늘고 있다. 일례로 19일 기준 지난 한 달간 일본 반도체 산업에 투자하는  ‘글로벌 엑스 일본 반도체(GLOBAL X JAPAN SEMICONDUCTOR)’를 2,588만 달러 순매수했다. 이밖에도 소니 그룹(451만 달러), 아식스(305만 달러), 미쓰비시(264만달러), 니덱(226만 달러) 등에 일학개미 투자자금이 몰렸다. 역대급 엔저 현상에 엔화 자산에 투자 후 자산가치 상승과 엔화 가치 상승분을 동시에 누리겠다는 의도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