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사우디 2,000억원 공동펀드 조성, 무함마드 왕세자의 ‘모험 자본’ 기대 실려

사우디와 2,000억원 규모 공동 펀드 조성 체결, KVIC 1,000만 달러 출자 ‘석유경제’ 탈출 꿈꾸는 사우디, 첨단 기술·상품 필요하면 기꺼이 거금 투자 무함마드 왕세자의 ‘모험 투자’ 성향, 투자받는 우리 기업에겐 반가운 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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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왼쪽)이 11일 사우디아라비아 크라운플라자 리야드호텔에서 개최된 ‘공동펀드 조성 체결식’에서 요세프 알 베냔 SME BANK 이사회 의장 겸 교육부 장관과 사전환담을 나누고 있다/사진=중소벤처기업부

한국과 사우디아라비아가 양국 스타트업과 중소기업을 지원하기 위한 2,000억원 규모 공동펀드를 조성한다. 중소벤처기업부는 11일(현지 시간) 사우디 리야드 크라운프라자호텔에서 이영 중기부 장관과 요세프 알 베냔 사우디 중소기업은행(SME Bank) 이사회 의장이 양국 공동펀드 조성 체결식을 가졌다고 밝혔다.

최근 사우디 정부는 국부펀드(PIF, Public Investment Fund)를 앞세워 전 세계에 막대한 투자금을 쏟아붓고 있다. 사실상의 결정권자인 무함마드 왕세자가 무모하고 과감한 투자 성향으로 시장의 이목을 끈 가운데, 자금 경색으로 신음하는 국내 벤처 업계에서는 사우디의 도전적인 자금 투자에 대한 기대가 커지고 있다.

사우디 SVC·PIF, 우리나라 KVIC 등 공동 출자

이번 공동펀드는 1억6,000만 달러(약 2,084억원) 규모로 조성된다. 사우디가 주요 출자자로 참여해 조성한 1억5,000만 달러(약 1,954억원) 규모의 펀드에 한국벤처투자(KVIC)가 1,000만 달러(약 130억원)를 출자하는 방식이며, 이외에도 사우디벤처투자(SVC), 사우디국부펀드(PIF Jada) 등이 주요 출자자로 참여한다. 양국은 한국 기업에 한국벤처투자가 출자한 금액 이상, 즉 최소 1,000만 달러 이상을 투자할 예정이다.

이번 공동펀드 결성은 지난해 11월 윤석열 대통령과 무하마드 빈살만 왕세자 회담을 계기로 체결한 ‘한-사우디 투자 협력 및 스타트업 지원을 위한 업무협약’의 후속 조치다. 당시 양국의 모태펀드 운영기관인 한국벤처투자와 사우디벤처투자는 △공동펀드 조성 △양국 스타트업 교류 △투자 전략·정책 관련 정보 교류 등에 협력하겠다는 뜻을 밝힌 바 있다.

이영 장관은 올해 1월 다보스 포럼, 지난 3월 사우디 방문 등을 통해 사우디 정부 인사들과 공동펀드 조성을 위한 협력관계를 구축해 왔다. 이영 장관은 “한-사우디 공동펀드 조성을 계기로 우리 벤처·스타트업이 투자 유치뿐만 아니라 사우디에 진출할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해 제2의 중동신화 주역이 되도록 최대한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포스트오일’ 대비하는 사우디 국부펀드

사우디는 2016년부터 △고급 인프라 구축 △첨단기술 경제 건설 △민간 부문 활동 증진 △관광 및 레저 산업 신규 육성 등에 중점을 둔 ‘사우디 비전(Saudi Vision) 2030’을 추진하고 있다. 석유 중심 경제 구조에서 벗어나 이후 다가올 ‘포스트 오일’ 시대에 대비하기 위함이다. 특히 국제 유가에 대한 통제권이 사우디아라비아를 중심으로 한 OPEC에서 미국으로 이동하기 시작하며 사우디의 절박함 역시 커지는 추세다.

‘사우디 비전 2030’의 대표 프로젝트로는 ‘네옴시티’가 있다. 사우디의 미래형 신도시인 ‘네옴시티 더 라인’ 프로젝트는 그린수소 생산으로 제반 시설을 움직이는 친환경 첨단 도시다. 총길이 170km, 폭 200m(서울의 44배 규모)에 달하는 이 도시는 △직선형 도시 ‘더 라인’ △해상 산업생산지구 ‘옥사곤’ △산악지대의 레저 관광단지 ‘트로제나’ 등으로 이뤄진다. 해당 프로젝트에는 한국 기업인 한국전력과 삼성물산, 포스코, 남부발전, 현대로템 등이 참여했다.

이처럼 사우디는 ‘사우디 비전 2030’으로 대표되는 국가의 첨단화를 위해 거금을 투자하며 전 세계에서 기술·상품을 확보하고 있다. 석유 시장 주도권이 이동하기 시작한 지금, 사우디 비전 2030은 사실상 사우디 경제의 체질 개선을 위한 ‘마지막 기회’이기 때문이다. 이에 국내 벤처 업계에서는 사우디가 ‘사우디 비전 2030’을 위한 사업 라인 확보를 염두에 두고 이번 공동펀드 조성에 응했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무함마드 왕세자의 ‘무모한 베팅’, 우리나라엔 오히려 호재?

최근 PIF는 정부 자금 7,000억 달러(약 905조원)를 앞세워 대규모 투자를 단행하고 있다. PIF가 후원하는 LIV 골프와 미국프로골프(PGA) 투어가 전격 합병을 선언한 것이 대표적인 예다. 하지만 시장에서는 PIF가 사실상 무함마드 왕세자의 ‘독재’하에 운영된다는 의견에 힘이 실린다.

PIF의 최종 투자 결정권자는 전문가들로 꾸려진 투자위원회 등이다. 하지만 이들은 실권자인 무함마드 왕세자의 무모한 베팅을 막지 못하고 있다. 실제 미 일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사우디아라비아의 실세인 무함마드 왕세자가 막대한 자금을 거침없이 쏟아붓는 공격적인 투자 방식으로 인해 사우디 국부펀드 측과 갈등을 빚고 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무함마드 왕세자는 팬데믹 초기 공격적인 주식 매입 결정으로 수익을 올리기도 했지만, 그 외 투자 결정에서 대부분 손실을 봤다. 하지만 최근까지 왕세자의 ‘현금 뿌리기’ 투자는 멈추지 않고 있다. 무함마드 왕세자의 과감한 투자 성향과 투자 위험을 관리해야 하는 PIF 금융 전문가들이 부딪히고 있다는 분석이 제기되는 이유다.

투자를 받게 될 우리나라 기업에는 무함마드 왕세자의 무모한 성향이 오히려 ‘호재’로 작용할 수 있다. 결정권자가 적극성을 발휘한다는 것은 곧 투자가 ‘신속하게’ 이뤄질 수 있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최근 국내 모태펀드 조성 규모가 급감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번 공동펀드를 통해 투입되는 2,000억원은 결코 작지 않은 규모다. 업계에서는 무함마드 왕세자의 신속한 투자가 자금난에 시달리는 국내 스타트업들에 생기를 불어넣어 줄 수 있다는 긍정적인 전망이 제기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