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기부 250억원 규모 지역엔젤 모펀드 출자 발표, “블랙엔젤 걷어내기 선행 돼야”

나선다 성행하는 ‘블랙엔젤’, “엔젤투자자 찌르면 다 범죄자”라는 이야기 나오기도 엔젤투자, 국내 시장에 건강하게 정착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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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 중소벤처기업부 장관(가운데)이 민간 모펀드 조성 라운드 좌담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사진=중소벤처기업부

중소벤처기업부가 액셀러레이터(AC)를 대상으로 한 ‘지역엔젤 모펀드’를 250억원 규모로 출자한다. 그간 정부는 엔젤 모펀드에의 출자를 꺼려왔다. 블랙엔젤 등 부작용이 다수 발생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이번 엔젤 모펀드 출자를 통해 지역 발전을 넘어 엔젤펀드가 국내 업계에 제대로 정착할 수 있으리란 기대감이 퍼진다.

중기부 “250억 규모 재간접 펀드 출자 공고 발표할 것”

김민지 중기부 투자관리감독과 과장은 8일 열린 AC 투자조합 수탁 협약식에서 “이달 말 개인투자조합을 결성하는 운용사(GP)를 대상으로 약 250억원 규모의 재간접 펀드 출자 공고를 발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번에 조성되는 펀드는 지역 초기창업기업의 투자 활성화를 위해 비수도권 개인투자조합을 대상으로 하며, 출자 재원은 엔젤투자매칭펀드의 회수재원이다. 엔젤투자매칭펀드는 민간투자자가 스타트업에 먼저 투자하면 정부(한국벤처투자)가 최대 2.5배수까지 매칭 투자하는 형식이다.

중기부가 재간접 펀드 방식으로 개인투자조합 출자에 나선 건 이번이 처음이다. 김 과장은 “그동안 블랙엔젤 같은 일부 부작용 사례가 등장하는가 하면 엔젤투자 같은 경우 소액으로 많은 펀드가 결성되다보니 펀드 관리의 효율성도 떨어지는 등 문제가 많았다”며 “이 같은 어려움을 타개하기 위해 새로운 방식으로 펀드 출자에 나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번 출자는 올해 모태펀드 1·2차 정시 출자사업에서 AC가 결성하는 벤처펀드에 대한 출자가 별도로 편성되지 않았다는 지적에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지난 2021년엔 100억원, 2022년엔 214억원 등이 출자된 바 있는데, 올해엔 모태펀드 재원 축소로 AC를 위한 별도 출자는 편성되지 않았다. 이에 업계에선 스타트업을 보육·육성하는 AC의 역할을 강화하기 위해 전용 출자 분야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를 끊임없이 쏟아내 왔다.

이런 가운데 한국액셀러레이터협회(AC협회)는 이날 서울 강남구 한국과학기술회관에서 신한투자증권·유안타증권과 함께 투자조합 수탁협력을 위한 협약식을 열었다. 앞으로 두 증권사는 벤처투자조합의 규모와 상관없이 0.3% 이하 수수료율로 수탁 업무를 맡게 된다. 사실상 투자 업계의 오랜 숙원이던 수탁 문제가 해결된 것이다. 앞으로 AC가 초기 벤처투자 주체로서 더욱 자유롭고 적극적으로 투자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블랙엔젤’ 문제 우선 해결돼야

다만 앞서 언급했듯 엔젤제도를 악용하는 ‘블랙엔젤’이 적지 않은 게 문제다. 블랙엔젤이란 실제 투자는 하지 않으면서 매칭펀드를 받기 위해 투자한 것처럼 꾸민 후 벤처기업으로부터 투자 유치에 대한 수수료를 받아 챙기는 브로커다. 블랙엔젤이 성행하게 될 경우 정부의 적극적 지원 정책은 아무런 쓸모가 없게 되고 브로커들만 돈을 챙겨가는 모양새로 변질될 수 있다.

통상 청년 창업가들은 빚더미에 빠지지 않기 위해 창업 초기 엔젤투자를 적극 이용한다. 대학이 이와 비슷한 역할을 제대로 해내지 못하는 상황에서 청년들이 믿고 의지할 만한 곳은 그나마 엔젤투자자인 것이다. 그러나 엔젤투자매칭펀드를 두고 뒷말이 무성하다. 해당 펀드를 둘러싸고 해마다 관련 범죄로 기소되는 인원이 수십 명에 이르는 등 악용 사례가 쏟아져 나오고 있는 것이다. 실제 서울 북부지검에 따르면 지난 2016년에만 관련 혐의로 19명이 기소됐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검찰 사이에선 “엔젤투자자는 찌르면 모두 범죄자”라는 이야기가 나오기도 한다.

엔젤투자에 대한 정부의 관심이 높아질수록 정부지원금을 노리는 블랙엔젤들은 더욱 기승을 부릴 것이 자명하다. 정부의 지원 사업이 제대로 성공하기 위해선 블랙엔젤을 어떻게 걷어낼 것인가를 먼저 생각해 봐야 한다. 블랙엔젤 문제를 해소하지 않은 상황에서 막대한 지원금만 투입된다면 스타트업들의 고통은 오히려 가중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미성숙한 엔젤투자 시장, 어떻게 ‘성숙’해질 수 있을까

우리나라 스타트업 생태계에서 엔젤투자 문화는 해외에 비해 미성숙한 단계에 머물러 있다. 당장 미국과 유럽만 봐도 스타트업의 시작과 투자가 보다 자유로운 분위기 아래 진행된다. 우리나라처럼 ‘각’이 잡혀야만 뭐든 이뤄질 수 있는 경직적이고 정형적인 시스템은 해외 어느 사례에서도 찾아보기 힘들다.

국내 스타트업계의 가장 큰 문제는 바로 여기서 기인한다. 우리나라는 자유로운 스타트업 문화가 형성되기 이전 정부가 벤처투자 업계만 크게 부풀려 놓은 상태다. 해외 VC 업계의 표현을 빌리자면, 매우 ‘기형적’이다.

이 같은 상황에서 지역 중심 엔젤펀드를 활성화하겠다 하니 국내 업계에서도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다만 기대의 목소리도 함께 나오고 있다. 이번 엔젤펀드가 단순한 지방 살리기를 넘어 엔젤투자 문화 자체의 정착을 불러올 수 있을 것이란 견해다. 한국엔젤투자협회에 따르면 국내 엔젤투자 등록 현황은 시간이 지날수록 증가하고 있다. 2011년 가입자 수 369명에 불과했던 엔젤투자 시장은 2016년 3,068명까지 늘어났다. 건강한 엔젤투자 시장이 형성돼야 할 시점인 만큼 정부의 보다 면밀한 지원책 모색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