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대면 진료 30% ‘가산수가’ 책정 유력, ‘벼랑 끝’ 스타트업 등 떠미는 정부 시범사업

비대면 진료 대상 가산수가 책정 가능성 커, 원산협 “국민 입장에서 납득하기 어렵다” 가산수가로 돈 버는 건 ‘의료진’, 적자 치닫는 건강보험 재정·글로벌 흐름 등 고려해야 진료 대상 ‘재진’ 한정으로 흔들리는 플랫폼 업계, 가산수가 줄도산 ‘치명타’ 될 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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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대면 진료 시범사업 시행이 목전까지 다가온 가운데, 비대면 진료 비용(수가)과 관련한 논란에 불이 붙었다. 비대면 진료에 대면 진료 대비 30% 높은 수가가 책정될 것이라는 전망에 힘이 실리면서다.

이에 비대면 진료 중개 플랫폼들로 구성된 코리아스타트업포럼 산하 원격의료산업협의회(원산협)는 25일 가산수가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밝히고, 비대면 진료의 가산수가가 플랫폼의 수익으로 돌아오지 않는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비대면 진료에 가산수가를 책정하는 것은 글로벌 흐름에 역행하는 결정이며, 건강보험 재정 상황을 악화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업계에서도 비대면 진료 가산수가 책정이 ‘플랫폼 죽이기’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가산수가 부담으로 비대면 진료에 반감을 가진 소비자가 시장을 이탈할 경우 가뜩이나 ‘재진 한정’ 시범사업으로 그림자가 드리운 플랫폼 시장 전반이 침체할 가능성이 있다는 지적이다.

복지부, “대면진료보다 비대면 진료 수가 높여야”

정부는 다음 달 1일 비대면 진료 시범사업 시행을 앞두고 오는 30일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를 열어 비대면 진료의 수가를 결정할 예정이다. 복지부와 국민의힘이 지난 17일 발표한 ‘비대면 진료 시범사업 추진방안’에는 “진찰료에 ‘시범사업 관리료’를 더해 의료기관에 지급한다”고 명시돼 있다. 조규홍 복지부 장관은 지난 4월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비대면 진료) 수가는 정확히 책정되지 않았지만, (비대면 진료 시) 의료인의 수고가 더 드는 것은 사실”이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복지부는 환자 본인 확인, 시범사업 평가를 위한 진료 기록·제출 등에 추가 비용이 드는 만큼 대면 진료보다 비대면 진료 수가를 높여 잡아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에 업계에서는 이번 시범사업에서도 한시적 비대면 진료(진찰료 100%+전화상담 관리료 30%)와 유사한 수준의 수가가 책정될 것이라는 분석에 힘이 실린다.

이에 대해 원산협은 “비대면 진료 가산수가는 국민 입장에서 납득하기 어렵다”며 가산수가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견지했다. 아울러 비대면 진료 시범사업 시행이 당장 일주일도 채 남지 않은 상황인 만큼, 오는 30일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를 앞두고 의견 개진에 속도를 내는 모습이다. 원산협은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정책임에도 불구, 단지 시범사업이라는 이유로 충분한 사회적 논의 없이 가산수가를 도입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사진=pexels

건강보험 재정 소모·글로벌 흐름 역행 우려

원산협 및 시민사회단체는 비대면 진료 수가가 더 높게 책정되면 그만큼 건강보험 재정이 빠르게 소진될 위험이 있다는 입장이다. 실제 감사원이 지난해 7월 발표한 건강보험 재정관리 실태 결과에 따르면 건강보험 적립금은 2029년 완전히 소진되며, 2040년에는 680조원에 달하는 누적 적자를 기록할 전망이다.

특히 원산협은 지난 4일 복지부가 건강보험 구조개혁을 위한 ‘중장기 건강보험 구조개혁 추진단’을 발족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30%에 달하는 비대면 진료 가산수가 책정을 사실상 이해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이들은 “건강보험재정은 국민 모두의 이익을 위해 쓰여야 한다”며 “한정된 건강보험재정을 모든 국민의 이익을 위해 사용해 주길 요청한다”고 밝혔다.

높은 비대면 진료 수가 책정은 글로벌 흐름 ‘역행’이라는 지적도 제기된다. 원산협은 “세계적으로 원격 진료 수가가 일반 진료보다 높은 국가는 찾아보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실제 의료정책연구소 조사 결과에 따르면 일반 진료보다 원격진료 수가가 높은 국가는 찾아보기 힘들며 일본, 프랑스, 미국 등 주요 국가의 원격진료 수가는 대면 진료와 동일한 수준으로 책정되어 있다.

의협 150%·200%까지 주장, 결국 ‘플랫폼 죽이기’ 될 것

대한의사협회(의협)은 비대면 진료로 인한 비용과 위험 부담을 근거로 진찰료 대비 150%, 200%에 달하는 가산수가 책정을 제안하기도 했다. 이에 일각에서는 의료진이 비대면 진료를 활용해 ‘잇속을 채운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일부 의약 업계 관계자들은 의료진이 대면 진료를 하지 않아 놓치게 되는 검사, 주사 등의 비용까지 가산수가를 통해 보상받으려 한다고 일갈하기도 했다.

국민 입장에서는 150%, 200%는커녕 130% 수준의 가산수가 책정도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다. 한시적 허용 시기의 비대면 진료에 가산수가가 책정됐던 이유는 어디까지나 팬데믹 속 비대면 진료를 빠르게 안착시키기 위한 ‘유인책’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WHO가 코로나 엔데믹을 선언하고, 방역당국도 위기 단계를 하향 조정하는 현 상황에도 가산수가를 유지한다는 것은 좀처럼 납득하기가 힘들다.

문진·시진만으로 진행되는 비대면 진료를 받으며 30%의 추가 진료비를 기꺼이 납부할 소비자가 얼마나 될까. 이에 일각에서는 가산수가를 소비자가 부담하게 될 경우 비대면 진료 플랫폼의 이용자 이탈 속도가 한층 빨라질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된다. 수가를 건강보험이 부담한다고 해도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적자로 치닫고 있는 건강보험의 재정 악화에 속도가 붙을 뿐만 아니라 건강보험료를 납부하는 근로자의 부담까지 가중될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당정이 비대면 진료 대상을 ‘재진 환자’로 제한하겠다고 밝히면서 이미 플랫폼 업계는 생사의 갈림길에 놓여 있다. 가산수가로 인해 업계의 이미지가 악화하고, 소비자가 대거 이탈할 경우 결국 시장 자체가 무너질 가능성이 크다. 이번 비대면 진료 시범사업에는 수많은 스타트업의 생존이 걸려 있다. 업계의 ‘줄도산’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해서는 정부와 산업계 간 충분한 논의가 이뤄져야 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