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처투자 촉진은커녕 방해만 하는 ‘벤처투자법’, 법령 개선 속도 높여야

시가총액 427억원 평가받던 기업의 상장 좌절 HB인베·캡스톤 스팩 우회상장 무산, 창투사 간 지분 소유 금지 법령 간과 마찰 빚는 벤처투자법과 자본시장법, 형평성 문제도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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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초 한국증권선물거래소(코스닥)는 기업인수목적회사(SPAC,스팩) 합병 규정을 개정해 합병 시 존속법인과 소멸법인을 명확히 구분할 수 있도록 했다. 이에 한국의 벤처캐피탈(VC)이 상장할 수 있는 새로운 길이 열리면서 낙관론이 부상했다.

개정 전에는 분할합병 시 분할회사가 존속법인으로 남는 분할합병이 일반적이었다. 이는 특히 상장 전에 취득한 권리 및 라이선스를 이전할 때 문제가 됐다. 그러나 새로운 규정은 벤처캐피탈이 스팩 합병을 통해 상장하도록 장려했고 업계에서는 전통적인 상장 절차를 우회하는 VC가 증가할 것이란 예상이 지배적이었다. 스팩 합병 1호가 HB인베스트먼트였고 캡스톤파트너스가 뒤를 이었다. 하지만 예상치 못한 법적 장애물 ‘벤처투자촉진에 관한 법률(벤처투자법)’이 등장했다.

벤처투자 ‘촉진’법? 벤처투자 ‘방해’법?

특히 벤처투자법의 ‘M&A 목적 외에는 VC가 다른 VC의 지분을 보유할 수 없도록 금지’하는 조항이 문제가 됐다. 최근 캡스톤파트너스(이하 캡스톤)와 엔에이치기업인수목적25호(이하 NH스팩25호) 간 합병이 철회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이는 VC가 스팩과의 합병을 철회한 두 번째 사례로, 첫 번째는 지난 15일 HB인베스트먼트(이하 HB인베)와 엔에이치기업인수목적23호(이하 NH스팩23호)의 합병 철회였다. 이러한 시도는 직접 상장 대신 스팩과의 합병을 통해 안정적인 자기자본을 확보하기 위한 것이었다.

문제는 HB인베와 캡스톤이 합병을 추진했던 NH스팩23호와 NH스팩25호 모두 창업투자회사가 발기인으로 참여한 스팩이라는 점이다. NH스팩23호의 경우 SBI인베스트먼트가 최대주주로 14%의 지분을 보유한 상황이다. 캡스톤과 합병을 추진했던 NH스팩25호는 우리벤처파트너스가 최대주주다. 당초 계획대로 HB인베가 NH스팩23호와 1대 0.85 비율로 합병하게 되면 SBI인베스트먼트와 HB인베는 지분 관계가 생기게 된다. 캡스톤도 NH스팩25호와 1대 0.6 비율로 합병하려 했는데 이 경우도 마찬가지로 우리벤처파트너스와 지분이 엮인다.

침체된 공모주 시장을 감안하면 스팩은 수익성이 좋은 선택지다. 실제로 스팩은 안정적으로 고유계정을 운용할 수 있는 효자 상품으로 꼽힌다. 특히 창업투자사의 경우 스팩의 발기인으로 참여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발기인으로서 상장 기업을 잘 발굴하기만 하면 상장 수수료나 회계 감사 수수료 등 부대비용이 들긴 하지만 궁극적으로 평가 차익을 기대할 수 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벤처투자법이 이러한 계획에 제동을 걸었다. 이 예상치 못한 장애물로 인해 두 VC는 전략 재고에 들어갔고, 향후 직접 상장을 추진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가장 문제가 되는 조항은 벤처투자법 제39조(중소기업창업투자회사의 행위제한), 그중에서도 1항 3호 ‘그 밖에 창업기획자의 설립목적을 해치는 것으로서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행위’다. 3호의 대통령령은 벤처투자법 시행령 제8조(개인투자조합 업무집행조합원의 행위제한)다. 이는 다시 금융실명거래 및 비밀보장에 관한 법률 시행령 제2조(금융회사 등)으로 이어진다. 이렇게 시행령에 시행령이 덧붙여져 있어 혼란을 가중시키고 있는 것이다.

이영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사진=중기부

누더기 외양간에 소 넣어두다 잃어버린 꼴

이는 벤처투자법이 개정되자마자 나왔던 지적이다. 벤처투자법 자체가 기존 벤처기업육성에 관한 특별조치법(벤처기업육성법)과 중소기업창업지원법(창지법)에 분산 돼있던 벤처투자 관련 내용들을 통합하면서 만들어진 법이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시행령을 세부적으로 개정하지 않았다는 비판도 쇄도했다. 게다가 금융위가 벤처투자법 이전 법을 근거로 삼아 벤처투자법을 규제하면서 논란이 된 사례도 있었다.

이뿐만 아니라 벤처투자법이 액셀러레이터(AC)와 VC의 협업을 사실상 허용하지 않아 AC 라이선스가 반려되는 사례도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특히 액셀러레이터의 투자의무를 담은 벤처투자법 제26조의 모호한 표현이 오해를 키운다는 지적이다. 이처럼 법령의 구멍이 많다 보니 향후 스팩 합병 철회 및 투자 제한뿐만 아니라 또 다른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는 우려가 크다. 심지어 신기술 금융회사나 사모펀드와 같은 다른 유형의 펀드는 여신금융업법과 자본시장법에 따라 이러한 행위 제한을 적용받지 않고 있어 VC 업계의 불만은 쌓여만 가고 있다.

더욱 우려스러운 점은 벤처투자법의 주무부처인 산업통상자원부가 합병 철회 이후에서야 이 문제를 인지했다는 점이다. 대표 주관사인 NH투자증권도 상장 가능성을 사전에 평가하지 못했다. 이러한 늑장 대응은 금융 산업의 혁신 속도와 규제 적응 속도 사이의 격차를 여실히 반영하고 있다. 

지난달 11일 벤처투자법 개정안이 국무회의에서 의결되며 이영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은 “민간재간접벤처투자조합의 도입은 민간도 모태기금(펀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으로, 벤처투자 시장에 민간자금의 유입이 늘어나는 계기가 될 것”이라며, “민간재간접벤처투자조합이 벤처·창업기업(스타트업) 생태계 전반에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도록 정책적 노력을 다할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실상은 아직도 규제가 기업의 발목을 잡고 있다. 정부의 조속한 대처가 요구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