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싸움에 등 터지는 중소기업, 근로시간제도 개편안 자체 설문조사 발표

이명로 대한상공회의소 인력정책본부장 “중소기업 인력난 해소하기 위해 법 개정 시급” 응답자의 65.7% “노사 합의에 따라 주당 최대 근로시간 60시간이 적정” 첫발 내디딘 근로시간 개편안, 기업혁신과 근로자 휴식보장이라는 취지 보존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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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소기업중앙회가 지난 3월 29일~4월 7일까지 중소기업 539개사를 대상으로 실시한 ‘근로시간제도 개편에 대한 중소기업 의견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많은 노동자들은 주 69시간 근무제를 살인적인 근무시간이라고 비방하고 있지만, 대한상공회의소와 중소기업중앙회가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사업주들의 생각은 사뭇 다르다.

많은 중소기업 오너들은 근로시간 개혁이 소모적이고 정치적인 논쟁으로 변질되지 않고 제대로 이루어지기를 원하고 있다. 중소기업중앙회는 성명서를 통해 “중소기업들은 갑작스러운 주 52시간 근무제 도입으로 대금 지급이 어려워지고 심지어 일을 포기하는 경우도 발생하고 있다”며 “일시적인 업무량 증가에 합법적으로 대처하기 위해서는 탄력적 근로시간제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했다.

개편안을 둘러싼 우려에 대해서는 “포괄임금제 오남용을 근절하고 정당한 보상에 기반한 근로시간 개편이 되도록 할 것이며, 노사 자율성을 존중하는 조직문화 형성을 위해 적극 노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또한 “근로시간 개편은 근로시간 총량을 늘리는 것이 아니라 노사 합의로 시간을 배분하는 것”이라고 강조하며, 개편안에 대한 오해가 반복되고 있는 것에 대해 유감을 표명했다.

김기문 중기중앙회장은 “소모적인 논쟁보다는 근로시간 유연화가 절실히 필요한 현장에서 어떻게 하면 제대로 운영할 수 있을지 논의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노사 자율을 존중하고 근로자의 건강권을 보호하는 방향으로 근로시간 개편이 이뤄지길 바라며, 중소기업계도 불합리하고 시대에 뒤떨어진 근로관행을 적극 지도해 국민적 우려를 불식시킬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덧붙였다.

중소기업중앙회의 ‘근로시간제도 개편에 대한 중소기업 의견조사’

중소기업 10곳 중 3곳은 지난 1년간 주당 12시간 이상의 초과근무를 해야 했던 경험이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또한 조사 대상 기업의 절반 이상은 정부의 근로시간 제도 개편 방안이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했다. 중소기업중앙회가 실시한 ‘근로시간제도 개편 관련 중소기업 의견조사’ 결과에 따르면, 중소기업의 31.2%가 최근 1년간 주 12시간 이상 연장근로를 한 적이 있다고 답했다. 특히 제조업(40.8%)의 경우 비제조업(21.0%)의 두 배에 달하는 높은 비율을 보였다.

주당 12시간 이상 초과근무를 해야 했던 연간 개월 수에 대해서는 41.7%가 ‘3개월 이상’, 30.4%가 ‘1~3개월’, 28.0%가 ‘1개월 미만’이라고 답했다. 초과근무 기간은 ‘1주일 미만’ 37.5%, ‘1주일 이상~2주일 미만’ 22.0%, ‘1개월 이상~3개월 미만’ 16.1% 순이었다. 중소기업중앙회는 연장근로 단위기간이 2주 미만이라고 응답한 비율이 59.5%로 나타나 일시적-단기적 연장근로에 대한 수요가 높은 것으로 조사돼 연장근로 단위기간이 확대될 경우 월 단위 연장근로를 선택하는 기업이 많을 것으로 예상했다.

특히 이들 기업 중 18.5%(제조업 23.0%, 비제조업 9.1%)는 연장근로 한도 등 인력 운용의 어려움으로 제품 또는 서비스 공급을 포기해야 했던 경험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상황에서 응답자의 절반 이상인 52.4%(제조업 57.5%, 비제조업 41.8%)가 정부의 근로시간 제도 개편 방안이 인력 관리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주당 평균 근로시간이 52시간인 가운데, 응답자의 65.7%는 노사 합의에 따라 주당 최대 근로시간을 60시간으로 해야 한다고 생각했으며, 28.8%는 주당 최대 근로시간을 노사 자율에 맡겨야 한다고 답했다. 인력수급 동향에 대해서는 응답자의 58.1%가 ‘필요한 인력을 채용하기 어렵다’고 답했고, ‘현재보다 나아질 것’이라는 응답은 5.6%에 불과했다.

대한상공회의소 “69시간은 예외적 사례일 뿐”

이명로 대한상공회의소 인력정책본부장은 “현재 중소기업들은 법 위반의 위험을 감수하고 기업을 운영하고 있다”며 “중소기업의 인력난을 해소하기 위해 법 개정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또 “산업현장의 다양성과 인력수급 추세를 고려할 때 중소기업의 생존과 성장을 위해 탄력적 근로시간제는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대한상공회의소는 지난달 24일 연장근로 기업 302개사를 대상으로 ‘정부의 근로시간제도 개편방안에 대한 기업의견’을 조사했다. 조사 결과 개혁방안의 핵심인 연장근로 단위가 확대되더라도 일각의 주장처럼 주 69시간 근무는 극히 예외적인 상황인 것으로 나타났다.

연장근로 관리단위가 주 단위에서 월 단위, 분기 단위, 반기 단위, 연간 단위로 확대될 경우 새로운 연장근로 제도를 활용하겠다고 응답한 기업은 56%에 그쳤다. 72.2%의 기업은 배송 물량 증가, 장비 고장, 성수기 등에 한시적으로 활용하겠다고 답했다. 반면 27.8%의 기업은 정기적인 연장근무 옵션으로 활용하겠다고 답했다.

또한 연장근로제도가 개편되더라도 우려로 인해 최대 69시간까지 근무할 수 있는 기업은 소수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연장근로 관리 단위가 변경될 경우 일주일에 근무할 수 있는 최대 시간을 예상해달라는 질문에 응답자의 40.2%가 ’52시간 미만~56시간 미만’이라고 답했고, ’56시간 미만~60시간 미만’이라고 답한 응답자가 34.3%로 뒤를 이었다. 이어 ’60시간 미만~64시간 미만'(16.0%), ’64시간 미만~68시간 미만'(5.9%) 순이었으며, ’68시간 이상’이라고 답한 응답자는 3.6%에 불과했다.

연장근로제 개편에 따라 주당 60시간 이상 근무하겠다고 응답한 기업의 대부분은 제조업 또는 인력난을 겪고 있는 중소기업이었다. 응답 기업의 90.7%가 제조업, 76.7%가 중소기업이었으며, 중견기업은 응답자의 18.6%, 대기업은 4.7%를 차지했다. 연장근로 관리 단위 확대에 대해서는 ‘월 단위로 운영한다’는 응답(46.7%)이 가장 많았다. 이어 ‘분기별(3개월)'(27.8%), ‘연간'(16.6%), ‘반기별'(8.9%) 순으로 집계됐다.

강석구 대한상의 조사본부장은 “첫발을 내디딘 근로시간 개편이 입법논의도 하기 전에 장시간근로 논란으로 기업혁신과 근로자 휴식보장이라는 개편취지가 훼손된 것에 대해 안타깝게 생각한다”며 “근로자의 건강보호와 근로시간 효율적 운용이라는 취지가 균형감 있게 작동될 수 있도록 건강권보호조치의 예외사유를 좀 더 확대하는 보완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중소기업 살리기, 노동자 살리기

대한상공회의소와 중소기업중앙회가 실시한 설문조사에서도 알 수 있듯이 중소기업의 근로시간 유연화에 대한 요구가 매우 높다. 인터넷 등 여론은 주 69시간 근무제를 살인적인 근무시간으로 묘사하고 있지만, 많은 기업이 험난한 시장에서 살아남고 성공하기 위해 일정 수준의 유연성이 필요한 것이 현실이다. 대부분의 기업은 지나치게 긴 주당 근무 시간을 통해 근로자들을 괴롭히고 싶어하는 것이 아니라 업무량의 변동을 수용하고 인력을 효과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있을 뿐이라는 입장이다.

근무 시간 개혁에 대한 많은 공감대는 일과 삶의 균형과 근로자 복지 개선의 필요성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하지만 직원의 권리 보호와 비즈니스의 효율적 운영 사이에서 균형을 유지하는 것이 어렵다. 이는 노사 간의 열린 대화와 협력, 그리고 현대 직장의 변화하는 요구사항에 기꺼이 적응하려는 의지를 통해서 달성할 수 있다. 또한 근로시간을 둘러싼 논쟁은 현 상태를 유지하거나 극단적인 조치를 추진하기 위한 것이어서는 안 된다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그 대신 근로자와 기업의 자율성을 존중하는 동시에 공정한 보상과 근로자의 복지를 보장하는 지속 가능한 해결책을 찾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

특히 중소기업의 경우 근로시간 문제는 기업의 생존과 직결되는 만큼 모든 이해관계자 간의 신중한 고려와 지속적인 대화가 필요하다. 근로시간 유연화는 많은 기업이 생존하고 성장하는 데 필수적이지만, 노사 자율성을 존중하고 근로자의 건강권을 보호하며 과도한 근로시간에 대한 대중의 우려를 불식시킬 수 있는 방식으로 시행되어야 할 것이다. 설문조사에서 알 수 있듯이 대다수의 기업은 직원들에게 과도한 근무시간을 강요하는 것을 목표로 하지 않는다. 직원과 업계의 역동적인 요구를 수용할 수 있는 균형 잡히고 유연한 접근 방식을 요구하고 있다. 노사 관계에 있어 서로를 악마화하지 않고 협업, 소통, 상호 존중의 정신을 발휘한다면 직원의 복지와 비즈니스의 성공을 모두 촉진하는 근무 환경을 조성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