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 탈취·유출에 ‘솜방망이’ 들이미는 법원, 범죄자 ‘한탕 심리’만 자극한다

대기업-스타트업 아이디어 탈취 사례 증가에도 법적 처벌 근거 미약 실효성 떨어지는 부경법, 기술 탈취에 대한 형사처벌 규정도 없어 기술 유출 실형 선고율 5%도 안 돼, “매국적 행위 방관하는 꼴”

160X600_GIAI_AIDSNote
지난 18일 오전 서울 중소기업중앙회에서 열린 대기업 아이디어 탈취 피해 기업 기자회견에서 피해기업 대표들이 입장을 발표하고 있다/사진=경청

최근 대기업의 스타트업 아이디어 탈취 사례가 증가하고 있다. 이에 공익재단법인 경청은 18일 기자회견을 열고 사업 아이디어를 탈취당한 스타트업과 함께 아이디어 침해 및 데이터 부정 사용 등에 대한 형사처벌 근거 마련을 촉구하고 나섰다. 이날 회견장엔 알고케어, 프링커코리아, 키우소, 닥터다이어리, 팍스모네 등 5개 사가 참여했다. 알고케어는 롯데헬스케어, 프링커코리아는 LG생활건강, 키우소는 농협경제지주, 닥터다이어리는 카카오헬스케어, 팍스모네는 신한카드와 아이디어 탈취를 두고 분쟁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무형물’ 아이디어 탈취, 실질적 처벌 근거 없어

형법상 자동차를 불법으로 이용하거나 편의시설을 부정 사용하는 경우 3년 이하의 징역이나 500만원 이하의 벌금이 부과된다. 그러나 아이디어는 ‘무형물’이라는 특징성 때문에 이러한 처벌 규정조차 없는 실정이다. 이로 인한 업계의 피해는 이만저만이 아니다. 실제 이날 스타트업이 주장한 아이디어 탈취 사례의 양상은 유사했다. 대기업이 세계 유수 전시회에서 이름을 알린 스타트업을 대상으로 투자 또는 협업 미팅을 계기로 제품 설명 및 사업 정보를 받아 가면서 이를 탈취하는 식이다. 특히 축산 플랫폼 기업 키우소는 공모전에 아이디어를 출품했다가 기술을 탈취당했다.

그러나 부정경쟁방지법상 아이디어 및 성과물 침해에 대한 형사처벌 규정은 명확하게 규정되어 있지 않다. 이에 박희경 경청 변호사는 “벌금형과 징역형 등 형사처벌 규정을 신설하고 행정조사 범위를 성과물 침해에까지 확대하는 시도가 필요하다”며 “아이디어 침해와 데이터 부정 사용으로 위법성이 인정되면 시정 권고를 넘어 시정 명령까지 실효성을 강화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관련 분쟁 해결을 위한 상설 범부처 협의체의 필요성도 강조됐다. 스타트업이 아이디어 탈취 문제를 제기할 경우 대기업은 흔히 큰 몸집을 적극 활용해 업무방해나 명예훼손 등 기술 탈취 여부와 무관한 형사고발을 제기해 스타트업을 압박하곤 한다. 이에 박 변호사는 “상설 범부처 협의체를 구성하고 아이디어, 성과물, 데이터 등에 대한 객관적 가치평가를 위한 평가기관을 마련해 건전한 기술거래 질서를 도모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부경법’ 마련됐지만, “실효성 떨어져”

사실 이와 비슷한 상황을 사전에 방지하고자 입법된 법안이 있다. 바로 앞서도 언급됐던 ‘부정경쟁방지 및 영업비밀보호에 관한 법률'(이하 부경법)이다. 그러나 부경법은 아이디어 탈취에 대해선 실효성을 갖지 못하고 있다. 지난 2018년 개정된 부경법 제2조 1호차목에 따르면 ‘거래교섭 또는 거래 과정에서 제공받은 타인의 기술상·영업상 유용한 아이디어가 담긴 정보를 그 제공 목적에 반하여 사용하거나 제3자에게 제공하여 사용하게 하는 행위’는 엄연히 ‘부정경쟁행위’ 중 하나다.

그러나 해당 규정은 아이디어 및 기술 탈취에 대한 억제 효과가 충분치 못하다는 문제가 있다. 민사적 구제에 있어 인정되는 손해배상액이 피해기업이 실제 입은 손해액으로 제한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나마 하도급 관계에서 발생하는 기술 탈취 행위를 규제하는 하도급법과 아이디어를 탈취당한 피해기업에 민사적·형사적·행정적 구제 수단을 제공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마련됐다는 점에 주안점을 둬야 했다.

그러던 2021년 4월 21일, 개정법이 시행되며 아이디어 탈취 행위로 인한 손해의 3배까지 배상을 청구할 수 있도록 하는 징벌적 손해배상제도가 도입됐다. 또한 △행정청 시정 권고 권한 확대 △위반 기업이 시정 권고를 이행하지 않을 경우 위반 행위 내용 및 시정 권고 사실 등을 공개적으로 공표 등 내용도 포함됐다. 이로 인해 아이디어 탈취 피해기업은 보다 두터운 보호를 받을 수 있게 됐다. 그러나 여전히 아이디어 및 기술 탈취에 대해 형사 처벌할 법적 근거는 마련되지 않아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는다.

해외선 엄하게 처벌하는데, 우리나라는 ‘솜방망이’에 그쳐

기술 보호는 우리나라만의 문제가 아니다. 국가정보원이 지난달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까지 최근 5년간 적발된 산업 기술 국외 유출 사례는 무려 93건에 달했다. 이에 따른 기업 추산 피해액만 25조원이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나라와 각국의 차이가 드러난다. 미국, 독일, 일본 등은 기술 사범을 엄하게 처벌하고 있으나 국내에선 관련 법적 처벌이 10건 중 7건이 집행유예로 나올 정도로 솜방망이 수준이란 것이다. 기술을 해외로 빼돌린 범죄도 법정 최고형은 징역 6년이 끝이다.

세계 각국은 기술 보호를 위한 대책 마련에 열을 올리고 있다. 대만은 국가 핵심 기술 유출자를 최고 5년의 징역형과 300만 대만달러(약 1억2,000만원)에 달하는 벌금형에 처할 수 있는 법안을 통과시켰고, 일본은 지난해 5월 기술 유출 방지를 위한 경제안전보장추진법을 제정했다. 또한 영국은 해외 기업이 중요 자국 기업을 인수하려 할 때 정부가 개입해 중단시킬 수 있도록 했다. 미국의 경우 기술 유출자에 대한 최고 법정형에 20년에 달한다. 우리나라와 비교될 수밖에 없는 사안이다.

형사처벌 없으니 사건사고도 쳇바퀴 돌듯

법적 처벌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으니 관련 사건사고도 끊이지 않는다. 현대차는 지난 2018년 특허청으로부터 악취제거 전문업체 ‘비제이씨’의 미생물 관련 아이디어를 탈취한 혐의로 시정 권고 조치를 받았다. 해당 사건은 부경법 개정 이후 기술·아이디어 탈취에 대해 특허청이 전문성을 활용해 결론 내린 첫 번째 시정 권고 사례였다. 그러나 현대차는 어디까지나 시정을 ‘권고’ 받았을 뿐, 제대로 된 법적인 처벌은 받지 않았다.

반도체 등 첨단기술을 국외로 유출하는 범죄도 잇따라 발생하고 있다. 지난 1월엔 삼성전자의 자회사 세메스의 핵심 기술을 중국으로 넘긴 일당이 기소되기도 했다. 당시 유출된 기술은 초임계 상태의 이산화탄소를 이용해 반도체 기판을 세정하는 기술로, 산업통상자원부가 국가 핵심 기술로 지정할 정도로 중요도가 높은 기술이었다. 용의자는 퇴직 후 해당 장비의 도면을 중국 기업에 넘겨 1,193억원의 이익을 편취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해당 용의자 역시 제대로 된 법적 처벌을 받지 않았다.

경찰청에 따르면 2018년부터 2022년까지 검거된 506건의 기술 유출 사범 중 재판에서 실형을 선고받은 경우는 재판에 넘겨진 88건 중 4명(4.5%)에 불과했다. 현행법상 국외 기술 유출 범죄가 성립하려면 ‘외국에서 사용되게 할 목적’을 지닌 목적범이라는 것을 입증해야 하는데, 이를 수사하고 입증하는 것이 까다롭기 때문이다.

스타트업은 자신만의 아이디어와 기술만 믿고 창업에 뛰어들곤 한다. 그러나 대기업이 협업을 미끼로 스타트업의 기술자료를 확보하고 동일한 서비스를 내놓는다면 누가 봐도 기울어진 운동장이 형성될 수밖에 없다. 이를 글로벌 사회로 확대해도 마찬가지다. 자국의 핵심 기술이 타국에 넘어갈 경우 점차 기술 격차는 자국에 불리하게 기울어질 수밖에 없다. 핵심 기술 유출이 매국적 행위라 매도당하는 이유다.

우리나라가 유독 지적재산권 편취 범죄에 관대한 면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제라도 법적 처벌 수위를 높여야 한다. 기술 편취 및 유출에 대한 처벌 수위가 낮을 경우 ‘한탕하고 빠지겠다’는 식의 범죄자 심리가 도출될 가능성이 있다. 하루빨리 관련 법안을 만드는 것, 그것만이 국회가 할 수 있는 ‘애국’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