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불발된 복수의결권, 국회 법사위 “다음 전체회의에서 재논의”

국회 법사위, ‘벤처기업특별조치법 개정안을 논의’했지만 다음 전체회의에서 재심사하기로 일부 의원 “상법 원칙과의 상충, 혹시 모를 투자자 피해 우려” 등 사유로 강하게 반발 일부 시민단체, “복수의결권 제도 오히려 실제 벤처기업 성장에 도움 되지 않는다”는 지적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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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읍 국회 법제사법위원장이 23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안건을 가결하며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다/사진=국회사진기자단

복수의결권 도입 법안이 또 한 번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이하 법사위)에서 통과되지 못했다.

국회 법사위는 23일 전체회의를 통해 복수의결권 도입을 주요 골자로 하는 ‘벤처기업특별조치법 개정안’을 논의했지만 다음 전체회의에서 재차 심사를 이어가기로 했다. 일부 의원이 상법 원칙과의 상충하는 점과 혹시 모를 투자자 피해 우려 등을 사유로 강하게 반발했기 때문이다. 관련 업계에선 전체회의가 다음 달 다시 열릴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벤처업계 숙원, 복수의결권이 뭐길래

복수의결권은 비상장 벤처기업 창업주에게 1주당 10개 이하 의결권을 가진 주식을 발행할 수 있도록 권한을 부여하는 제도다. 흔히 복수의결권 주식이라고도 하며, 대표적인 경영권 방어 수단 가운데 하나로 잘 알려져 있다. 참고로 현행법에 따르면 본래 모든 주식은 ‘주식 수에 비례하여 평등하게 취급되어야 한다’는 ‘주주평등의 원칙’에 근거하여 주식 1주당 의결권은 1개로 정하고 있다.

복수의결권 주식 발행은 아무 주주나 진행할 수 없다. 오직 창업주에 한정되고 특히 대규모 투자유치로 최대주주 지위를 상실하는 등의 경우에만 발행 가능하다. 발행 절차 또한 주주의 동의를 걸쳐 가중된 특별결의(총주식 수의 3/4)로만 발행할 수 있으며 소액 주주 보호나 대주주 견제 등 주요 의결사항에 대해서는 행사가 제한될 수 있다.

벤처 업계에선 복수의결권 도입을 두고 “경영진의 회사에 대한 지배권 강화를 통해 안정적인 경영권을 바탕으로 장기적 관점에서 기업가 정신을 발휘할 수 있게 되는 이점”을 강조하고 있다. 아울러 적대적 기업인수합병(M&A)으로부터 경영권 보호가 가능해지는 점, 경영권 위협 없이 IPO(기업공개)를 통해 대규모 자금을 조달하여 기업의 성장을 꾀할 수 있는 측면 등을 지적하며 법안 도입이 시급하다는 입장이다.

이미 OECD 국가 대다수가 도입한 선진 자본시장제도

사실 복수의결권 제도는 미국·영국·프랑스 등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8개국 가운데 17개국에서 이미 도입된 선진 자본시장 제도다. 지난해 업계가 조사한 세계 기업들의 복수의결권 조사에 따르면 미국은 251개, 중국 121개, 인도 27개, 영국 24개 등으로 집계됐다. 아시아에서도 홍콩은 이미 2018년부터 도입됐고 공산당 국가인 중국도 2013년 최대 전자상거래 업체인 알리바바가 복수의결권이 불가능한 구조 등을 이유로 상장을 거부하자 이를 계기로 복수의결권 주식의 상장을 허용했다.

복수의결권의 대표적인 사례로 2004년 미국 나스닥에 상장한 구글의 지주회사 알파벳이 있다. 알파벳의 공동창업자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은 전체 지분의 11.4%를 보유했지만, 복수의결권 제도에 따라 이들 주식의 의결권은 51.1%에 이른다. 우리에게 익숙한 이커머스 기업 ‘쿠팡’이 뉴욕 증시에 상장할 수 있었던 것도 복수의결권과 관련이 있다. 쿠팡 김범석 의장이 보유한 주식 지분은 10.2%이지만, 행사 가능한 의결권은 76.7%에 달했기 때문이다.

한편 국내에서 복수의결권 제도를 도입하려는 시도는 2020년 총선 당시 민주당이 ‘총선 2호 공약’으로 ‘비상장 벤처기업 복수의결권 허용 법안’을 발의하며 시작됐다. 이후 1년 뒤인 2021년 12월에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의결됐지만, 상임위 통과 이후 1년이 지나도록 진척이 안 되다, 이번 법사위에서 재차 심사에 나섰다.

이 밖에 중소기업중앙회·벤처기업협회 등 주요 단체들도 복수의결권 입법화를 촉구해왔다. 특히 15개 단체로 구성된 중소기업단체협의회의 김기문 회장은 지난해 기자회견에서 ‘비상장 벤처기업 복수의결권 허용법안의 조속한 통과를 촉구’하는 성명서를 내놓으며 “벤처나 스타트업은 자기자본이 적어 공장 증설과 같은 성장을 위해서는 대규모 투자가 필요하다. 창업주는 아차 하면 기업을 빼앗기기 때문에 기업의 혁신과 경영 의지가 사라지지 않도록 복수의결권을 도입해야 한다”고 강조한 바 있다.

실제 기업엔 도움 되지 않는다는 주장도

한편 시민단체 등에선 복수의결권 제도가 오히려 실제 벤처기업 육성 및 성장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지적을 내놓고 있다. 특히 참여연대 경제금융센터는 ‘복수의결권 관련 벤처기업법 개정안의 문제점 Q&A’를 발표하며 복수의결권 도입이 실제 벤처기업의 육성 및 성장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주장하고 있다.

참여연대는 크게 세 가지 이유를 들고 있다. 먼저 “상사에 관한 기본법인 상법을 통해서가 아니라 개별법에서 복수의결권주식 제도를 먼저 도입하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지적이다. 현행 상법에선 소수주주의 권리보호를 위해 1주 1의결권 등을 통해 주주평등의 원리를 보장하고 있고, 또 이미 상법에서 종류주식을 통해 무의결권 주식 등을 발행할 수 있기 때문에 충분히 의결권 방어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두 번째로 “복수의결권주식 발행이 현 경영진에 대한 과도한 권한집중을 발생시킴에 따라 사익추구의 위험이 확대되고 의결권이 희석된 기존주주나 소수주주의 권리를 약화시킬 수 있다는 문제”가 있음을 지적했다. 이에 따라 창업주가 기존 이사회나 주주총회의 의사결정기관을 넘어 회사의 주요 사안을 좌지우지하는 한국 재계 지배구조가 더욱 악화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예로 2015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불법합병 사례가 있다.

마지막으로, 참여연대는 복수의결권 주식 도입이 “무능력한 경영진까지 과도하게 보호하며 경영권의 이동을 어렵게 함으로써 M&A 시장을 위축시킬 위험이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특히 “창업가의 성공적인 회수를 통한 재도전과 벤처캐피탈의 원활한 투자금 회수 등 벤처 선순환 생태계 조성에 악영향을 미칠 우려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설명이다. 나아가 “궁극적으로 벤처기업을 창업주의 의욕을 꺾는 것은 복수의결권의 부재 때문이 아닌 불공정거래행위 문제 등 공정경제 구축이 선행되지 않은 우리 사회의 문제로 해석해야 한다”고 지적했다.